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천골가마솥국밥’의 열린 주방공간이다. 가마솥 여러 개가 보인다.

장터국밥… 온천골가마솥국밥 & 성암골가마솥국밥

간판 이름이 묘하다. ‘가마솥국밥’이다.

‘가마솥국밥’이라는 제목은 일상적이다. 국물을 가마솥에 넣고 끓였다는 뜻이다. ‘가마솥국밥’은 일상적이면서 ‘중립적’이다. 변화하는 음식 중에서 묵묵히 자기 이름을 고집하는, 마치 화석(化石)같은 이름이다. 육개장, 대구탕, 따로국밥, 파개장, 해장국, 선지해장국, 장터국밥 등등 여러 종류의 국물 음식이 있다. 비슷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르다. ‘논쟁적’인 이름들이다. 대구시, 대구의 음식 관계자들은 오랜 기간, 육개장인가, 따로국밥인가, 장터국밥인가를 놓고 설왕설래하고 있다. 아직 결론은 나지 않았다.

‘가마솥국밥’은 한걸음쯤 떨어진 이름이다. 어느 편도 들지 않고, 그저 “가마솥에서 끓여낸 국물”이다. ‘가마솥에서 끓여낸 육개장’인지, ‘가마솥에서 끓여낸 장터국밥’인지, 따로국밥인지 가리지 않는다.

‘온천골가마솥국밥’의 국그릇에는 유독 대파가 눈에 띈다.
‘온천골가마솥국밥’의 국그릇에는 유독 대파가 눈에 띈다.

경산은 대구의 배후지였다. 어느 순간 대구의 팽창과 더불어 서서히 면적, 인구 등이 줄어든다. 원래는 평야가 넓고, 곡식 생산이 많았다. 상업의 중심지였고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 사람이 모이면 시장이 서고, 시장에는 반드시 음식점이 들어선다. 경산에 국밥집 등이 널리 유행한 이유다.

‘온천골가마솥국밥’은 경산의 대표적인 국밥집이다. 굳이 따지자면 따로국밥이면서 장터국밥 스타일이다. 장터국밥은 대파, 무 등을 많이 사용한다. 육개장에 비해 고사리, 말린 토란대가 적다. ‘온천골가마솥국밥’의 국그릇에는 유독 대파가 눈에 띈다. 해장국은 ‘기능적’인 이름이다. 육개장, 장터국밥, 선지해장국, 따로국밥 모두 넓은 의미에서 해장국이다. 어떤 국물 음식이든 해장하기 좋으면 해장국이다. 해장국의 출발은 해장이 아니라 술국이다. 술을 마시고 이튿날 속을 풀어주는, 해장국의 역사는 짧다. 불과 50~60년 정도다.

‘성암골가마솥국밥’ 메뉴판에 ‘육국수’가 있다. 이 지역의 특이한 메뉴다. 고깃국물에 국수를 넣은 것이다.
‘성암골가마솥국밥’ 메뉴판에 ‘육국수’가 있다. 이 지역의 특이한 메뉴다. 고깃국물에 국수를 넣은 것이다.

오늘날 해장국은 일제강점기 ‘술국’의 변형 버전이다. 서울 ‘청진옥’을 대표적인 해장국 전문점으로 여긴다. 손님의 대부분은 이른 아침 땔감을 지고 온 사람들이었다. 가난한 이들이 밤새 술을 마시고 이른 새벽 ‘청진옥’에서 해장을 했을 리는 없다. 손님 상당수는 멀리 남양주 등에서 땔감을 지고 온,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이른 아침, ‘청진옥’에서 술 한 사발과 밥 한 그릇, 그리고 술국으로 곤한 몸을 다스렸다.

‘온천골가마솥국밥’과 ‘성암골가마솥국밥’의 국밥은 큰 차이가 없다. 대파를 많이 사용한다는 공통점이 엿보인다. 대파는, 국솥에 넣고 끓이면 단맛이 강하게 난다. 파의 푸른 부분은 향이 좋지만, 흰 부분은 단맛을 강하게 낸다.

‘성암골가마솥국밥’의 떡갈비
‘성암골가마솥국밥’의 떡갈비

의외로 무의 사용은 제한적이다. 무는 계절 별로 맛이 달라진다. 여름 무는 지린 맛이 난다. ‘들척지근하다’라고 표현한다. 서리 맞은 가을 무는 단맛이 강하다. 두 집 모두, 무의 사용은 제한적이다.

