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의 지역항공사 다시 취항해야 한다
② 사우스웨스트, 러브필드 공항을 사랑하다

사우스웨스트 본사가 위치한 텍사스주 댈러스의 러브필드 공항 내부 모습.
사우스웨스트 본사가 위치한 텍사스주 댈러스의 러브필드 공항 내부 모습.

 

美 러브필드 공항, 케네디 대통령도 이용한
댈러스 지역 상징적인 장소이자 교통 중심
‘우리가 러브필드를 사랑해온 이유’ 문구로
사우스웨스트社의 애향심 그대로 드러내
캘러허 회장 “유머감각 있는 사람 채용하라”
항공사 첫 회사 주식 분배 등 파격 ‘성공 비결’

□ 댈러스의 토종 공항, 러브필드

댈러스 러브필드(DALLS LOVE FIELD) 공항은 지난 1917년에 군공항으로 개항해서 1927년부터 민항기를 취급하고 있다.

러브필드의 ‘러브(LOVE)’는 사랑을 뜻하는 것이 아닌 1911년 비행기 추락사고로 사망한 조종사 모스 러브에서 이름을 따온 것이다.

하지만, 사우스웨스트는 ‘THE REASON PEOPLE HAVE ALWAYS LOVED LOVE FIELD(우리가 러브필드를 러브(사랑)해온 이유’라는 캐치프레이즈로 공항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고 있다. 사우스웨스트의 본사 역시 이 공항에 있다.

러브필드 공항은 단순한 공항으로 보기보단 댈러스 지역주민들과 함께 호흡하며 역사를 함께해온 공항으로서도 의미가 크다. 그 유명한 존 F. 케네디 대통령도 암살 당하기 전, 1962년 11월 22일 대통령 전용기인 에어포스 원을 타고 러브필드 공항에 첫발을 내딛은 바 있다.

그때 미국 정계는 혼란한 상태였다. 케네디 대통령의 민권을 앞세운 정책이 각계에서, 특히 극우세력들의 거센 반발을 받는 상황이었다.

케네디 대통령은 대선을 앞두고 텍사스 주 지역의 지지도가 떨어지자 이를 회복시키기 위한 의도로 댈러스를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역사로 남기기 위해 공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인 다운타운 딜리 플라자에 ‘6층 박물관(6th floor museum)’이 자리잡고 있다. 박물관에는 현재까지도 케네디 대통령을 그리워하는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케네디 대통령 암살과 관련한 미국 갤럽의 조사결과, 미국인의 60% 이상은 여전히 케네디 암살에 배후가 있다고 믿었고 오스왈드 단독범행이라는 답변은 30%에 그쳤다.

러브필드 공항에서 내린 케네디 대통령은 시가지에 오픈카 종류인 전용차를 타고 부인과 행진하다가 암살범 오스왈드에 의해 모두 3발의 총격을 맞고 사망했다.

한발은 전용차를 빗나갔고, 한발은 케네디 대통령과 텍사스 주지사를, 나머지 한발은 케네디 대통령의 머리를 직격했다.

오스왈드는 대통령 암살을 위해 여러 장소를 물색하다가 다른 곳에 비해 덜 눈에 띄면서도 대통령의 동선이 한눈에 들어오는 장소이기에 딜리 플라자를 선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물관에는 당시 행진 이후의 스케쥴이었던 댈러스 지역 유지들과의 만남 장소에서 사람들이 대통령의 총격소식을 듣고 손을 모은 채 회복을 기도하는 사진 등 역사의 흐름이 여실히 소개되고 있다.

박물관에서 만난 텍사스 주민 앤더슨 씨는 “러브필드 공항은 지역의 상징적인 장소로 케네디 대통령 방문 역사는 물론, 현재 댈러스 발전에 일등공신 역할을 하는 교통인프라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러브필드 공항 내에 설치된 사우스웨스트의 셀프수속기의 모습.
러브필드 공항 내에 설치된 사우스웨스트의 셀프수속기의 모습.

□ 러브필드 공항을 고집한 사우스웨스트

지금의 댈러스 제1공항 댈러스 포트워스 국제공항이 완공되어가는 당시, 사우스웨스트는 기존의 러브필드 공항에 그대로 남아 있기를 바란다면서 공항 관리공단 측에 신공항으로 옮겨 가지 않겠다는 뜻을 미리 전했다.

댈러스 도심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러브필드 공항이 도시에 빨리 들어가 일을 보고 싶어하는 출장자들에게 안성맞춤 공항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고객들을 상대로 도심에서 30분이나 떨어진 포트워스 공항으로 발착지를 옮겨 간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는 게 사우스웨스트의 입장이었다.

하지만, 1968년 채권 규정에 의하면, 신공항은 항공사들의 이착륙비와 시설 사용비 등 공항 이용료를 통해 공항 시설에 투자된 돈을 회수하기로 되어 있었고 만약 손실이 발생하면 공항 관리공단이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었다.

결국 이전에 사우스웨스트가 휴스턴의 인터컨티넨털에서 하비로 옮겨 간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휴스턴과 포트워스 일대의 항공사들은 또다시 사우스웨스트의 공항 비이전 고집을 괘씸하게 생각해 1972년 6월 6일, 법원에 고소한다.

