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가을 경주의 아련한 눈시울
선덕여왕 공원의 핑크뮬리 갈대밭
단풍과 어울려 색채의 콘서트 열려
밤공기는 차가워지기 시작했지만
신라의 불빛은 따뜻하기 그지없어

선덕여왕 공원의 핑크뮬리 갈대밭.
선덕여왕 공원의 핑크뮬리 갈대밭.

나는 봄에 떠났다가 겨울이 되기 전에 돌아오고 싶었다. 봄과 여름 동안 경북 바닷길 537km를 부지런히 걸었다. 물길에 잠겨 걷고, 바람길에 두 발이 붕 떠 날면서, 수평선에 불을 지르는 석양과 푸르스름한 별들의 자맥질을 향해 멈추지 않고 나아갔다. 다시 울진에서 영덕, 포항을 통과해 경주로 들어서려는 순간, 뺨에 닿는 공기가 얼음을 흉내 내고 있음을 알았다. 차가운 대기 속에서 나는 계절이 바뀌듯 나도 어딘지 달라졌음을, 소리 없지만 분명한 변화가 내 안에 일어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무엇이 어떻게 변했는지는 아직 모르는 채,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멀지 않았다는 서늘한 사실만을 피부로 느끼면서, 걸음을 재촉했다.

아까시가 피고 지고, 장미가 피고 지고, 수국이 피고 지고, 장마와 태풍이 지나가고, 거리에 은행잎이 수북이 쌓이는 동안 몇 사람을 만났고, 몇 사람과 헤어졌다. 사람이 들어왔다가 나간 마음의 방은 이제 텅 비어,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긴 겨울을 기다리고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새로운 길은 열리고, 여행을 멈추는 순간 또 다른 여행이 이미 시작되는 법인데, 마음에는 작은 발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괜찮다. 지난 계절, 경북 바닷길을 혼자 누비면서 나는 자연과 끊임없이 교감했으며, 사람이 줄 수 없는 위로와 감동을 신라의 푸른 길 위에서 얻었기 때문이다.

“갈수록, 일월(日月)이여/ 내 마음 더 여리어져/ 가는 8월을 견딜 수 없네/ 9월도 시월도/ 견딜 수 없네/ 흘러가는 것들을/ 견딜 수 없네/ 사람의 일들/ 변화와 아픔들을/ 견딜 수 없네/ 있다가 없는 것/ 보이다 안 보이는 것/ 견딜 수 없네/ 시간을 견딜 수 없네/ 시간의 모든 흔적들/ 그림자들/ 견딜 수 없네/ 모든 흔적은 상흔(傷痕)이니/ 흐르고 변하는 것들이여/ 아프고 아픈 것들이여”

포항 양포를 지나 동해의 푸른 해안선을 왼쪽 옆구리에 낀 채 경주로 가는 길, 정현종 시인의 시 ‘견딜 수 없네’를 외우며 하늘과 바다를 한참 바라보았다. 불과 6개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있었던 “변화와 아픔들”을 생각했다. “흐르고 변하는 것들”과 “아프고 아픈 것들”이 많았지만 그때마다 저 하늘과 바다가 나를 안아주었다. 이제는 저 파도와도, 저 수평선과도 헤어져야 할 때, 여행을 마치기 위한 여행이 막 시작되는 중이었다.

 

경주 교동의 ‘교리김밥’.
경주 교동의 ‘교리김밥’.

마음이 허전하면 몸도 헛헛해진다. 허기를 달래기 위해 경주에 도착하자마자 찾은 곳은 월성 서쪽, 교동의 ‘교리김밥’이다. 경주의 식당 중에서 가장 유명한 곳이다. 전국 각지에서 온 손님들로 늘 문전성시를 이룬다. 메뉴는 오직 김밥과 잔치국수 뿐. 김밥 두 줄과 잔치국수 한 그릇을 주문했다. 이 집 김밥의 특징은 달걀지단이 잔뜩 들어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소하고 은은한 단맛이 느껴진다. 씹을 때마다 보들보들하고 푹신한 식감이 입 안에 퍼진다. 화려하진 않지만 은근히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다. 잔치국수는 본연의 맛에 충실하다. 아, 이 반가운 것!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 이 그지없이 고담하고 소박한 것”(백석‘국수’) 앞에서 나는 새벽기도 드리는 신자의 둥근 등처럼 바짝 엎드리고 싶어졌다. 배고픔이 해소되니 마음의 허전함도 사라졌기 때문이다. 언제 상념에 빠졌었냐는 듯이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나라는 인간이 이토록 단순하다. 아니다. 김밥과 국수가 그만큼 힘이 세다.

