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

길은 이야기 박물관이다. 이야기 종류에 따라 길의 종류도 나눠진다. 이야기가 풍성한, 또 이야기를 잘 보존하는 나라일수록 길의 종류도 다양하다. 그 길을 따라 행복한 이야기들이 문화로 재탄생하고, 그 속에서 사람은 다시 더 행복한 이야기를 낳았다.

우리도 얼마 전 길이 붐처럼 일어난 적이 있었다. 올레길을 시작으로 해파랑길, 금강숲길, 지리산 둘레길 등 지역마다 길에 대한 이야기를 찾고, 그 길을 복원하기 위해 전력투구를 하는 이야기들이 뉴스의 일면을 차지하였다. 길이 복원 될 때마다 사람들은 거대한 파도를 이루어 길을 휩쓸었다. 여행사들도 앞 다투어 여행상품으로 길을 꼭 넣었다. 길의 르네상스 시대였다.

어떤 길은 예약을 하지 않으면 갈 수도 없었다. 사람들의 열기에 길 주변에는 상권이 형성되었다. 그 상권을 따라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열었다. 길은 많은 이들에게 큰 희망을 선물하였다.

그런데 지금은? 영원한 것은 없다고 해도 길에 대한 그 뜨거웠던 열기는 한나절의 꿈보다 더 빨리 식어버렸다. 언제나 그렇듯 쇠락은 융성보다 더 큰 허무함을 남겼다. 길과 주변시설들은 사람들의 무관심에 흉물로 변해가고 있다. 완전한 자연으로 돌아가기까지는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상처투성이가 된 길은 그래도 인간들을 원망하지 않는다. 원망할 시간조차 아까운 것을 아는 길은 부지런히 자연으로 돌아갈 방법을 찾고 있다.

필자는 지난 주 목요일부터 토요일까지 2019 청소년 비즈쿨 페스티벌 참석차 광주에 있었다.

도전정신과 창조적 문제해결력으로 대표되는 기업가 정신을 실현하기 위한 학생들의 뜨거운 열기에 잠시나마 혼탁의 도가니인 이 나라 실정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자신들이 만든 제품을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해 기상천외 한 아이디어와 적극적인 판매 전략으로 무장한 학생들의 모습은 분명 르네상스 중심에 섰던 길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그냥 좋다!”라는 말을 필자는 좋아하지 않는다. 그냥이라는 말이 무책임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필자도 그냥이라는 말이 조건 없이 좋을 때가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뭔가에 몰두해 있는, 생기 넘치는 학생들을 볼 때이다. 필자는 청소년 비즈쿨 행사장을 활보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그냥 좋았다.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교육이 뭔지를 다시 생각했다.

그런데 그 모습도 잠시였다. 행사가 끝나는 토요일 오후 그렇게 생기 넘치던 학생들은 바람 빠진 풍선인형으로 변했다. 그 모습이 너무 낯설면서도 익숙하게 다가와 마음이 먹먹했다. 필자는 며칠 간 행복한 꿈을 꾼 것만 같았다. 분명 꿈과 현실 속 등장인물은 같은데 표정은 완전히 반대였다. 누가 저 아이들의 힘을 빼는지 미안했다.

폐장을 앞둔 부스에 혼자 앉아 있는 필자에게 건너편 부스에서 행사 기간 내내 종횡무진 했던 학생이 찾아와 인사를 했다. “선생님, 내년에 꼭 다시 뵐게요! 감사했습니다.” “그래, 너도 네가 보여주었던 활기참을 잊으면 안 된다. 내년엔 더 씩씩하게 보자!” 아이는 특유의 유쾌한 웃음을 남기고 행사장을 떠났다.

필자는 이 나라 모든 학생들이 무의미한 교육에 짓눌려 각자의 길을 잊지 않기를 빌고 또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