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

문재인 정부의 외교가 총체적 위기이다. 북핵 중재외교는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하고 김정은으로부터 “삶은 소대가리가 웃을 일”이라는 조롱만 돌아왔다. 한미동맹은 북한이 요구하는 ‘우리민족끼리’식의 외교를 추진하다보니 균열이 심화되어 동맹국 간 불신이 깊어지고 있다. 한일관계는 일본의 수출규제와 한국의 ‘지소미아(GSOMIA)’ 폐기로 정면충돌하면서 우리 경제와 안보에 적지 않은 충격을 주고 있으며, 중국과 러시아는 ‘한국방공식별구역’을 헤집고 다니고, 특히 러시아는 독도 영공까지 침범하였다.

왜 이렇게 외교 참사가 끊이질 않는가. 그것은 무엇보다도 최고정책결정자의 외교환경에 대한 잘못된 인식 때문이다. 대통령은 외교환경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위하여 외교부 및 전문가 집단의 자문을 받는다. 이 때 대통령의 ‘가치(value)지향성’이 강할수록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의 태도를 가지게 되며, ‘예스맨(yes man)’ 참모들은 대통령이 원하는 정보만 제공함으로써 정책결정자의 사실(fact) 인식이 왜곡된다. 외교환경을 정확히 인식해야 하는 대통령의 ‘이미지(image)라는 필터(filter)’가 제 기능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현 정부의 외교는 ‘목적과 수단 사이의 격차’가 너무 크다. 외교정책은 설정된 ‘목적’과 이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한미동맹의 당사자인 한국이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외교는 ‘중재(arbitration)’가 아니라 ‘중개(mediation)’이다. 북한 외무성의 최선희 부상도 “한국은 중재자가 아니고 플레이어(player)”라고 중재를 거부하지 않았는가. 중재외교가 동맹국인 미국에 의혹을 사고 북한에는 불신당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또한 강제징용 배상을 둘러싼 한일갈등은 일본의 경제보복과 한·미·일 공조체제의 와해를 초래함으로써 경제적·안보적 위협이 증대되고 있다. ‘수단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고려 없이 목적의 정당성에만 의존하는 외교’는 실패를 자초할 뿐이다.

더욱이 ‘외교는 내정의 연장선’에 있기 때문에 대통령은 외교를 국내정치에 이용하려는 유혹을 받는다. 정치공학적으로 생각한다면 남북대화는 북핵의 엄존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긴장을 완화시킴으로써 여당의 선거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또한 반일감정이 강한 나라에서 ‘강경한 대일외교’ 역시 동일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민주당의 민주연구원에서 분석한 “한일갈등이 내년 총선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대외비 보고서는 바로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한다.

이처럼 문재인 정부의 외교는 ‘사실보다는 가치’, ‘수단보다는 목적’에 치중할 뿐만 아니라, 선거승리를 위한 ‘정치공학적 접근’을 시도함으로써 총체적 위기를 자초하였다. 이러한 외교의 실패는 단지 한 정권의 실패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국가안보와 국민생존을 위협하게 된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이 있다. 외교는 ‘총성 없는 전쟁’이기 때문에 대통령의 ‘냉철한 현실인식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