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루 아래에서 본 영산암 응진전. 영산암은 안동시 서후면 봉정사길 222에 있는 봉정사에 위치해 있다.

적요를 먹고 크는 배롱꽃, 깊이를 알 수 없는 평화, 오래된 침묵, 그리고 무슨 말이 필요할까. 오후의 햇살이 관심당 툇마루의 나이테를 세다 창살에 기대 졸고 있다. 모두 하나가 되어 멎어 있는 풍경들, 발걸음 소리에 정제된 시간들이 파문을 일으키며 깨어날 것만 같아 고양이 걸음으로 들어선다. 귀 밝은 솔이가 컹컹 영산암이 떠나가도록 짖는다.

봉정사 영산암은 석가불이 법화경을 설법하던 영취산에서 유래되었으며, 영취산에 모여 설법 듣는 나한을 모신 응진전이 주법당이다. 온통 국보와 보물로 가득한 봉정사와 달리 경상북도 민속자료라는 아주 작은 명함이 전부지만 어느 암자와는 다른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하늘에서 꽃비가 내린다는 우화루, 이름의 유래는 불교적 색채를 띠지만 유학자의 선비다운 풍류마저 느껴진다. 키가 닿을 듯 낮은 누하문을 조심스럽게 들어서면 자연석을 이용한 계단 위로 사대부집의 아담한 정원과도 같은 편안함을 만난다. 명문가의 자존심이 묻어나는 노할머니의 장죽(長竹)이 기척 소리에 문을 열며 내다볼 것 같은 환상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완만한 구릉지를 깎거나 다듬지 않고 바깥의 자연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정원, 그래서 관심당 마루는 우화루 쪽으로 내려갈수록 높아진다. 뿐만 아니라 문의 크기도 다르다. 단아하고 기품 넘치는 유가적인 분위기의 건물들과 시공간을 압축시켜 놓은 듯한 묘한 공간배치 앞에서 낮은 탄성이 절로 나온다.

응진전 좁은 툇마루는 낡고 삭아서 내려앉을 듯 안쓰럽다. 법당에 들어서기도 전에 저절로 두 손부터 모으게 되는 인고의 고단함이 마음을 시리게 한다. 응진전보다 낮은 자세로 송암당과 관심당이 좌우를, 맞은 편 입구에는 우화루가, 세 건물은 툇마루로 연결되어 건물이 가지는 위계질서조차 잃지 않는다.

송암당 나지막한 처마와 소나무 한 그루의 어울림, 서로가 서로에게 배경이 되어주며 모두가 주인공이 되는 관계가 조화롭다. 시설 좋은 봉정사 템플관을 굳이 마다하고 영산암에 머물기를 고집한 이유다. 영산암 해주 스님은 출타 중이라 봉정사 주지 도륜 스님의 배려로 관심당 방 하나를 차지한다.

오랫동안 떠나 있다 옛집을 찾은 것처럼 편안하다. 주지 도륜 스님의 자상한 설명으로 봉정사도 영산암도 내 안에서 새롭게 태어난다. 시대별 특징들이 모여 살아 숨쉬는 건축박물관, 봉정사가 세월의 맛이 자연스럽게 배어나오는 시간의 멋을 지녔다면 영산암은 미학적인 혜안 속에서 오로지 지금 나로만 머물 수 있는 공간이다.

새벽 4시 도량석 목탁소리에 천등산이 눈을 뜬다. 새벽예불을 위해 나도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는다. 툇마루를 내려서는데 무심코 기봉의 눈빛이 느껴진다.‘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영화는 모든 것을 깊고 쓸쓸하게 담아냈다. 최대한 빛을 아끼고 말을 아꼈다. 돌보지 않은 영산암은 쓰러질 듯 고뇌에 찼으며, 한국의 아름다운 자연조차 투명하도록 슬펐다.

절제된 대사들이 오래도록 마음에 파문을 일으켰다. ‘지옥과 극락은 둘이 아니라 하나다’, ‘가는 것이 오는 것이고, 오는 것이 가는 것이다’. 노스님의 기름기 없는 목소리가 들려 올 것만 같다. 죽음을 앞 둔 노스님과 호기심으로 세상을 열어가는 동자승의 뒷모습이 우화루 위에서 아른거린다.

어둠 속의 영산암은 어제의 옷을 벗고 무의식 속의 또 다른 풍경을 만들어 내 앞에 선다. 대자유의 길을 걷고자 출가하지만 생애의 고뇌마저 사랑하지 않고서는 피안의 완전함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사바세계로 돌아가는 기봉의 뒷모습은 그래도 희망적이다. 영산암은 사바와 피안 사이에 앉아 말이 없다.

대웅전에 앉아 오래 전 기억을 떠올린다. 타종 소리와 함께 어둠이 밀려들고 은행잎이 아픈 소리를 내며 떨어지던 늦가을 저녁, 고령의 은행나무를 바라보며 새로운 나를 다짐했다. 오로지 나 혼자만을 위한 설레는 부름들, 영원할 것 같은 순간들, 잎새의 마지막 떨림처럼 의욕이 살아 숨 쉬던 젊은 날의 각오, 봉정사는 모든 것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조낭희 수필가
조낭희 수필가

변화는 있어도 변함이 없어야 한다고 했던가. 안타깝게도 봉정사보다 더 빨리 변한 건 나였다. 지나친 의욕과 많은 생각은 엉뚱한 결과를 가져오곤 했다. 도시를 벗어나 길과 숲, 오래된 공간 속으로 자주 떠나 볼 일이다. 오래된 것들은 시간에 휘둘리지 않고 장악할 수 있는 힘을 준다. 어둠을 품고 잠든 나무들 사이로 새벽이 꿈틀거린다.

유명세로 봉정사 문턱은 높을 거라 생각했다. 그것은 나만의 기우였다. 날마다 긴 세월을 견뎌내 준 극락전에 감사 기도부터 드리고 새벽 예불을 보신다는 도륜 주지스님, 끼니때마다 환한 미소까지 덤으로 얹어주던 공양주 보살님, 친절함이 몸에 배인 종무소 보살님, 모두에게서 잘 여문 과일향이 난다.

차를 내린지 반나절이 지나도 차향이 남아 있듯, 좋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기품 넘치는 사찰이다. 스님과 나눈 대화를 가슴에 품고 봉정사를 내려오는데 천등산 맥박소리가 들려온다. 숨을 쉴 때마다 느껴지는 지독히도 낯익은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