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평론가 황광해, 청도를 맛보다

‘여정식당’의 옻닭.
‘여정식당’의 옻닭.

재미있는 닭집 2곳 여정식당 &오경통닭
10가지 한약재와 옻이 부드럽게 엉킨 ‘여정식당’ 옻닭

옻닭을 내놓는 집들은 많다. 오래된 집들도 많다. ‘여정식당’ 특이하다. 단순히 옻을 넣은 닭이 아니다. 옻과 더불어 열 종류 이상의 한약재를 넣고 만든다.

‘주인 할매’의 음식에 대한 정성이 아름답다. 간판에 ‘박정늠 아지매, SINCE 1970년’이라고 써 붙였다. 사진도 걸려 있다. 젊은 얼굴이다. 오래전의 간판, 사진이다. 실제 박정늠 할매는 여든의 노인이다. 지금도 꾸준히 가게에 나온다. 자신만의 ‘맛’ ‘음식’을 고집한다. 음식 만드는 일에 헌신한다. ‘나만의 옻닭’의 맛, 모양, 색깔을 가지고 있다. 닭이 상당히 큰 닭이다. 모른 척하고 슬쩍 물어본다. “토종닭입니까?” 대답이 재미있다. 조금 머뭇거리더니 “쪼매 노아 먹인 거래여”.

토종닭은 드물다. 병아리 수준의 닭들이 많으니 웬만큼 크면 토종닭이라고 내놓는다. 그렇지는 않다. ‘박정늠 할매’가 말하는 ‘일정 조건 방사닭’이 맞다. 예전에는 산과 들에 놓아먹인 닭들이 있었다. 양계장이 생기면서, ‘A4 용지 반장 크기’의 시설 안에서 키우는 닭들이 대부분이다.
 

‘여정식당’ 창업자 박정늠 할머니. 1970년 창업했다.
‘여정식당’ 창업자 박정늠 할머니. 1970년 창업했다.

닭고기 맛은 전혀 다르다. 왜 ‘쪼매 놓아먹인 닭’이라고 표현했을까? 큰 닭장을 만들고 그 안에서 자유롭게 자라도록 기른 닭이라는 뜻이다. 온전한 방사닭은 아니다. 육질은 비교적 질기지만 오랫동안 잘 삶았다. 살이 잘 부스러지면서도 쫄깃한 식감이 아주 좋다. 한약재와 옻의 맛도 적절하다. 한약재 고유의 맛과 옻의 맛이 서로 부드럽게 엉겼다. 고수가 ‘선’을 잘 정한 음식이다.

시장통의 어수선한 작은 식당이다. ‘먹고 살려고’ 시작한 생계형 식당. 2대 전승은 아니다. 아들, 며느리가 일을 돕고 있지만, 아직은 1대 박정늠 할매가 정정하다.
 

‘오경통닭’의 옹치기.
‘오경통닭’의 옹치기.

오직 닭고기만 소복이… ‘오경통닭’ 옹치기

간판에 가게 이름보다 ‘옹치기’라는 표현이 더 크다. 오래전에는 닭 한 마리를 통째로 요리하는 경우가 잦았다. ‘오경통닭’도 마찬가지. 주인이 ‘닭 한 마리가 웅크리고 있는 모습’을 빗대어 ‘옹치기’라고 이름 붙였다. 많은 사람이 ‘옹치기’를 궁금하게 여긴다. 주인이 독창적으로 붙인 이름이다.

눈여겨 볼만한 것은 이 집의 음식이다. 안동찜닭과 비슷하다. 닭볶음탕이 아니라 졸임이다. 안동찜닭이나 이 집 모두 흥건한 육수를 넣고 서서히 졸인다. 고기는 익고 양념은 닭고기 속으로 밴다.
 

옹치기 조리과정.
옹치기 조리과정.

긴 시간 졸인 것이라 고기는 쫄깃하면서도 부드럽고, 살코기에 양념 맛이 잘 배어 있다. 주문할 때 매운 정도를 조정할 수 있다.

