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병 근
하나의 이유만 있으면 된다
흙과 돌들 사이 흐르면서
모자람 없이 더 낮은 곳으로 닿기 위해
내리막보다 더 가파르게 달렸다
이제 약속을 지킬 때가 온 것이다
웅덩이보다 더 목마르게 고이고
바람보다 더 가볍게 출렁이다가
제 몸을 훨씬 앞질러 달아나던 물이
절벽에 이르러 이윽고 옷을 벗는다
저 망설임 없는 물의 장엄한 약속을 보라
물은 꼿꼿이 세운 자신의 알몸을
딱 한 번 보여준다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은 그 절벽에 닿기까지 최선을 다해 달려와서 망설임 없이 뛰어내린다. ‘물은 꼿꼿이 세운 자신의 알몸을 딱 한 번 보여준다’는 인상적인 표현에서 폭포의 순수한 열정을 예찬하는 시인의 목소리를 듣는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