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오후 국립 경주박물관 대강당에서 열린 ‘풍류도, 신라의 청년들을 찾아서’ 학술 발표회에서 전문가 토론이 열리고 있다. /이용선기자 photokid@kbmaeil.com
지난 5일 오후 국립 경주박물관 대강당에서 열린 ‘풍류도, 신라의 청년들을 찾아서’ 학술 발표회에서 전문가 토론이 열리고 있다. /이용선기자 photokid@kbmaeil.com

지난 5일 경주시 인왕동 국립경주박물관에선 풍류도(風流道)의 개념과 사상적 변화 과정, 화랑의 역할 등을 토론하는 학술발표회가 열렸다.

이날 정형진 신라얼 문화연구원장은 ‘풍류의 개념과 풍류도의 역사성’, 풍류연구가 한지훈 씨는 ‘풍류도는 한국음악의 뿌리인가?’라는 주제로 발표를 가졌다. 이날 발표회는 강석근 국제언어문학회장이 좌장을 맡아 이형우, 김봉률, 서정매, 박남수씨가 토론자로 참여해 열띤 토론을 펼쳤다. 주제발표 및 토론회 내용을 요약했다.
 

정형진·신라얼 문화연구원장
정형진·신라얼 문화연구원장

정형진 ‘풍류의 개념과 풍류도의 역사성’

풍류도가 삼교를 포함할 정도로 훌륭하다면
그 후손으로서 자부심을 가져도 되지 않을까

풍류의 정확한 개념과 역사적 연원에 관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최치원이 남긴 ‘난랑비서’에 의존한다. 하지만 최치원은 ‘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는데 그것을 풍류라 한다’고 규정했을 뿐 ‘풍류’의 사상적 개념을 정확히 설명하지 않았다.

상고의 역사 흐름 속에서 풍류도의 이념이 어떻게 작동되어 왔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다. 또 풍류도가 어떤 맥락 하에서 신라로 들어왔고, 부활했는가를 설명하는 것 역시 놓칠 수 없는 문제.

최치원은 ‘풍류도’를 ‘현묘지도’라 했다. 현묘한 도로 규정한 풍류도의 핵심 개념은 과연 무엇일까. 풍류의 개념에 대한 해명과 풍류도가 공동체의 이념으로 작동했던 역사를 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조상들이 만들어 온 역사공동체가 어떤 이념과 가치를 추구했기에 풍류도와 같은 위대한 사상을 잉태하고 전달해 왔을까? 그들이 펼치던 공동체가 삼교(유·불·선)를 다 포함할 정도로 훌륭한 이념과 가치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면 그 후손으로서 자부심을 가져도 되지 않을까. 그러나 현재 우리 주변에 민족공동체의 역사 여정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지.

‘풍류’는 한민족이 태동하는 시점부터 있었던 사상적 기반이었다. 우리 고유의 자랑스런 문화 전통이다.

풍류도가 우리 민족의 고유한 사상이라면 그것의 고대 언어는 순순한 우리의 토착어였을 가능성이 높다. 풍류는 그 토착언어의 한자식 표현일 것이다.

풍류라는 개념을 표현했던 원래의 토착어가 무엇이고 그 핵심 의미가 무엇인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나는 언어학적으로 분석해 보는 것이고, 두 번째는 사상적·철학적으로 접근해 분석하는 것이다.

풍류도의 역사적 연원에 대한 의문은 한국학 연구에 있어 핵심적인 사안이다. 풍류도의 이해는 학계의 일반 통념과 전형적인 동아시아 문화사의 흐름을 설명하고 이해함에 있어서도 큰 파괴력을 지닌 사안이다.

‘풍류’는 무소부재(無所不在)한 성령(聖靈)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조상들은 그 흐름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고, 생명의 리듬에 맞춰 살아가는 것을 화랑의 삶으로 인식했다. ‘풍류도’는 근원적인 우주와 현상계 상호간의 작용원리를 설명할 수 있는 도였다. 풍류는 근원적인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기(氣)인 동시에 마음의 흐름을 표현하기 위해 차용된 한자어라고 생각한다.
 

한지훈·풍류연구가
한지훈·풍류연구가

한지훈 ‘풍류도는 한국음악의 뿌리인가’

우리는 독자적인 음악예술을 발전시켜 왔다
그 음악철학과 미학의 바탕이 ‘풍류도’ 아닐까

음악에 대한 본질 탐구는 동서양 할 것 없이 이미 고대로부터 출발했다. 그러나 서양의 경우에는 19세기 후반 음악학(音樂學)이 정립되면서 근대적 의미의 학문으로 태동되었지만, 동양의 경우는 그렇지 못했다.

중국의 경우 서양 못지않게 나름대로의 정치(精緻)한 철학적·미학적 음악이론을 발전시켜 왔다. 우리나라는 중국의 음악문화 영향을 삼국시대부터 받아왔고, 그들의 음악사상이 우리에게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우리는 독자적인 음악철학·미학을 바탕으로 음악예술을 발전시켜 온 것이 분명하다. 그 바탕이 바로 우리의 전통사상인 풍류도라고 생각한다.

풍류도는 천년왕국 신라 고유의 종교, 예술, 철학, 문화의 근거이자 결정체다. 표면적으로 신라 왕실을 지배한 것은 유교·불교지만, 대다수 신라인들의 심성과 세계관, 가치관을 심층에서부터 널리 지배한 것은 풍류도다. 풍류도는 도교와 유교, 불교가 들어오기 전부터 그런 요소를 품고 있었던 신선사상과 샤머니즘이 하나로 융합된 신라의 독특한 세계관이다.