안동찜닭과 다르게 채소와 당면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쟁반에 매운 고추나 통깨 이외에 닭고기만 소복하다. 닭고기 ‘정면승부’라는 표현이 떠오른다. 당면, 양파, 당근, 대파 등이 보이지 않는 특이한 닭고기 조림이다. 닭은 1.5Kg 내외로 비교적 큰 것이다. 닭고기 맛은 큰 닭이라야 온전하다.
 

현지 생산콩으로 만든 두부.
현지 생산콩으로 만든 두부.

순한 장맛 잘 배어든 순수한 맛 ‘소나무집’

더하는 음식이 아니라 빼는 음식이다. 대단히 맛있는 음식이 아니다. 오히려 맛이 없다. ‘무미(無味)’다. ‘단짠’을 뺀 음식이다. 재료의 소박한 맛이 살아난다. 순한 장맛이 잘 배어든 재료의 순수한 맛, ‘소나무집’의 맛이다.

분위기와 음식이 모두 푸근하다. 소박하다. 잘 정리된 ‘시골 할매집’의 음식이다. 나이든 노부부가 운영한다. 정원도 깔끔하고 음식도 깔끔하다. 청국장은 청국장의 맛이고, 직접 빚는 두부도 두부, 콩 그 자체의 맛이다. 더하지도 빼지도 않는다.
 

‘소나무집’의 청국장.
‘소나무집’의 청국장.

직접 담근 장으로 맛을 더한다. 그뿐이다. 억지 맛을 위해 조미료, 감미료를 더하지 않는다. 풋고추 무침도 맛있다. 아주까리 장아찌는 특이한 반찬이다. 아주까리는 피마자다. 오래전에는 흔했는데 이젠 귀한 음식이 되었다. 현지 생산 콩으로 만든 두부도 아주 좋다.

주인 할머니의 얼굴과 말투에 푸근함이 묻어 있다. 외진 곳을 찾는 외지 손님들을 위하여 음식에 정성을 더한다. ‘채널A 먹거리X파일’에서 ‘착한 청국장’으로 선정했다.
 

‘황토추어탕’의 추어튀김.
‘황토추어탕’의 추어튀김.

추어탕 맛집 3곳, ‘황토추어탕’ ‘대원식당’ ‘덕산추어탕’

청도의 추어탕은 추어탕이되, 추어탕이 아니다. 원형 청도 추어탕은, 미꾸라지를 주원료로 한 추어탕이되 메기와 피라미 등을 넣은 ‘잡탕 추어탕’이었다. 이제는 ‘잡탕 추어탕’은 대부분 사라졌다. 대신 추어탕과 메기탕, 찜 등의 메뉴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황토추어탕’의 추어탕.
‘황토추어탕’의 추어탕.

청도 읍내에서는 ‘황토추어탕’이 유명하다. 좁은 골목길 안의 허름한 노포다. 내부도 꼬불꼬불, 복잡하다. 메뉴에 추어탕과 미꾸라지 튀김, 미꾸라지를 넣은 만두도 있다.
 

‘덕산추어탕’의 메뉴판.
‘덕산추어탕’의 메뉴판.

“경상도식 추어탕은 토란대, 풋배추, 부추 등과 양념으로 산초가루, 방아잎 등을 넣는다”고 써 붙였다. 반찬 중에 곱게 구운 두부가 좋다. 두부 요리도 있다. 노포.

각북면은 청도와 대구를 잇는 교통의 요지다. 청도, 대구의 중간 지점이다. 30년을 넘긴 추어탕 집이 두어 곳 있다.

‘대원식당’의 추어탕.
‘대원식당’의 추어탕.

‘대원식당’은 오래된 청도 식 추어탕 흔적을 지니고 있다. 추어탕에 작은 양의 메기를 넣는다. 추어탕과 더불어 메기매운탕이 있다. 우리 콩으로 만든 두부도 있고, 두부 부침개도 내놓는다. 가게 내부와 음식이 깔끔하다. 열무, 배추를 섞은 물김치와 가지나물, 고추찜이 아주 좋다.

