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항아리 등 제사유물 110점
경주 쪽샘 44호분서 최초 발견
“인물·복식묘사 등 내용 구체적
고구려와 교류 보여주는 자료”

신라 행렬도가 그려진 토기 조각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신라 적석목곽묘(積石木槨墓·돌무지덜넛무덤)인 경주 쪽샘 44호분에서 1천500년전 선으로 표현한 행렬도가 새겨진 토기가 발굴돼 학계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기마, 수렵, 무용 등 복합적 내용을 담은 신라시대 행렬도가 발견되기는 처음으로, 인물·동물·복식 묘사가 구체적이고 회화성이 뛰어난 흥미로운 자료로 평가된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5세기에 조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경주 황오동 쪽샘 44호분 발굴조사를 통해 호석(護石·무덤 둘레에 쌓는 돌) 북쪽에서 신라 행렬도를 그린 장경호(長頸壺·긴목항아리) 조각들을 수습했다고 16일 밝혔다.

쪽샘 44호분은 장축 30.8m·단축 23.1m인 타원형으로, 국립경주박물관이 조사 중인 금령총(金鈴塚)과 규모가 유사하다. 2014년 발굴을 시작했으며, 무덤 주변에 발굴 과정을 볼 수 있는 가설 건물이 있다. 쪽샘은 샘물이 맑아 쪽빛을 띤다고 해서 붙은 지명이다.

이번에 찾은 장경호는 높이가 약 40㎝로 판단되며, 대형 항아리인 대호(大壺) 옆에서 드러났다. 제작 시기는 5세기 중후반으로 짐작되고, 무덤 제사에 사용했다가 일부러 깨뜨렸을 가능성이 크다고 연구소는 설명했다.

그릇 곳곳에 다양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으며 문양은 크게 4단으로 구성됐다. 1단과 2단, 4단에는 기하학적인 문양이 반복돼 있고 3단에는 다양한 인물(기마·무용·수렵)과 동물(사슴·멧돼지·말·개)이 연속으로 표현됐다. 그림을 세부적으로 보면, 말 탄 인물과 말들이 행렬하는 장면, 기마행렬을 따라가는 인물들이 무용하는 장면, 활 든 인물들이 동물들을 사냥하는 장면과 말 탄 주인공이 개(추정)와 함께 행렬하는 장면 등이 묘사돼 있다.

문양의 전체 구성으로 보아 행렬도를 묘사한 것으로 추정되며, 출토 정황상 제사용 토기로 제작돼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고 연구소는 덧붙였다.

연구소 관계자는 “행렬이라는 큰 주제를 바탕으로 기마·무용·수렵을 묘사한 복합 문양은 현재까지 신라 회화에서 처음 확인된 사례로, 복식과 인물묘사, 동물묘사 등 내용 구성이 풍부하고 회화성이 우수해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며 “행렬도를 구성하고 있는 여러 표현들이 고구려 고분벽화의 내용 구성과 유사해 신라·고구려 대외관계 연구에도 적극 활용될 전망”이라고 전했다.

신라 행렬도 세부 문양. 그림에서 짙은 색이 현존하는 토기 조각이며, 흐린 부분은 추정해 넣은 것이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신라 행렬도 세부 문양. 그림에서 짙은 색이 현존하는 토기 조각이며, 흐린 부분은 추정해 넣은 것이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연구소는 행렬도 토기 외에도 호석 북쪽에서 그림이 있는 토기를 하나 더 발견했다. 발형기대(鉢形器臺·그릇받침) 다리 부분 2점으로, 표면에 말을 그렸다. 그림 속 말은 갈기와 다리 관절·근육·발굽이 선명하며, 가슴과 몸통에는 격자무늬를 새겼다. 이 무늬는 말갑옷을 표현한 것으로 보이며, 삼국시대 토기 말 그림 중 회화 표현이 가장 우수하다고 연구소는 설명했다.

호석 북쪽에서는 대호 9점을 비롯해 제사 유물 110여 점이 출토됐다. 대호는 호석을 따라 일정한 간격으로 묻었고, 대호 내외부에서는 고배(高杯·굽다리접시), 개배(蓋杯·뚜껑접시), 토제 악기, 토제 방울 같은 작은 토기가 나왔다.

이종훈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장은 “시차를 두고 몇 차례에 걸쳐 대호를 설치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이번 발굴로 적석목곽묘 호석 주변에서 이뤄진 제사의 양상과 내용에 대한 양질의 자료를 확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경주/황성호기자 hsh@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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