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종 경북대 교수·노문학
김규종 경북대 교수·노문학

인간의 이상한 심사 가운데 하나가 “남의 떡이 커 보인다!”일 것이다.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보다 남이 가지고 있는 것이 더 크고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는 얘기다. “내 손의 새 한 마리가 숲속의 두 마리 새보다 값지다”는 서양속담이 있지만, 우리는 숲속의 두 마리마저 욕망한다. 인간이 탐하는 무한욕망을 지적하는 수많은 경구와 거룩한 말씀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타자(他者) 소유의 대상을 부러워하는 못난이다.

얼마 전에 전남대 교수들과 경북대와 전남대를 비교하는 얘기를 주고받았다. 핵심은 어디가 더 좋은가, 하는 것이었다. 나는 거점 국립대로서 경북대의 문제점을 말했지만, 전남대 교수들은 경북대의 강점을 힘주어 강조했다. 거기서 깨달은 대목이 ‘남의 떡’이다. 명색이 가방끈이 조금 긴 먹물도 ‘남의 떡’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새삼 인식하는 자리였다.

1년 동안 교환교수로 광주와 전남대에 있으면서 경험하고 있는 것 가운데 나는 대구와 경북대에 부재하는 것을 보고 느낀다. 그 가운데 긍정적이고 바람직한 것을 기록하고 기억하려 애쓴다. 훗날 대구로 귀환한 다음 나의 경험과 기록을 구체적인 일상에 적용하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대구와 경북대에 한 학기 내지 잠시 머물렀던 그이들은 전남대와 광주에 부재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전달한 것이다. ‘남의 떡’에 내재하는 것은 비교하는 마음이다. 나와 타자, 내 소유와 타자 소유, 우리 것과 그들 것을 비교함으로써 가치판단에 도달하는 행위가 ‘남의 떡’에 깔린 사유의 근간이다. 비교는 대상화(상대화)를 통한 가치우열의 기본적인 방법론이다.

여기서 출발하는 것이 학생의 성적평정에 활용하는 상대평가다. 학생이 도달한 지적-정신적 수준상승 정도를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라, 다른 학생들의 수준과 비교함으로써 평가하는 방식이다. 지난 세기 90년대를 풍미(風靡)한 이른바 ‘에이 폭격기’들로 인해 대학에 강제된 상대평가는 교수와 학생 모두에게 독약이다. 학생은 자신의 평가를 남들과 비교당하기 때문이고, 교수는 학생들의 학업 수행결과가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그것을 상대화하는 기술자가 되어야 하는 까닭이다. 이런 이유로 전남대의 절대평가 기준은 경북대와 비교해서 관대한 편이다. 전남대 학생과 교수가 상대평가의 질곡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비교는 나와 우리의 위치평가와 미래기획에 필요하겠지만, 비교에도 넘어서는 아니 되는 선(線)이 있기 마련이다. 나와 우리가 살아가는 의미, 역사적인 존립근거와 미래의 청사진을 타자와 끊임없이 비교하는 것은 자살행위다. 나는 내 식대로, 타자는 그에 맞는 잣대로 살아가면 그만이다. 아주 긴 세월 우리는 후진국과 개도국 타령 속에 날밤을 지새웠다. 3050클럽에 가입한 지금 우리는 ‘남의 떡’ 타령과 작별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허구한날 나라경제가 망조가 들었다느니, 곳간이 거덜 났다느니, 국민경제가 붕괴 직전이라느니, 하고 협박하는 가짜언론이 너무나 많다. 일본은, 미국은, 유럽은, 중국은, 하는 ‘남의 떡’ 타령은 그만 둘 때다. 떡 파는 분들에게는 아주 미안한 얘기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