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

잦은 태풍 소식에도 자연은 자신의 할 일에 최선이다. 나무들은 10월의 언어인 단풍으로 대화의 문을 열었다. 그 문으로 때론 누군가의 가슴 저린 첫사랑 이야기가 흘러나오기도 했다. 귀 밝은 감나무는 가지마다 그들을 저장했다. 길이를 늘리기 시작한 가을밤에 감들은 그 순수한 사랑 이야기를 몰래 펼쳤다. 그리고 홀로 붉어졌다. 그 붉음에 자연은 더 풍성해진다.

풍성한 가을과는 달리 이 사회는 더 흉악해지고 있다. 독단과 독선, 고집과 아집만이 존재하는 이 사회에서 순수는 예전에 죽었다. 순수가 죽은 자리엔 추악함이 자리했다. 한때 가장 순수했던 촛불도 이젠 아니다. 오염된 촛불은 사람들의 눈과 마음을 멀게 만들었다. 막무가내인 사람들이 떼로 외치는 소리는 소음에 불과하다. 소음만 가득한 도로에서 정의는 죽었다.

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목적도, 과정도 순수해야 한다. 그런 개혁만이 모두의 절대적 지지를 받으며 성공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개혁은 명분은 있지만 방법은 틀렸다. 당정청(집권당, 정부, 청와대)이라는 말은 특정 이데올로기와 동의어이다.

당정청이 개입된 개혁의 방향은 그들의 특정 이데올로기가 추구하는 방향이다. 이런 개혁에 순수는 없다. 교육 개혁에는 제발 당정청이 개입하지 않기를 바란다.

당정청 타령만 하는 중앙 정치를 보면 이 나라 미래는 0% 출산율보다 더 암담하다. 그래도 이 나라가 버티는 것은 경북도의회처럼 일하는 지방 의회가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지난 6년 동안 당정청은 물론 교육부, 도교육청, 인권위원회, 권익위원회 등에 대안학교 학생들이 받고 있는 차별을 철폐해달라고 수십 차례 읍소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필요성은 알지만으로 시작하는 행정기관 특유의 미꾸라지 어조의 빈정거림뿐이었다. 그 사이에 많은 학생들이 교육기회를 놓치고 학교 밖 청소년이 되었다. 교육행정기관들은 늘 뒷북만 쳤다.

그런데 드디어 경북도의회가 교육행정기관들의 앵무새 화법을 끊는 조례개정안을 발의 통과시켰다. 교육청 실무자들과 6년 동안 이야기를 하고 있는 필자로서는 이번 일이 얼마나 큰 사건인지, 아니 사건을 넘어 개혁에 가까운 일인지 안다. 교육 개혁의 서문을 연 조례개정안은 “경상북도 사립학교 재정보조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조례안, 경상북도교육청 학업중단 예방 및 대안교육 지원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이재도 의원)이다. 다음은 전자의 개정 사유이다.

“경상북도교육청에서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시행령’을 근거로 하여 일부 사립학교(각종학교 포함)에 대한 재정지원을 제도적으로 보장하지 않고 있으나, 교육부에서는 시행령 자체가 교육청의 재정지원 여부를 구속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음. (중략) 사립학교 재정보조사업에 단서조항을 두어 재정지원이 필요한 사립학교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됨.”

교육 평등권의 실질적인 보장을 위해 경북도의회가 보여준 초당적인 모습이 당리당략에 빠져 있는 중앙 정부는 물론 편협한 교육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교육 관계자들에게 큰 울림이 되길 바란다. 그 울림이 교육 개혁의 신호탄이 되어 희망을 잃어버린 이 나라 교육에 새로운 희망의 불씨가 되길 간절히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