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생각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가장 완전하다고 여겨지는 상태’를 이상(理想)이라고 한다. 사람마다 생각이 같을 수는 없을 터이니 저마다 꿈꾸는 이상향(理想鄕)도 다를 것이다. 종교적으로는 기독교의 천국과 불교의 극락이 이상향일 것이며, 개인적으로는 재물과 권세, 명예, 건강 등이 다 충족되어 더 바랄 것이 없는 상태를 낙원(paradise)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이상의 실현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천국이나 극락에 이를 것이라는 확신을 가진 종교인들이 얼마나 될 것이며, 이 땅의 낙원에서 살고 있다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불가에서는 이 세상을 사바세계라고 하고 기독교 역시 타락한 인간들의 죄악과 고통이 만연한 세상이라 한다. 이상이란 한갓 실현가능성이 없는 신기루 같은 게 아닐까.

그럼에도 ‘꿈과 희망’이야말로 인류의 가장 위대한 발명이자 인류 역사의 원동력이었다. 인생이란 판도라 상자에서 나온 온갖 재앙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하나 희망 때문에 인생은 살만한 것이 되는 것이다. 꿈과 희망을 갖는다는 것은 삶과 세상을 긍정한다는 것이고, 아픔과 슬픔과 외로움 속에서도 한 가닥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사람에게는 이 세상이 살만한 곳이 된다. 그래서 희망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고, 철학자 키엘케골의 말처럼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인 것이다.

희망 역시 욕망의 일종이지만 맹목적이거나 무분별한 욕망과는 다르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덕목인 진선미(眞善美)에 대한 욕망이라야 희망이라 할 수가 있다. 불의한 욕망이나 탐욕은 희망보다는 절망에 이르는 길이 된다. 돈과 권력과 명예에 대한 열정과 욕망으로 많은 것을 이룬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추락하는 것을 자주 본다. 그들의 그토록 강렬한 바람은 그러니까 희망이 아니라 욕심이었던 것이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이상은 이상일 뿐 실현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희망은 무모하고 부질없는 꿈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진선미에 대한 희망은 그 자체로 삶의 긍정과 활력이라는 가치와 의미를 갖는다. 기쁨과 보람이란 바라던 것을 성취했을 때 얻는 마음의 보상일진대, 꿈과 희망이 없는 곳에는 기쁨과 보람도 없을 터이다. 또한 꿈과 희망이 다 실현되어 더 이상 꿈도 희망도 없는 상태를 과연 낙원이라 할 수 있을까.

꿈은 크게 가질수록 좋다는 말도 있고, 희망이 크면 실망도 크다는 말도 있다. 꿈이라고 다 바람직한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자라는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이란 반드시 가져야 할 덕목이지만, 그것이 헛된 망상이거나 그릇된 욕망이어서는 오히려 인생을 망칠 수도 있다.

예술과 종교는 이상을 좇지만 정치는 보다 현실적이어야 한다. 사회, 경제, 문화, 종교, 예술 등 인간 사회의 모든 현상을 총괄해야 하는 것이 정치이기 때문이다. 정치가는 이상주의자이기보다는 현실주의자라야 하는 이유다. 모든 개인의 꿈과 희망까지도 현실에 적용해야 하는 것이 정치다. 현실과 동떨어진 정치적 이념과 이상으로 나라를 망칠까 우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