‘온천골가마솥국밥’의 열린 주방은 볼 만하다. 서너 명의 주방 인력이 가마솥을 중심으로 연신 국물을 퍼 나르고 있다. 가마솥 몇몇에는 당장 손님상에 퍼낼 국물을 끓이고 있고, 몇몇 가마솥에는 예비용 국물이 끓고 있다.

‘성암골가마솥국밥’.
‘성암골가마솥국밥’.

‘육국수’는, 이 지역에서는 평범하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보기 힘든 특이 메뉴다. 국물에 국수를 말아서 먹는다. ‘성암골가마솥국밥’에도 육국수 메뉴가 있다.

‘성암골가마솥국밥’은 떡갈비 등의 메뉴를 보충했다. ‘온천골가마솥국밥’에 비하면 개량되었다는 느낌이 강하다. 음식 맛도 ‘온천골가마솥국밥’은 오래전의 맛이 강하다. ‘성암골가마솥국밥’은 변화, 진화한 맛이다. 메뉴 구성이나 실내 분위기도 마찬가지. ‘성암골가마솥국밥’은 개량된 맛이다.

‘옛진못식육식당’의 ‘한우막구이’. 길게 썬 갈비살이 특이하다.
‘옛진못식육식당’의 ‘한우막구이’. 길게 썬 갈비살이 특이하다.

수준급 한우… 옛진못식육식당 & 남산식육식당

‘옛진못식육식당’의 메뉴판은 재미있다. ‘한우막구이’는 갈비살, 갈비구이다. 갈비살은 늑간(肋間)살이다. 갈비뼈 사이의 살이다. 길게 썬 갈비살이 특이하다. 메뉴 중에 가마솥국밥도 있다. 대파는 보이지 않고 콩나물과 무가 눈에 띈다. 이 지역 ‘가마솥국밥’과는 다르다. 육개장과 장터국밥 등에 대파를 많이 넣는 것은 이 지역의 특징이다. 한때 ‘파+육개장=파개장’도 유행 아이템이었다. ‘옛진못식육식당’의 국밥에는 대파가 많지 않다. 오히려 특징적이다.

‘남산식육식당’의 뭉티기 고기. 이 집은 자투리 고기가 많이 들어간 된장찌개도 강추다.
‘남산식육식당’의 뭉티기 고기. 이 집은 자투리 고기가 많이 들어간 된장찌개도 강추다.

‘남산식육식당’은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노포다. 고기와 더불어 자투리 고기를 넣은 된장찌개가 좋다. ‘식육식당’이다. 경북 전체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고기도 팔고, 간단하게 식사도 할 수 있는’ 가게다. 고기에 대해서는 별도의 설명이 필요치 않다. 수준급이다. 지육이나 부분육으로 가져와서, 식당에서 직접 손질한다. 입구에서 연신 고기 다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역시 된장찌개가 강추.

‘다정한정식’은 1인당 밥솥 하나다. 당연히 맛있다.
‘다정한정식’은 1인당 밥솥 하나다. 당연히 맛있다.

한 상 가득 정성이… 다정한정식 & 중남식당

업력으로 따지자면 ‘중남식당’이 한참 선배다. ‘중남식당’은 오래된 노포다. 음식도 듬직하다. 변하지 않는다. 이런저런 불평도 있다. 음식 가짓수, 너무 많은 접시가 아니냐, 낭비하는 밥상이다, 음식이 싱겁다, 먹을 것은 별로 없는 데 반찬 가짓수가 너무 많다, 등등 평가가 요란하다.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 경산에서도 외진 하양에 있지만, 꿋꿋이 자기 길을 걷는다. 묵묵히 “우리는 이런 밥상이다”라고 주장한다.

음식에 대한 확고한 신념, 존재 이유가 있다. 옳다, 그르다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이런 음식’이라는 자기 확신이다. 언젠가 인터뷰를 요청한 적이 있다. 거부. “손님이 더 많이 오면 감당할 자신이 없다”는 이유였다. 할 수 있는 정도를 성의껏 해낸다. 그뿐이다. 아무리 낭비하는 밥상이라고 해도 꾸준히 20여 가지 반찬을 내놓는다. 바뀌지 않는다. 줄여도 탓할 사람은 없다. 여전히 ‘중남식당’의 밥상이라고 고집한다.

