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휘 논설위원
안재휘 논설위원

승불요곡(繩不撓曲)이라는 말이 있다. 한비자(韓非子) 유도(有度) 편에 나오는 이 말은 ‘먹줄은 나무가 굽었다 하여 같이 휘지 않는다’는 뜻이다. ‘법’이란 먹줄과 같은 효능을 갖고 있다. 곧은 길이 어디인지, 우리가 지켜야 할 경계가 어디인지를 가늠하게 해주는 불가침의 기준이다. ‘법치’란 바로 먹줄의 기능을 존중하는 데서 출발한다. 시대 상황이 제아무리 휘었다 한들 절대 휜 줄을 치지 않는 먹줄의 가치는 지켜져야 하는 것이다.

‘조국 대란’에 휘둘린 지 석 달째 접어들면서 대한민국은 ‘궤변 공화국’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조국의 문제는 ‘진보-보수’가 아니라 ‘정의-불의’의 문제”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절대다수다. 아무리 생각해도 논리적 연결성을 찾아내기 힘든 대목은 ‘조국 수호=검찰 개혁’이라는 구호다. 불법과 편법이 뒤죽박죽 엉킨 인생을 살아온 조국 일가의 온존이 어찌 검찰 개혁과 등치(等値)되는 개념인가.

최고 수준의 교졸한 궤변론자로 유명한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지치지도 않고 서툰 훈수질을 멈추지 않고 있다. 조국 장관 딸 조민의 인턴 수료증 위조문제가 첨예하게 대두될 당시에 동양대 총장과 통화를 해 물의를 빚은 그는 대뜸 ‘유튜브 기자로서 취재한 것’이라고 세상을 희롱했다. 정경심 교수의 증거인멸을 ‘증거보존 행위’라고 강변해 또 한 번 그 진영주의 논법의 천박성을 드러낸 바 있다.

이번에는 법무부와 대검찰청이 특수부를 반부패수사부로 바꿔 서울중앙지검을 비롯한 3곳에만 최소한으로 설치하기로 합의한 검찰개혁안을 물고 늘어졌다. 유시민은 이를 놓고 “영업 안 되는 데는 문 닫고, 잘 되는 곳은 간판만 바꿔서 계속 가면 신장개업이지 없어지는 게 아니다”라고 비아냥댔다.

이쯤 되면 여권(與圈)이 추구하고 있는 ‘검찰 개혁’이 곧 ‘검찰의 무력화(無力化)’임을 단박에 알게 한다. ‘권력의 사냥개’였던 검찰을 ‘권력의 똥개’로 만들자는 흉계인 것이다.

조국 장관이 내놓은 검찰개혁안도 마찬가지다. 법무부의 ‘인사권·감찰권’ 강화로 검찰을 통제하겠다는 그의 구상은 분명하게 ‘검찰 개혁’의 역방향이다. 검찰의 1차 감찰권을 법무부가 빼앗겠다는 방침은 ‘검찰독립’을 현저히 헤쳐 대통령의 ‘검찰 장악’을 더욱 강화할 게 틀림없는 개악(改惡)임이 분명하다. 서초동에 모여서 펼치는 친여세력 힘자랑의 목표가 ‘검찰 무력화’라면 이건 양두구육(羊頭狗肉)의 저질 선동정치에 불과하다.

‘검찰개혁안’의 제1조가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어야 한다는 것은 상식 중에도 상식이다. ‘검찰 개혁’이라는 구호를 앞세워서 ‘검찰 개혁’을 완전히 죽이고 있는 이 역설을 어찌 헤쳐가야 하나. 굽은 나무에 굽은 먹줄을 치려는 이 음험한 정치적 먹구름은 대체 어떻게 걷어내야 할 것인가.

엉터리 궤변에 동조해 ‘조국 수호=검찰 개혁’ 팻말을 들고 길거리에 나가 말도 안 되는 구호를 외치며, 자신이 무슨 모순을 빚고 있는지도 모르는 무수한 편견의 노예들이 딱하기 그지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