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

“계급 아파르트헤이트가 생겨나고 있다”

미국 사회의 불평등에 대한 로버트 퍼트넘의 지적이다. 한국 사회도 이와 다르지 않다. 부모들의 재력과 학력, 사회적 네트워크가 아이들에게도 대물림되면서 계급 분리가 일어나고 있다. 최근 교육부 특별감사로 적발된 대학 교수들이 미성년 자녀를 논문 공저자로 이름을 올린 사건만 봐도 단순히 연구윤리적 차원의 문제만은 아니다. 논문 공저자로 등재된 이들 자녀 다수는 학생부 종합전형으로 대학에 들어갔거나 해외 대학에 진학했다고 한다. 부모의 인맥과 연줄, 특권이 편입학 과정에 영향을 미치고 결과적으로 학벌이 세습되고 계층이 대물림 되는데 대학 사회가 진앙지가 되고 있다.

공평과 공정의 가치가 모두 무너지고 있다. 과거 교육은 계층의 상향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사다리였으나 이제 “고등교육은 오히려 불평등을 일구는 기제”가 되고 있다. 출신 성분과 관계없이 자신의 노력만으로 ‘개천에서 용’이 될 수 있었던 시대는 끝났다. 더 높은 학력과 더 많은 사회적 자본을 갖고 있는 부모가 자신의 자녀들에게 득이 되는 방향으로 경쟁의 장을 왜곡하고 있다. 리처드 리브스는 <20 VS 80의 사회>에서 “불평등은 어린 시절에 시작되며 세대를 거쳐 전승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상위 20%가 기회를 ‘사재기’하기에 다른 아이들은 공정한 기회를 박탈당한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자신의 재능과 노력으로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은 사실상 전설이 되어버린 셈이다.

현재 한국 사회의 불편한 문제의 본질은 ‘불평등’이다. 교육이 사회적 불평등을 고착화하고 있어 더 큰 문제다. 공평성의 측면을 고려해 만든 수시제도가 기회균등과 지역균형, 공교육 정상화라는 본래 취지와는 달리 운영되고 있음이 극명한 예다. 학생 개인의 노력보다 학부모의 재력과 관심, 교사의 부정이 개입할 여지가 있는 통로가 되어버렸다. 오죽하면 학생부종합전형을 ‘금수저’ 전형으로 부르고 있겠는가. 부모의 사회경제적 배경이 자녀들의 미래 학교를 결정하고 부모의 욕망이 자식으로 전이되는 이행기다. ‘억울하면 부모 탓을 해라’는 식의 부박한 논리가 교육 현실을 잠식하고 있다. 소수의 최상위권 학생에게만 모든 것이 집중된 나머지 학생들은 차별을 내면화하고 있는 것이다.

누가 계층상승의 사다리를 걷어차고 있는가? SKY 대학을 정점으로 사회적 특권이 평생 카스트처럼 지배하고 있는 현실에 묻는다. 대학이 계급격차를 해소하기는커녕 신분과 위계를 더욱 견고히 만들고 있다. 집안이 좋으면 무임승차가 가능한 밀실문화, 성적만 좋으면 모든 것을 몰아주는 성적지상주의 구조가 문제다. 오는 2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민주평등사회를 위한 전국교수연구자협의회’ 주관으로 고등교육의 불평등 문제를 논하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캐슬의 구조와 캐슬 밖의 목소리’를 주제로 대학의 공공성을 어떻게 강화할 것인지 의견을 나누며 해법을 찾아보려는 노력일 터다. 승자독식의 피라미드 구조는 더 이상 민주주의 사회라고 말할 수 없다. ‘을의 민주주의’를 위한 정치혁명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