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기 택

할머니들이 아파트 앞에 모여 햇볕을 쪼이고 있다

굵은 주름 가는 주름 하나도 놓치지 않고

꼼꼼하게 햇볕을 채워넣고 있다

겨우내 얼었던 뼈와 관절들 다 녹도록

온몸을 노곤노곤하게 지지고 있다

마른버짐 사이로 아지랑이 피어오를 것 같고

잘만 하면 한순간 뽀오얀 젖살도 오를 것 같다

할머니들은 마음을 저수지마냥 넓게 벌려

한철 폭우처럼 쏟아지는 빛을 양껏 받는다

미처 몸에 스며들지 못한 빛이 흘러 넘쳐

할머니들 모두 눈 부시다

아침부터 끈질기게 추근대던 봄볕에 못 이겨

나무마다 푸른 망울들이 터지고

할머니들은 사방으로 바삐 눈을 흘긴다

할머니 주름살들이 일제히 웃는다

오오 얼마 만에 환해져 보는가

일생에 이렇게 환한 날이 며칠이나 되겠는가

엄동을 건너온 노인들이 한가롭게 봄볕을 쬐는 정겨운 풍경을 본다. 봄 햇살은 숱한 고생의 흔적인 주름살을 펴주고 삐걱거리는 뼈와 관절도 젊어지게 해주고, 그 환한 빛 속에서 지나온 날들을 눈부시게 돌아보게 해준다. 삼라만상의 회생과 함께 노인네들을 환하게 밝혀주는 봄볕을 본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