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중이 임종할 즈음, 환공이 찾아와 관중의 후계자, 즉 재상 자리를 의논합니다. 환공은 포숙을 염두에 두었습니다. 하지만 관중은 뜻밖의 답을 내놓습니다. “아니 됩니다. 포숙은 강직하고 괴팍하며 사나운 성품을 갖고 있습니다. 백성을 난폭하게 다스리고 괴팍하면 인심을 잃으며 사나우면 백성들이 일할 용기를 잃고 맙니다. 두려운 것을 모르는 포숙은 환공 보좌역으로 마땅치 아니합니다.”

환공은 포숙 대신 수조, 개방, 역아 세 사람을 중용합니다. 아부하며 권력을 잡았던 문고리 3인방이었지요. 관중은 그들의 임명을 반대했지만 환공은 결국 그들의 아부를 이기지 못하고 최고 권력을 허락합니다.

제나라는 세 간신 때문에 극심한 위기에 처합니다. 환공이 죽은 후 67일 동안 시신을 방치할 정도로 잔혹한 자들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들이 집권한 기간에 포숙은 제나라 명문 대부로 인정받고 이후 10대에 걸쳐 명성을 떨칩니다.

이것이 어찌 된 일일까요?

관중은 미래를 내다보고 있었던 겁니다. 간신들이 권력을 잡을 것이 눈에 보이고 만약 그 상황에서 포숙이 재상 자리에 있으면 권력 다툼에 밀려 비참한 최후를 맞을 것으로 예견한 겁니다.

겉으로는 관중이 포숙을 해코지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친구를 사랑하는 깊은 마음이 담겨 있었던 겁니다. 오해를 불사하고 친구 미래를 위해 험담까지 서슴지 않았던 관중의 속 깊은 사랑을 생각해 봅니다.

누구나 수없이 많은 친구 명단을 갖고 있는 시대입니다. 수백 명 수천 명 친구 가운데 과연 나의 포숙과 관중은 어디에 있는 걸까요?

나를 부끄럽게 해 줄 돌직구 날리는 친구. 언제나 내 곁에 있어 내가 펼쳐 주기를 바라는 친구. 변함없이 묵묵히 내 곁을 지켜주고 있는 친구. 사람에게 실망하고 세상이 우리를 좌절하게 할 때, 우리 곁에는 변치 않는 친구 ‘책’이 있으니 감사할 뿐입니다.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저작권자 © 경북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