오후 두시는 햇살이 가장 너르게 퍼지는 시간, 이맘때의 날빛에는 온화하면서도 쓸쓸한 표정이 있다. 그 표정은, 뜨겁게 사랑했다가 그 정념 오래 전에 다 식고, 추억으로만 남은 옛 연인을 바라보는 이의 눈빛처럼 아련하고 애틋하다. 그래서 이 계절의 햇살 속을 걷는 것은 추억과 그리움의 이정표들을 따라 내 마음의 풍경들을 들여다보는, 내면으로의 여행이다. 지난날 함께 경주에 가자며 새끼손가락 걸고 약속했던 사람은 곁에 없고, 그 새끼손가락의 감촉만 손 끝에 하얗게 남아 있는 가을 오후, 나는 추억을 향해 속력을 더 내기로 했다. 걷는 대신 탈것을 이용하는 편이 낫다. 보문관광단지 앞에는 전동스쿠터와 자전거, 4륜 바이크 등을 대여해주는 상점이 즐비하다. 전동스쿠터 한 대를 빌렸다. 전기로 움직이기 때문에 소음 없이 달리고, 제법 빠르기도 해 운전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전동스쿠터를 타고 선덕여왕 공원으로 달렸다. 선덕여왕 공원이 있는 보문호수변은 지금 분홍색 축제가 한창이다. 핑크뮬리 갈대밭이 꽃차례를 하는 시절, 핑크뮬리와 울긋불긋한 단풍과 은빛 물결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색채의 콘서트가 열린 것이다. 선덕여왕 공원에는 수많은 연인들이 인생의 핑크빛 한 철을 만끽하고 있었다. 지금이 다시없을 순간이라는 듯이. 그 마음들을 아는지 핑크뮬리는 기꺼이, 폭죽처럼 터지는 소중한 웃음들의 배경이 되어주었다. 연인들의 두 뺨도, 하늘도 모두 분홍색으로 곱게 물들어 있었다.

 

첨성대의 황홀한 야경.

하지만 가을해는 지나치게 빨리 진다. 오후 다섯 시가 조금 넘은 시간인데도 사위가 어둑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경주를 걷는 사람의 마음은 날이 저물어도 캄캄해지는 법이 없다. 경주는 신라의 천년 보석, 밤에 더 찬란한 ‘빛의 도시’이기 때문이다. 석양과 어스름이 신비한 빛을 내는 저녁, 첨성대를 찾았다. 1300년 전 사람들이 별을 관측하고 우주를 가늠하기 위해 세운 탑,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다. 첨성대를 통해 신라 사람들은 해와 달과 별을 관측하고, 우주의 섭리를 학습하며, 국가의 길흉화복을 점쳤다. 우주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곧 인간을 이해하려는 노력이기도 해서, 신라인들은 인간은 소우주고 자연은 대우주라는 사실을, 미물에도 우주가 깃들어있다는 것을 일찍이 깨우쳤다. 그래서 그들은 육체가 죽어도 영혼은 하늘에 올라가 우주에 편입된다고, 해 달 별 바람 비 천둥 번개 흙으로 영원히 산다고 믿었다. 천문대는 첨성대인 동시에 제단(祭壇)이었던 것이다.

첨성대에서 동궁, 월지까지 걸었다. 밤공기는 차갑고 신라의 불빛은 따뜻했다. 월지의 물거울 속에서 동궁은 금관처럼 화려한 빛을 뿜으며 일렁였다. 야경에 매혹된 사람들이 연못 주변을 빙빙 돌고 있었다. 지난봄에는 축제의 들뜸이 가득했는데, 늦가을 동궁과 월지에는 고요한 아름다움만 남았다. ‘가을이 저물어가는구나. 저 불빛들도 “시간의 모든 흔적들”이자 “그림자들”이자 “상흔”이 아닌가?’ 어떤 사람들은 연인과의 헤어짐처럼 계절과도 이별한다. 나도 그렇다. 가을을 보내는 마음이 애처롭다. 첫눈이 내리고 긴 겨울이 시작되면 오래된 사진을 펼쳐 보듯 가을밤 경주의 불빛들, 그 쓸쓸한 표정들을 오래토록 추억할 것이다.

황리단길의 휘황찬란한 불빛들 속에서도 나는 색이 바란 은행나무 낙엽을 보았다. 거리는 깨끗했지만 마음속에서 자꾸 바스락 바스락, 낙엽 밟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황오동 ‘진가네 대구갈비’까지 걸었다. 이 집의 매운돼지갈비찜은 찬바람이 불 때 먹어야 제 맛이다. 양은냄비에 담긴 돼지갈비를 한 젓가락 집어 입에 넣고 우물거리면 입 안에 단풍이 든다. 화끈거리는 매운맛에 몸에서 열이 오르는 순간, 콧물인지 눈물인지 뭉클한 것이 갈비찜과 함께 쑥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또 한해를 살았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스스로가 대견하다. 세상은 어수선하고 캄캄하지만 나는 여전히 저 불빛들처럼, 내 생을 온몸으로 태우며 멋지게 살아 있다. 세상이 자주 멈추고, 때로 후퇴하더라도 나는 끝없이 움직이고, 나아가야 한다. 올해는 다 가지 않았고, 내게는 아직 더 걸어가야 할 경북 동해의 바닷길, 영원으로 가는 신라의 푸른 길이 남아 있다. ‘그러니 다시 걷자. 발끝이 파랗게 물드는 저 길 위로 다시 나를 데리고 가자.’ 식당에서 나오니 경주의 불빛들이 아련한 눈시울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시인 이병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