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은 공허하나 사랑은 충만하다. 그러니 용서하라. 그리하여 사랑하라.
이별은 공허하나 사랑은 충만하다. 그러니 용서하라. 그리하여 사랑하라.

안재홍(범수)은 내가 좋아하는 배우다. 천우희(진주)는 잘 모르는 배우인데 연기를 잘 한다.

그리고 난 이런 느낌의 드라마가 좋다. 가볍고 가벼워서 날아갈 것 같은 영화. 아무런 무게도 교훈도 없는 그런 내용. 그런데 말이다. 이 드라마는 정말 감동이다. 왜냐고? 내 모습하고 비슷하니까. 내가 범수였으니까. 드라마라는 게 그런 것 같다. 결국 내 이야기를 해주는 느낌.

진주는 이렇게 말한다. “그 사람이 손을 잡아주면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져. 안아도 될 것 같고. 후회하지 않을 것 같고. 뭐 그런 믿음이 깨져가는 과정이 연애지만….”

그래 나도 그랬던 적이 있다. 당신을 만나고 열심히 일을 하고 싶어졌고, 무슨 일이든 가능할 것 같았던 때가 있었다. 이런 근거 없는 자신감이 모두 당신에게서 비롯되었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진주의 말처럼 연애란 상대방에 대한 믿음이 깨져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처음엔 너무 좋아서 죽을 것 같은 느낌. 당신을 사랑하면 왠지 내가 착해지는 듯한 느낌. 그런 느낌에 하늘을 걷는 듯한 느낌.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죽을 것 같은 느낌, 착해지는 듯한 느낌이 일상이 되어 버리고, 내가 들떠 있는 상태가 평상의 상태가 되어 버릴 때 우리의 사랑은 조금씩 식어 간다.

그런데 그런 좋았던 느낌들이 일상이 되어 아무것도 아닌 상태가 되면 이제 당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된다. 그러한 객관적 상태에서 당신에게 싫은 부분이 많은지 좋은 부분이 많은지를 비교할 수 있게 된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하고 그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하여 사랑에도 노력이 필요하다.

이 드라마가 내게 와 닿았던 이유는 이런 부분 때문이다.

범수: 정신이 없었어요. 오만가지 컨펌을 하느라.

진주: 핑계~

범수: 근데 나는 이게 왜 핑계가 되는 줄 모르겠는데? 일이잖아. 내가 동호회 활동을 한 것도 아니고 술을 퍼마시고 논 것도 아니고. 바쁜 와중에 이렇게 틈내서 만나는데 어떻게….

진주: 틈내서?

범수: 틈내서라는 말이 기분 나쁜 말인가? 작가님도 나도 지금 너무 바쁘잖아. 그 와중에 틈내서 만난다는 게 얼마나 멋진 일이야.

나도 범수처럼 항상 바빴고 상대방은 그런 바쁜 나를 이해해주지 못했고. 바쁜 걸 이해해주지 못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짜증을 냈고. 상대는 더 짜증을 냈고. 그렇게 조금씩 멀어져 가는 거다. 여기서 범수의 결정적인 실수를 범한다.

범수: 말을 그렇게 해요? 빨래라니. 처리라니. 아니 바쁜 거 뻔히 알면서 왜 항상 이런 식으로 기분 상해해요?

진주: 항. 항상이라뇨? 난 그런 적 없어요. 처음인데?

범수: 맞아요.

진주: 내가 감독님 전 여친한테 바통 이어받은 건가요?

범수: 내가 그렇게 들릴 수 있게 말을 한 것 같아요. 내가 잘못했어요. 내 실수예요. 미안해요.

진주: 난 내 출발선에서 출발했어요.

범수: 맞아요.

진주: 제가 오늘은 좀 실망을 해야겠어요. 갈게요.

진주가 화가 난 이유는 범수가 진주를 옛날 연인과 비교했기 때문이다. 옛날에 바쁜 자신을 이해해 주지 못했던 과거의 연인과 진주를 동일시한 것이다. 그래서 진주는 화가 났다. 진주는 범수에 실망했다고 말하며 돌아선다. 그러면서 많은 잔고 끝에 “니놈은 나쁜 것보다 좋은 게 더 많은 놈이다.”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며, 범수를 용서한다. 많은 사람을 만났고 지금의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된 후에야 겨우 알게 되었는데 진주는 어떻게 이런 걸 알게 된 거지?

그래 상대방을 용서할 수 있다는 것은 일종의 계산의 결과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싫음을 참아낼 수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 이것이 사랑을 이어갈 수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가장 중요한 사항이라고 생각한다. 상대방의 싫음을 도저히 참아낼 수 없다면, 헤어지면 된다.

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
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

그런데 그 사람의 싫음을 참아낼 수 있는 정도라면, 지금 화나는 기분을 억누르면 된다. 그리고 사과하라. 사과할 일이 아니라면 솔직하게 말하라. 무엇이 그렇게 싫은지. 그런데 내 경우에는 내가 싫다고 생각한 당신의 싫음은 더러운 내 성격 때문이지 당신의 잘못이 아니더란 거다. 결국 내가 이상한 놈이라는 걸 깨닫게 되는 거다. 그래서 사랑에는 또 다시 노력이 필요하다는 거다. 자신의 상태를 바라볼 줄 아는 노력. 상대가 아니라 나를 돌아볼 수 있는 노력 말이다. 사랑이 노력 없이도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야 말로 가장 잘못된 생각이다. 그건 망상이다.

결국 사랑의 최종 단계에서 보게 되는 것은 당신이 아니라 ‘나’다. 당신이 아니라 ‘나’를 관찰할 수 있게 된다. 그러니 용납할 수 있는 싫음을 가진 사람을 만나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그러니 이유 불문하고 사랑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