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우리 민족의 가장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은 고유한 말과 글을 가진 게 아닐까 싶다. 한 민족이 수천 년 동안 자기들만의 언어를 이어온다는 것은 고유한 전통과 문화의 정체성을 갖는 일이다. 그것은 인류문명의 일익을 담당한다는 민족적 자존이요 삶의 근간이기도 하다. 특히나 한글의 독자성과 우수성은 세계의 학자들이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한글은 세계 어떤 나라의 일상문자에서도 볼 수 없는 가장 과학적인 표기 체계이다.”(에드윈 라이샤워·하버드대 교수), “한글은 모든 언어가 꿈꾸는 최고의 알파벳이다.”( 존 맨·과학사가, 다큐멘터리 작가), “세종이 만든 28자는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알파벳이자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표기법 체계이다.”(재레드 다이아몬드·캘리포니아 의과대 생리학자)…. 심지어 미국 시카고대 교수이자 언어학자인 매콜리는 20여 년간 동료 언어학자들과 매년 한글날을 기념해오고 있다고 한다.

한글의 우수성은 21세기 인터넷 정보통신의 시대에 들어와서 더욱 빛을 발한다. 언젠가 모 방송국에서 각 나라의 문자를 컴퓨터에 입력하는 속도를 비교하는 실험을 했다. 같은 조건에서 한국, 중국, 일본의 문자로 소설 <어린 왕자>의 1장을 타자로 입력하라는 임무가 주어졌다. 실험이 시작된 지 10분도 되지 않았을 때 한국이 가장 먼저 <어린 왕자>의 1장을 입력했다. 이는 중국, 일본보다 일곱 배나 빠른 속도였다. 한글로 5초면 치는 문장을 중국, 일본의 문자를 통해 입력할 경우 35초가 소요된다는 얘기다.

우리말에는 수천 년을 이어온 우리 민족의 얼과 정서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그것을 갈고 다듬고 발전시켜 다음 세대로 전해줄 역사적 사명이 우리에게는 있다. 그것은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일이고 나라의 근간을 굳건히 하는 일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 말과 글의 가치와 소중함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특히나 청소년들의 언어실태는 우려를 넘어 절망감이 들 정도다. 그렇게 말과 글이 날로 오염되고 파괴되어 만신창이가 되었는데도 학계나 교육 당국, 언론계 어디서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대책을 강구하지 않는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는다고 한번 오염되고 파괴되면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말이다.

시급한 처방으로는 방송 매체들이 캠페인이라도 벌여 우리말 바르게 쓰기의 모범을 보이는 것이다. 종사자들은 물론 출연자들에게 사전에 몇 가지 주의사항만 교육해도 한결 나아질 것이다. 그러면 불필요한은 외래어나 비속어, 어법에 맞지 않는 말이 전염병처럼 퍼지는 것을 막을 수가 있을 것이다. 그

리고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것이 학교에서의 언어교육이다. 아이들에게 고운 말 바른 말 교육은 그야말로 백년지대계의 초석이다. 올바른 심성과 정서를 함양하는데 언어교육보다 중요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내년도 문화재청 예산이 1조원이 넘는다니, 그 중 1할이라도 가장 소중하고 실생활에 밀접한 문화재인 우리 말과 글의 아끼고 가꾸는 일에 쓰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