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우리는 어떠한 일을 하려고 생각하면 일단 주변부터 살피게 된다. 때에 따라서는 아무 생각이 없다가도 언론에 대서특필하는 특정 지역이나 단체의 성공담을 듣게 되면 순간적으로 우리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생기기도 한다. 그에 따라 사업을 성공시킨 그 지역이 지닌 장점이나 그 지역의 특수성을 함께 분석하기보다는 결과에 초점을 맞춘 벤치마킹을 토대로 ○○형 ××사업을 추진하기 마련이다. 요즈음 각 지역이 주목하는 청년창업도 마찬가지다.

지난 9월 미국 스타트업 게놈(Startup Genome)사는 올해도 세계 주요 도시별 창업생태계를 조사 분석한 보고서(Global Startup Ecosystem Report 2019)를 발표했다. 2018년 기준 세계 창업생태계 1, 2위 지역은 여전히 실리콘밸리와 뉴욕시가 차지한 가운데 중국의 베이징이 한 계단 올라 런던과 공동 3위를, 순위 변동이 없는 상하이는 8위를, 새롭게 추가된 홍콩은 25위를 차지하였다. 세계 30위까지 우리나라의 어떤 도시도 포함되지 못하였다. 이는 사실상 포항시가 창업생태계 조성을 위해 벤치마킹을 할 만한 지역은 국내 어디에도 없음을 의미한다. 청년 창업을 지원, 육성하기 위한 포항만의 아이디어가 절실한 시점이다.

위의 보고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세계적인 창업생태계가 조성된 지역의 결정요인 가운데 정책적인 분야는 사실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오직 하나의 요인만 꼽는다면 역시 ‘자금’이다. 스타트업은 자금 조달에서 일반 기업이 100이라면 불과 5 정도로 불리하다. 때문에 창업생태계의 핵심은 스타트업에 대한 ‘펀드’의 활성화 여부다. 따라서 포항이 우수한 아이디어를 가진 창업의 꿈을 지닌 청년들의 ‘꿈의 도시’가 되려면 ‘펀드’문제를 우선 해결해야만 한다. 포항은 창의적이고도 독자적인 ‘펀드’를 조성하고 이를 기반으로 하는 ‘창업생태계’를 조성할 수 있는 역량이 충분하다고 본다.

지금도 포항에는 수많은 은퇴자들이 창업을 꿈꾸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커피점, 편의점, 선술집 등에 눈을 빼앗겨 5천만 원 이하의 소자본으로 용감하게 창업하였다가 폐업하는 악순환에 가세할 뿐이다. 이들의 실패는 도심의 빈상가 숫자를 보태는 데 그치지 않고 지역의 부(富)를 축소시킨다. 만약 은퇴자금을 무계획적인 창업과 폐업으로 소비하지 않고 십시일반으로 모아 ‘펀드’를 조성하여 지역에서 창업을 꿈꾸는 자들의 ‘꿈의 펀드’로 만들면 어떨까. 이를 위한 신뢰성은 포항의 행정이나 정책기관이 나서면 된다.

만일 이와 같은 시민들이 조성한 ‘창업펀드’가 제 기능을 한다면 은퇴자들의 귀중한 자본소비를 억제함은 물론 신뢰할 수 있는 검증시스템만 거친다면 이 펀드에서 창업지원이 가능한 포항형 창업생태계가 절로 조성될 수 있다. 단 한건이라도 성공사례가 나타나게 되면 유니콘을 꿈꾸는 우수한 청년인재들의 포항유입도 가능하다. 창업공간도 차고 넘친다. 행정이 나서 구도심의 빈 점포를 우선 제공하면 된다. 이제 더 이상 다른 지역에 눈을 돌리지 말고, 우리 스스로 다른 지역에서 찾아와 벤치마킹할 수 있는 포항만의 창업생태계를 만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