또다시 법정 싸움에 돌입한 사우스웨스트는 32일간의 심리 끝에 ‘러브필드 공항에 머물러도 좋다’는 판결을 간신히 얻을 수 있었다. 연방 대법원에서도 상소를 ‘이유 없음’으로 기각했다.

오히려 1975년 2월 14일 사우스웨스트를 공격한 브래니프와 택사스 인터내셔널이 미 정부에 의해 기소됐다. 혐의는 사우스웨스트의 정당한 영업 행위를 방해해 그들을 항공업계로부터 쫓아내려 했다는 것이었다.

브래니프와 텍사스 인터내셔널은 ‘이의 없음’으로 혐의를 인정했고 10만 달러의 벌금형에 처해졌다. 1977년, 러브필드 공항을 사수하기 위한 5년간의 법정공방은 사우스웨스트의 승리로 끝났다.

물론 33회에 걸친 사법부 및 행정부 처분을 거치면서 사우스웨스트는 전국의 법원이나 행정부 중 가보지 않은 곳이 손에 꼽을 정도로 경험(?)을 쌓았다.

이후에도 1979년에 연방의회가 포트워스 공항을 살리기 위해 러브필드에서 장거리 영업을 못하도록 하는 법안을 제정하자, 사우스웨스트는 해당 조항에서 취항이 허가된 인근 주에 미니 허브를 만들어서 환승환적을 해가면서까지 영업했다.

해당조항은 지난 2006년에 폐기됐고 사우스웨스트는 사랑하는 러브필드를 지켜냈다. 더욱이 공항에서 나가는 도로 이름마저 사우스웨스트의 창업자의 이름을 따 ‘허브 캘러허 웨이’로 바꿔버렸다.

수많은 텍사스 주민들의 환영을 받으며 러브필드 공항을 방문한 케네디 대통령 부부.
수많은 텍사스 주민들의 환영을 받으며 러브필드 공항을 방문한 케네디 대통령 부부.

□ 러브필드 사랑만큼 색다른 조직 운영

러브필드 공항을 고집하는 사우스웨스트는 그 애향심만큼이나 조직운영에서도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사우스웨스트의 정신을 키워온 캘러허는 1978년 회장에 취임했다. 취임 후 인사부에 ‘유머 감각이 있는 사람을 채용하라’라는 특별 주문을 했다.

사우스웨스트는 유머가 많은 사람일수록 변화에 잘 적응하고, 스트레스를 받아도 창조적이며 또 보다 효율적으로 일한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놀 때 열심히 놀고 남들보다도 더 건강하다는 것.

사우스웨스트는 직장 분위기가 밝지 않으면 생산성, 창조성, 적응성을 떨어뜨리며 직원 채용 기준에서 유머를 최우선 조건으로 설정함으로써 직장 안팎에서 즐거움, 자부심, 재미 등을 찾아가는 방법을 고민한다.

특히 직원을 자원 이상의 존재로 여긴다. 직원 채용에 통일된 하나의 근본 원칙으로 ‘정신이 똑바로 박힌 사람’을 뽑는다는 것이다.

유머 감각은 물론이고, 남들에게 베풀 줄 아는 이타심을 얼마나 갖고 있는지도 중요 기준이다. 즉, 태도를 본다는 것인데 실제로 항공업계에서는 파격적인 회사 제복인 버뮤다 반바지를 입을 용의가 있냐고 물어보고, 이를 거부하는 사람은 탈락시켰다.

모험정신을 본다는 의미로, 필요한 일은 뭐든지 하려고 달려든다는 정신을 함양시키는 문화로써 사우스웨스트에 유난히 장기 근속자가 많은 이유 중 하나로도 들고 있다.

케네디 대통령을 보기 위해 댈러스 러브필드 공항으로 몰려든 인파들.
케네디 대통령을 보기 위해 댈러스 러브필드 공항으로 몰려든 인파들.

‘10분 턴’을 가능하게 하는 정신적 자세가 이미 입사에서부터 만들어짐을 볼 수 있다.

사우스웨스트는 항공사의 이익도 직원들에게 나눠줄 만큼 파격적이다. 1973년 사우스웨스트는 항공사로는 처음으로 직원을 위한 이익 나누기 계획을 도입해다.

오늘날에도 모든 사우스웨스트 직원은 채용된 다음해 1월 1일자로 이 계획에 참여하고 있다.

사우스웨스트는 세전 소득의 15%를 이익 나누기 계획에 배정한다. 1970년대에 사우스웨스트는 사원들의 임금 양보를 요구하지 않은 상태에서 회사 주식을 나눠 준 유일한 항공사였다.

1973년 이래, 매년 이익을 내온 사우스웨스트는 이익을 직원들에게 나눔으로써 오히려 주가가 몇배로 뛰어오르는 진풍경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이익 나누기는 중역들뿐만 아니라 여러 명의 직원들을 백만장자로 만들었다. /황영우기자 hyw@kbmaeil.com

저작권자 © 경북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