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은 령

어느 해인가

장질부사로 뒷산에다 큰오빠 묻고 내려온 어머니

흰 옥양목 치마 둥그렇게 펴서

수심 깊은 곳 연꽃으로 핀 다음날

몹쓸 것으로 낙인찍힌 채

나의 기억 저편으로 끌려나간 늪

팽팽하게 당겨진 수면을 뚫고 빛이 내려갈 때마다

그리운 것들은 어느 방향으로 굴절되었을까

내가 저를 잊어가며

그때의 어머니와 꼭 같은 나이를 먹어가는 동안

내 삶의 저편에서 늙지도 못한 채

빛바랜 어린 날을 꼬깃꼬깃 접어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그리운 원동 늪

시인은 원동 늪을 볼 때마다 가슴에 새겨진 유년시절 상처의 기억을 떠올린다. 가슴 아픈 서사가 서러움으로 박혀있지만 파편화되고 비인간적인 후기 자본주의 시대를 건너가는 시인에게는 어린 시절의 기억 속으로 회귀하는 것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음을 본다. 그것은 오늘의 아픈 현실을 치유하는 중요한 의식의 하나이기 때문이리라.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