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락보전 뒤 높은 곳에 있는 칠곡 도덕암의 나한전과 응진전. 도덕암은 경북 칠곡군 동명면 한티로 260에 위치해 있다. 

미모사를 아는가?

살짝만 건드려도 잎이 밑으로 처지고 싸늘하게 오므라드는 풀꽃이다. 뜬금없이 날아든 시끄러운 소리에 마음이 불같이 달아올라, 결국은 부족한 스스로에게 상처받아 의기소침해진 나는 한 포기 미모사가 되어 집을 나선다.

<능엄경>에 ‘반문문성(反聞聞性)이라는 말이 있다. 어떤 소리를 듣고 있는 나를 다시 들여다 본다는 말이다. 나의 반문문성은 늘 한 발 늦게 행해져 스스로를 비참하게 만든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감정의 노예가 되어 허둥대는 마음을 또 다른 내가 조용히 지켜보는 일은 쉽지가 않다.

무작정 절을 찾아 팔공산 순환도로를 달린다. 리기다소나무와 적송들이 어울려 있는 초입을 지나자 적송 우거진 숲이 이어진다. 호젓한 평화에 마음이 즐겁다. 모든 경계가 사라지는가 싶더니 임산물 체취를 막는 커다란 가로펼침막과 길가에 쳐진 줄이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세상 모든 사물에는 눈과 입이 있다. 남이 가지지 않은 무언가를 내세울 수 있다는 것은 자칫 교만함으로 이어지기 쉽다. 불필요한 오해는 사고 싶지 않아 경사 심한 비탈길을 용을 쓰며 오른다. 도시의 소음과 불협화음을 피해 왔지만 삶은 장소와 때를 가리지 않고 따라 온다.

높다란 콘크리트 기단 위에서 도덕암(道德庵)이 나를 지켜본다. 팔공산 자락에 있는 사찰이지만 절 이름을 따서 도덕산 도덕암이라 부른다는 독자적인 자존감이 무엇보다 마음에 든다. 컹컹 개 짖는 소리에 팔공산이 떨리고 공양주 보살이 반긴다. 위협적으로 보이던 덩치 큰 두 마리 개가 법당으로 들어서는 나를 보고서야 이내 온순해진다. 낯선 이를 식별하는 그들만의 지혜조차 크게 보인다.

435년(눌지왕 18년)에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는 도덕암은 968년(광종 19년)에 혜거국사가 대대적으로 중수하여 칠성암이라 칭하다 1854년 선의대사가 중수하여 도덕암으로 부른 후 영남 3대 나한기도 도량으로 알려진 암자다. 스님은 저녁 무렵에나 돌아오실 거라는 귀띔에 홀로 햇살 따가운 경내를 산책한다.

800년의 풍파를 견뎌온 모과나무나 고려 광종이 혜거 국사를 왕사로 모시기 위해 이곳에서 사흘간 머물며 속병을 고쳤다는 어정수도 건성으로 지나친다. 자연석 축대 위에 나란히 앉아 있는 나한전과 산신각, 응진전 사이에 나도 전각처럼 서서 서쪽을 바라본다. 저 멀리 물결을 이루는 산들을 넘고 넘으면 피안의 세계에 이를 것만 같다. 내 안에 느닷없이 들어온 껄끄러움을 피해다니느라 지쳐 있던 나를 가만히 다독여 주는 이는 누구일까?

경내는 적막할 만큼 고요하다. 보살님들은 기척이 없고 덩치 큰 개들도 나른한 오후에 취해 졸고 있다. 요사채 돌담 위에 핀 꽃들을 카메라에 담는데 가파른 경사길을 차 한 대가 올라온다. 부리나케 공양주 보살이 마중나가는 모습이 잡힌다. 그 종종걸음을 따라 내 눈도 호기심 가득 안고 비탈길을 따라나선다. 저녁 무렵에나 오신다던 주지 스님이 일찍 돌아오신 듯하다. 스님의 가방을 받아 들고 오순도순 대화를 나누며 올라오는 보살님의 환한 표정에서 잊고 있었던 옛날을 떠올린다.

내 어린 날, 출타하신 할아버지가 돌아오면 어머니는 언제나 하던 일을 멈추고 달려나가곤 했다. 조부의 손에 들려 있던 가방이나 짐을 받아들며 웃는 얼굴로 맞는 것은 집안의 질서와 공경의 표현이었다. 적당한 거리와 적당히 예가 우러나던, 그 그립고 따뜻한 풍경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졌을까? 소소한 풍경에서 도덕암의 숨결이 읽힌다.

나를 키워준 아름다운 기억들과 흔들리며 사라져간 그리운 것들로 가슴 한켠이 허전하다. 햇살도 한껏 자세를 낮추고 휘어질 무렵, 스님은 모과나무 있는 쪽으로 방향을 틀어 이쪽으로 올라오신다. 퍼뜩 정신이 든다. 하필이면 나는 주지 스님의 방 앞을 서성거렸던 모양이다.

조낭희 수필가
조낭희 수필가

운이 좋게 스님과 차담을 나눈다. 임종을 앞둔 환자처럼 누워 있는 겹겹의 산들과 피곤한 하루가 너울거리며 사라지는 서쪽 풍경이 커다란 유리문으로 들어온다. 깔끔한 이미지를 풍기는 법광 주지스님, 산사에서 마시는 캡슐커피조차 낯설지가 않다. 모과나무, 어정수, 낙조, 도덕암의 세 가지 자랑거리와 대를 이어 찾아오는 불자들이 많아 가족처럼 화목하다는 스님의 말씀을 듣는 동안 어느 새 도덕암이 내 안에 자리잡는다.

커피를 마시면서 내 눈길이 자꾸 서쪽풍경을 향해서였을까? 스님은 내면을 바라보고 성찰하기를 바라시며 회광반조(回光返照)에 대해 말씀하신다. 사람이나 사물이 쇠멸하기 직전에 잠시 왕성한 기운을 되찾는 경우를 비유하는 말이기도 하다. 여자의 일생 중 세 번의 아름다운 때를 언급하시며, 스스로를 돌아보며 중후함을 갖춰야 할 마지막 시기의 아름다움을 당부하신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을 돌이켜 볼 줄 안다면, 그것이 부처님 자리에 들어서는 순간이리라. 멀고도 먼 길이지만 가는 길은 뿌듯하다. 중후한 아름다움, 커다란 과제 하나 안고 도덕암을 나서는데 저녁 공양하고 가라는 보살님의 따뜻한 미소가 암자를 밝힌다. 덩치 큰 개도 더 이상 짖지 않았다. 도덕암의 낙조는 결국 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보다 아름다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