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편의 시 하나의 풍경
캄보디아와 고운기 시인

캄보디아 톤레삽 호수에서 만난 서로를 위해주는 남매.

어머니의 남자 - 고운기

섣달 그믐밤 잠깐 정신이 들었을 때

어머니는

큰오빠가 가자한다고 또렷이 말했다

누구 오빠?

우리 큰오빠…

여동생이 한 번 더 물었어도 같은 말을 했다

기쁜 듯

의기소침한 듯

어떤 제삿날이었을까

묵묵히 지방을 써주고 가던

방 어두운 한 구석의 사내를

나 또한 어렴풋이 기억한다

마흔 갓 넘기었나,

어머니의 큰오빠 나의 큰 외숙부는

전쟁통에 홀로 된 여동생의 안부를

지방 써주는 날에 와서 확인하던 것인데

나는 이승에서 그의 모습이

그날 단 한 번으로 가물거릴 뿐이다

친정아버지도 아니고

아이 둘씩 낳아준 두 남자도 아니고

눈이 팔팔 내리던

정월 초하룻날 새벽길 걸어 와

어머니를 데리고 간 남자는

큰 외숙부였으리라 믿고 있다.

- 톤레삽 호수에서 만난 의좋은 남매는…

사진에 찍힌 남매를 만난 건 몇 해 전 캄보디아 여행에서였다.

빛나는 크메르의 유적 앙코르와트가 있는 도시 씨엠립. ‘무너지고 망가진 폐허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역설적 사실을 보여주는 그곳에서 7일을 묵었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티켓을 예약한 마지막 날. 일행의 권유로 아시아에서 가장 크다는 ‘톤레삽 호수’를 찾았다. 시내에서 출발해 붉은 흙먼지 날리는 비포장 길을 1시간 남짓 달렸다. 창문이 없는 오토바이 택시를 타고.

호수 초입엔 허름하고 낡은 목선 수십 척이 북미와 유럽, 한국과 중국에서 온 관광객들을 태우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기자가 오래 전 본 우리나라 1970년대처럼 빈한한 시골 풍광.

‘톤레삽 호수 투어’를 위해 20달러를 지불한 여행자들이 각자에게 배정된 배에 올랐다. 그때였다. 채 10살이 돼 보이지 않는 어린 남매가 나타난 것은.

▲ 열 살 누나를 돕던 예닐곱 살 어린 꼬마는

투어를 함께 하게 된 일행 중엔 2m 가까운 키에 100kg이 넘어 보이는 네덜란드 대학생이 있었다.

그런데, 이건 뭐지? 1m쯤 되는 키에 30kg이 될까, 말까…. 조그만 여자아이가 그 유럽 거구의 손을 붙잡고는 “조심해서 건너세요”라며 승선을 돕고 있었다. 누가 봐도 우스꽝스런 풍경. 그 꼬마숙녀는 기자의 손도 잡아주며 배에 오르는 걸 거들었다. 기자 역시 183cm에 90kg. 손바닥만한 거리를 널빤지에서 배로 뛰어오르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누가 있어 감히 조그만 손이 내미는 권유를 마다할 수 있을까. 그 와중에 잠시 밀려든 물결이 출렁, 허술한 목선이 흔들렸다. 이때 나타난 남자애 하나가 누나의 허리를 잡아준다. 겨우 예닐곱 살이나 됐을까? 동생을 바라보는 어린 누이의 눈망울이 터무니없이 맑아서 슬퍼 보였다.

남매는 10명이 넘는 우리 일행 모두를 안전하게(?) 승선시키고는 고물(배의 뒤쪽)에 나란히 앉았다. 동정이나 연민 따위는 이미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둘을 보니 이상스레 가슴이 울컥했다.

“무슨 사연이 있어 저러고 사는 걸까?”

그 순간 동시에 떠오른 시 한 편이 있으니 고운기(58) 시인의 절창 ‘어머니의 남자’였다. 이런 문장이다.

톤레삽호수에 떠있는 낡은 목선
톤레삽호수에 떠있는 낡은 목선

▲ 이성적 잣대로 해석 불가한 누이와 오빠의 관계

고운기의 시가 그려내는 풍경을 요약하면 이렇다. 죽음을 눈앞에 둔 엄마. 아들은 임종을 위해 집을 찾았다. 그런데 위독한 모친은 부모도, 자식도 아닌 오빠를 가장 먼저 찾는다. 마지막 생의 순간에.

