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휘논설위원
안재휘 논설위원

“지금 공무원들은 나라가 망할 때까지 입을 다물고 있겠다는 심사다. 이는 내가 배웠던 충신(忠臣)의 자세가 아니다” ‘조국 대란’ 광풍에 묻혀 별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얼마 전 국장급 공무원 한 사람이 파면됐다. 한민호 전 국무총리소속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 사무처장 이야기다. 그의 핵심 파면 사유는 ‘근무시간에 페이스북에 VIP(대통령)와 정부를 원색적으로 비판했다’는 것이었다.

한 전 사무처장의 이력은 특이하다. 그는 대학 시절 운동권에 몸담았다가 무기정학을 당해 간신히 졸업했다. 고등학교에서 한동안 역사교사를 하다가 ‘공산주의를 하려면 독재를 할 수밖에 없다’는 깨달음으로 전향한 뒤 1994년 행정고시를 거쳐 문체부 공무원이 된 인물이다. 재작년 문체부 노조 투표에서 ‘바람직한 관리자’ 부문 1등으로 뽑혔던 그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조국 대란’의 여파 속에 집권세력 안에서도 소위 ‘소신 발언’이라고 불리는 딴소리들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정성호 민주당 의원은 국회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정치인들이 자기 정당의 정파적 이익에 부합되면 ‘검찰이 잘했다’ 칭찬하고, 우리 정파에 불리한 사법 절차가 진행되면 비방과 외압을 행사한다”면서 “그런 행태야말로 사법농단”이라고 싸잡아 비판했다.

같은 당 이철희 의원의 튀는 발언도 눈에 띈다. 그는 서울고법·서울중앙지법 국감장에서 지난 2017년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구속영장 기각 당시를 거론하며 “2년 만에 여야가 바뀌었다. 이게 뭐냐. 창피하다”면서 “부끄러워 법사위원 못하겠고, 국회의원 못 하겠다”고 한탄했다. 이 의원은 자신의 블로그에 참회록을 쓰며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정부·여당이 밀어붙이고 있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대해 쓴소리를 내놓은 금태섭 민주당 의원의 소신 발언 또한 눈길을 끈다. 금 의원은 “전 세계 어디에도 공수처 유사 기관은 없다”고 상기하며 “수사·기소 분리가 글로벌 스탠다드이고 검찰개혁 방안도 분리하려는 것인데, 왜 공수처는 수사권과 기소권을 다 가져야 하냐”고 지적했다. 그는 작금 민주당 지지세력 안에서 영락없는 ‘미운 오리 새끼’ 신세다.

‘조국 대란’ 한복판에서 하나의 변곡점을 형성했던 인물인 김경율 전 참여연대 집행위원장(회계사)의 말은 더욱 신랄하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조국 사태는 무능한 진보가 부패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고 진단하고 “진보지식인들의 무비판적 태도는 단순한 ‘분열’이 아니라 ‘몰락’”이라고 단정했다.

따지고 보면 지금 뒤늦게 ‘바른말’에 나서는 집권세력 인사들은 하나같이 나라를 이 꼴로 만드는데 앞장선 입비뚤이 궤변론자들이다. ‘입은 비뚤어져도 말을 바로 하랬다’는 속담이 떠오른다. 가증스럽기는 하지만, 이제라도 참말을 하니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까. 파면당한 한민호 전 사무처장의 항변이 여운을 남긴다. “내가 페북질로 징계를 받아야 한다면 ‘죽창가’ 등 폭풍 페북질을 하던 조국은 왜 괜찮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