박준섭 변호사
박준섭 변호사

1815년에 제정된 영국의 곡물법은 곡물가격을 유지해서 지주들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 곡물의 수출입을 규제하는 법이었다. 1845년에 아일랜드에서 발생한 감자마름병에 의한 기근은 전적으로 농업에 의존하면서 수백만명이 감자로만 연명하고 있던 아일랜드 주민을 100만명 이상이 굶어 죽게 하는 역사상 대참사를 가져왔다. 이에 따라 영국의 필 수상은 곡물법을 폐기하는 결단을 하면서 무역을 제한하는 관세들을 대부분 철폐하고 자유무역체제로 돌입하었다. 

보수당은 필을 좇아 곡물법 폐지에 찬성한 사람들과 반대한 사람들로 나뉘어 싸웠다. 찬성파들은 자유무역주이자들로, 반대파들은 보호무역주의자들로 남았다. 보호무역주의자들이 지주계급의 이익만 추구하는 사람들이라고 비난하고 상대파가 노동자들에게 지급하는 임금을 줄이려는 공장주들의 탐욕을 도울 뿐이라고 비난했다. 그 결과 보수당은 필 지지파와 보호무역파라는 두 당파로 분열되었고 필 자신은 실각하였다. 그 후 보수당은 1846년부터 1874년까지 오랜기간 거의 정권을 잡지 못했다. 

박지향 교수는 ‘정당의 생명력’에서 보수당이 이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었다고 한다. 첫째, 곡물법을 둘러싼 논란은 보수당이 더 이상 과거의 좁은 지지기반에 의존해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둘째, 유권자의 지지를 받기 위해서는 정당이 안정적이어야 하고 분열해서는 안된다는 것, 셋째 보수당이 영국의 미래와 그것을 위한 보수당의 역할에 대하여 적극적인 비전을 제시하는 것, 즉 단순히 정적에 대한 네거티브 전략으로 지지를 모을 것이 아니라 보수당 스스로 확고한 비전과 정체성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국 보수당이 이 모든 일을 해내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은 바로 벤저민 디즈레일리였다. 그는 앞에 언급한 것 모두를 실천하였고 마침내 집권에 성공하였다.       
 
자유한국당도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두고 분열했다가 실권했다. 아직도 보수가 왜 괘멸당할 수준으로 패했는지에 대해서는 상대편의 잘못만 이야기 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에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보수대통합을 공론화하면서 통합논의가 시작되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에 대한 시시비비가 아직도 걸림돌이지만, 보수의 철학이 인간의 불완전성을, 비록 의회의 탄핵의결과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아쉬운 부분은 있지만 전통과 국가의 권위를 중시하는 보수의 관점에서 이제 넘어서야 한다. 

만일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염두에 두고 현재 분열되어 있는 각자의 당의 기득권만 생각하면서 통합하기를 꺼린다면, 국민들은 분열되고 갈라진 보수를 국민을 위한 정당들로 생각지 않을 것이고, 곧 다가올 총선에서 보수·우파정당을 결코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민주당의 이해찬 의원이 말했던 20년 장기집권이 허언이 아니게 될 수도 있다. 자신이 받은 소명에 따라 보수통합의 십자가를 지는 길은 보수의 미래를 연 디즈레일리에게 이르는 길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