아들은 ‘엄마의 오빠’, 즉 자신의 외숙부를 긴 세월 저편에서 겨우겨우 기억해낸다. 전쟁으로 남편을 잃고 젊어서 홀로 된 여동생을 찾아와 제사 때마다 서러운 필체로 지방(紙榜)을 써주고는 구석에 앉아 말이 없던 사내. 그 사내의 ‘말없음’을 이제는 이해하게 된 아들. 그걸 먹먹하게 지켜보는 식구들.

피를 나눠 가진 누나와 남동생, 오빠와 여동생의 서로를 향한 애틋함. 그걸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단어로 온전히 표현할 수 있을까? 그래서다. 이런 문장으로 시가 끝나는 것은.

‘친정아버지도 아니고/아이 둘씩 낳아준 두 남자도 아니고//눈이 팔팔 내리던/정월 초하룻날 새벽길 걸어 와/어머니를 데리고 간 남자는/큰 외숙부였으리라 믿고 있다’.

이미 죽은 오빠가 이제 곧 저승에서 만날 여동생의 마지막 길을 포근하게 안아주는 풍경. 아버지도 남편도 해주지 못한 일을 거뜬히 해내는 이름 ‘오빠’.

이 시가 주는 울림이 깊고도 큰 것은 바로 이런 ‘새로운 시선’ 때문이다. 인간의 삶과 죽음에 관한.

▲ 합리적 잣대로 해석 불가한 피를 나눈 누이와 오빠

남매가 서로에게 어떤 존재인지를 실체로 확인한 적은 또 있다. 인도 남부 도시 마이소르의 시끌벅적한 시장통에서다.

유럽에서 왔다는 20대 관광객 네댓 명이 예쁘장한 인도 소녀에게 농담을 걸며 사진을 찍자고 하고 있었다. 부끄러워 자신이 할 말을 다하지는 못했지만, 서툰 영어로 싫다는 의사를 분명하게 표시하는 소녀. 그걸 바라보며 재밌다는 듯 웃는 백인 청년들.

소녀의 오빠로 추정되는 17~18세 소년이 나타난 것은 그때였다. 자기보다 머리 하나가 더 큰 사내들 가운데로 나서며 “꺼져!”라고 일갈하는 ‘소년 오빠’의 눈빛에서 살의가 번득이고 있었다.

외국인에게 한없이 친절한 인도 사람에게서 그처럼 무서운 기운을 느낀 건 그 순간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기세에 눌려 소녀 곁에 있던 청년들이 뒷걸음질을 쳤다. 기자가 보기에도 오빠에게 총이나 칼이 없는 게 다행이다 싶었다.

상황이 정리되자 여동생의 손을 잡고는 거리 저편으로 총총히 걸어가는 오빠의 등이 세상 무엇보다 든든해 보였다. 하이에나 무리에게서 새끼를 구한 수컷 사자 같았다.

앙코르와트의 석조물. 환한 웃음이 여동생을 바라보는 오빠의 모습과 닮았다.
앙코르와트의 석조물. 환한 웃음이 여동생을 바라보는 오빠의 모습과 닮았다.

▲ 세상 가장 소중한 친구는 바로 남매가 아닐지

몇 해 전에도 한 장의 사진이 우리의 눈시울을 붉게 만든 적이 있다. 저 먼 곳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군인들이 마구잡이로 쏘아댄 총탄에 조그맣고 가난한 마을이 쑥대밭이 됐다.

신발도 신지 못한 3~4살 여자 아기가 폭음에 질려 잔뜩 웅크리고 있는데, 그 역시 고작 6~7살로 보이는 남자 아이가 웅크린 여동생의 어깨와 등을 꽉 끌어안고 있는 모습.

카메라는 자신이 먼저 총에 맞아도 좋다는 어린 소년의 처연한 눈빛을 담아내고 있었다. 여러 말이 필요 있을까. 그는 분명 오빠였을 터.

“세상이 주는 고통과 서러움을 함께 나누라고 신은 자매와 형제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 서술엔 무신론자도 감동시키는 힘이 담겼다.

때론 곁에 있는 오빠와 여동생, 형과 누나가 밉거나 싫어질 때가 있다. 사람이란 게 그렇고, 기자 또한 그렇다. 그럴 때면 위의 사진을 보며 마음을 바꾼다. 서로를 아끼고 위해주기에도 인간의 삶은 짧다. 그게 형제와 자매라면 더 말해 무엇할까?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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