9월 방풍나물이다.      대궁이 붉은        것이 자연산이다.
9월 방풍나물이다. 대궁이 붉은 것이 자연산이다.

‘중남식당’의 상차림에 대해서는 얼마쯤의 ‘설명’이 필요하다,

그릇 수로 헤아리면 약 20접시의 반찬이 나온다. 실제로는 더 많다. 나물 네 종류를 넣은 접시가 하나, 전을 네댓 종류 넣은 그릇이 하나 있다. 20종을 훨씬 넘긴다. 나물도 재미있다. 고사리, 무, 콩나물, 푸른 잎 채소 등이다. 이 나물 반찬은 제사상에 오르는 반찬과 같다. 흰색, 푸른색, 고사리의 흑갈색, 노란색 등이 조화롭다. 전도 마찬가지. 먹든 않든 전을 이렇게 다양하게 내놓는 것은 한때 유행했던 한정식의 개념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오이 냉채, 갈치 한 토막, 도라지무침, 달걀찜 등도 마찬가지. 한때 화려했던 한정식 밥상의 쓸쓸한 그림자다.

‘다정한정식’은 전혀 다르다. 정반대다. 끊임없이 반성하고, 고치고, 바뀐다. 바뀌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음식의 내용부터 가격까지 바꾸고 또 바꾼다. 간략하지만, 먹을 만한 음식들로 채운다. 전통 방식은 아니다. 이런 음식이 좋겠다 싶으면 바꾼다. 손님들의 작은 목소리도 듣고 기억한다. 아내가 주방을, 남편이 홀을 맡아서 운영한다. 부부가 조용히 의논, 개발하고, 곧 음식, 접대 등에 반영한다.

‘중남식당’의 반찬 그릇은 20개 정도. 반찬 가짓수는 30개에 가깝다.
‘중남식당’의 반찬 그릇은 20개 정도. 반찬 가짓수는 30개에 가깝다.

음식의 종류와 내용도 마찬가지다. 지역 사정에 맞춘 음식값이다. 1만 원 선. 음식 수준? 가격을 상회한다. 수준급의 음식이다. 1만 원대의 가격으로는 더 이상의 밥상을 원하는 것은 결례다 싶을 정도. 가성비, 충분히 받아들일 만한 밥상이다. ‘중남식당’보다 반찬 가짓수가 적지만 흉이 될 정도는 아니다. 이미 수준급의 음식으로 단골도 제법 있다.

굳이 ‘설명’을 하자면, ‘다정한정식’도 ‘경북 반가의 음식’ 틀을 일정 부분 보여준다. 묵이 있고, 두어 종류의 나물 반찬을 한 그릇에 담았다. 콩나물, 푸른색 잎채소, 가지나물 등이다. 구절판 변형 반찬이 있고, 제법 그럴듯한 반건 생선조림이 있다.

사색나물이다. 도라지는 다른 반찬으로 나온다.
사색나물이다. 도라지는 다른 반찬으로 나온다.

특이한 부분은, 별도로 내놓는 돌솥밥 형태의 솥밥이다. ‘돌’은 아니지만 1인당 솥 하나로 정갈하게 지은 밥이다. 9월에 만나는 자연산 방풍나물도 특이하다. 방풍은 흔히 초봄에 먹는 거로 여긴다. 그렇지는 않다. 가을 방풍나물도 나름의 맛이 있다. 게다가 붉은, 자줏빛 줄기의 자연산이라면 정성스럽게 준비한 반찬이라고 여겨도 좋다.

오랜 전통을 지키는 ‘중남식당’의 밥상에 보이지 않는 잡채가 ‘다정한정식’에는 등장한다. 잡채는, 일그러진 음식이다. 나물도 아니고 쫄깃한 당면을 볶은 음식에 불과하다. 여러 가지 나물, 진짜 잡채를 내놓으면서 짝퉁 잡채를 또 내놓을 필요는 없다.

한식 밥상은, 경산에서는, ‘중남식당’에서 ‘다정한정식’으로 진화 중이다. 어느 쪽이 옳다, 그르다는 아니다. 변화, 발전하는 모습이다.     /음식평론가 황광해

    음식평론가 황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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