‘덕산추어탕’의 한상 차림.
‘덕산추어탕’의 한상 차림.

‘덕산추어탕’은 추어탕과 더불어 호박전, 미나리 전이 특이하다. 호박전은 겨울철 메뉴이나 미나리 전은 제철인 봄철과 가을에도 가능하다. 가을 미나리 전은 줄기가 없는 이파리로, 밀가루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부쳐내는 미나리 전이다.
 

청도 석빙고.
청도 석빙고.

유일하게 뼈대 볼 수 있는 조선의 냉장고 석빙고(石氷庫)

‘청도에 있는 돌로 만든 얼음 저장 창고’다.

얼음의 의미는 가볍지 않다. 음식은 ‘봉제사 접빈객(奉祭祀 接賓客)’의 주요 도구다. 음식은 제사 모시고, 손님맞이의 필수 조건이다. 조선 시대 제사 중 가장 큰 것은 ‘나라의 제사’ 즉, 종묘 제사와 공자(孔子) 모시는 제사다. 손님맞이는 지방 관청을 찾는 중앙의 관리들이다. 군현의 경우, 관찰사 등 상위직 관리들과 지방을 찾는 관리들에게 늘 음식을 내놓아야 했다. 공식적인 ‘지응(支應)’이다. 각 지방 관청에서도 선왕을 모신 제사와 더불어 공자 제사를 중요히 여겼다. 지방 관청마다 향교가 있고, 향교에는 대성전이 있다. 청도도 마찬가지. 청도 읍성 안에 향교가 있고 지방 관청이 있었다. 향교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석빙고가 있다. 겨울철을 제외하면 음식은 쉬 상한다. 냉장, 냉동고가 없던 시절이다. 관청 옆에 향교가 있고, 향교 옆에 빙고가 있었다.

대부분의 얼음 창고는 나무로 만들고 짚으로 지붕을 덮은 ‘목빙고’였다. 쉬 무너진다. 물이 묻은 나무는 빨리 삭는다. 늘 보수를 해야 한다. 지붕도 매년 새로 이어야 한다. 낭비가 심하니, “석빙고로 만들자”고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예산이 문제다. 석빙고는, 한번 만들면 오래 가지만, 처음 만들 때 많은 예산이 필요하다. 돌을 깎아야 하고, 많은 인력을 동원해서 힘들게 만들어야 한다. 목빙고에 비해서 재료, 인력이 몇 곱절 필요하다. 시간도 많이 걸린다. 목빙고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석빙고 몇 개가 경주, 안동, 현풍, 창녕 영산 등에 남아 있다. ‘청송석빙고’를, 숙종 조에 만든 오래된 것, 경주 석빙고 다음으로 큰 것이라고 설명한다. 부족하다. “유일하게 빙고의 뼈대를 모두 볼 수 있고 따라서 석빙고의 구조를 제대로 볼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해야 한다.

석빙고의 내부 구조는 홍예(虹蜺)와 판석(板石), 바닥의 돌들, 물길, 공기 구멍으로 이루어진다. 홍예는 돌을 짜 맞추어 마치 무지개처럼 만든 것이다. 석빙고의 내부에서 천정을 보면 마치 갈빗대 같은 돌 구조물이 보인다. 홍예다. 홍예를 지탱하고 연결하는 것은 넓적한 돌, 판석이다. 청도석빙고에는 4개의 홍예가 남아 있다. 공기를 차단하더라도 빙고 내부의 얼음이 녹고, 물이 생긴다. 이 물들을 외부로 빼내는 물길이 있었고, 공기를 통하게 하는 공기 구멍이 있었다. 청송 석빙고는, 물길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지만, 공기 구멍은 볼 수 없다.

청도석빙고. 재미있다. 제대로 보존되지 않아서 대부분 무너졌다. 앙상한 뼈대 몇몇만 남아 있다. 봉분이 없으니, 오히려 석빙고의 안팎을 제대로 짐작하고, 그려 볼 수 있다. 청도석빙고의 ‘반전’이다.     /음식평론가 황광해

    음식평론가 황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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