‘풍류’라는 말은 예술, 그 가운데서도 한국의 전통음악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풍류라는 용어는 삼국시대 이후 줄곧 사용돼 왔다. 이토록 오랜 동안 풍류 개념이 한국인의 심성에 이어져 왔다는 것은 한민족 특유의 어떤 심미관 형성 근거이기도 하다는 걸 의미한다. 동시에 한국 전통음악의 철학적·미학적 단서임을 뜻하지 않을까?

‘풍류도’가 무엇인지 그 본질을 파악할 수 있다면, 풍류라는 용어가 현재도 일상적으로 쓰이는 전통음악의 철학적·미학적 배경임을 보다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풍류도는 고대 한국인의 의식을 지배했던 철학이자 신앙의 바탕이었다. 한국음악의 뿌리 역시 그것에서 오지 않았을까란 가설을 세워본다. 그리고 이를 풍류, 향가, 무교, 금도 등과의 연관관계를 통해 확인하는 작업을 진행하고자 했다.

풍류도는 철학사에서 사라졌지만 그와 별개로 ‘풍류’라는 용어가 한국 전통음악계에서는 지금도 상용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한국 전통음악에서 상용되는 풍류라는 용어가 풍류도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주장은 객관적으로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한국음악의 뿌리는 풍류도라고 본다.

다만 음악적 측면에서의 풍류와 달리 전통사상으로서의 ‘현묘한 풍류도’는 무교(토속신앙)적 요소를 통해 ‘접화군생’의 경지까지 도달하려 한다는 점에서 구별된다고 하겠다.

종합토론

“고대에 한정되지 않고 풍류도의 흔적 찾아주길”

△이형우(한양대 교수)

풍류에 관한 논문 대부분이 ‘무엇’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풍류라는 용어풀이에 우위를 두고 어원적 정의에서 시작해 문화적 맥락을 파악하려 한다. 하지만 관련 자료와 근거가 턱없이 부족한 탓에 해석이 분분하다.

풍류(風流)에서 바람은 우주의 기운이자 생명력을 말한다. 없는 듯하지만 있고, 끊긴 것 같지만 이어지며 약한 것 같아도 강하다. 바람을 가장 먼저 느끼는 대상은 나무와 새다. 신라 왕관도 나뭇가지와 나뭇잎의 조합으로 만들어져 흔들림, 곧 바람을 상징한다.

‘풍류의 개념과 풍류도의 역사성’ 발제는 포괄적인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역사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논지를 전개해 나가고 있지만 사실 이를 뒷받침할 사료는 충분치 않다. 주장에는 반드시 근거가 있어야 한다.

이 논문에서는 풍류를 우리 민족의 자부심으로 평가했다. 함께 모여서 음주가무하며 평등사회를 구현해 간 우리 민족의 진면목이자, 오늘날 전 세계를 열광시키는 한류의 뿌리로 본다. 그러나 신화와 역사를 구별하지 않거나 사실과 의견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문헌상의 맥락을 자의적으로 해석해서는 위험하다는 뜻이다. 개념 혼동은 사고 체계의 무질서로 이어질 수 있다.

△김봉률(동국대 교수)

서양문학 전공자로서 풍류도에 대한 문헌적, 고증적, 민족고유성보다는 인류 보편적인 차원에서 접근해봤다.

어원적으로 보면 풍류도란 인간의 육체와 구별되는 것으로 영혼에 대한 관념을 가지게 됐다는 것을 보여준다. 보이지 않는 것을 인식하게 되고 추상적 개념이 생겨나 종교가 태동하던 시기라 할 수 있다. 바람이나 숨결에서 비롯된 정신은 감각적 인지능력과 이성적 사고로 이뤄지고, 다른 한편으로는 직관적이고 영적인 지혜가 필요하다. 전자는 육신에, 후자는 영혼에 뿌리를 두고 있다.

살아간다는 것은 곧 영적인 성장을 말한다. 주변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고, 스스로 얼마나 성장해 나가는지가 중요하다.

하지만 문명이 발달하면서 차츰 직관적이고 영적인 지혜보다 감각적 인지능력과 이성적 사고가 중심이 되면서 영성을 잃어버리고 영혼 없는 존재가 되어 가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풍류도는 현대사회에서 잃어버린 무언가를 찾아가는 과정과도 같다. 연구자들이 고대에 한정되지 않고 동학, 대종교 등에서도 그 흔적을 적극적으로 찾아주길 바란다. 특히 가부장 이전의 사회에서 풍류도에 관한 중요한 하나의 축으로 여성의 영성적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재조명하는 것이 필요하다.

△서정매(동국대 외래교수)

풍류도를 한국음악의 뿌리라고 단정하기는 쉽지 않다. 풍류도에 대한 해석이 지금도 다양하게 논의되고 있고 명백한 논증이 없는 것과 결부된다.

음악은 관념이 아니라 실체다. 음악에는 멜로디가 있고 리듬이 있다. 귀로 선율을 듣고 심장으로 리듬과 장단을 감지하며 가슴으로 희로애락을 느낄 수 있다.

‘한국음악과 미학’이라는 발제에서는 한국음악에 담긴 정신적, 철학적, 사상적 측면을 밝히고자 했다. 그렇다면 유교와 불교, 도교, 무교에서 실질적으로 어떤 요소들을 풍류적이라고 볼 수 있는지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아울러 화랑도에서 수용한 유교와 불교, 도교, 무교에 어떤 공통적 요소가 있는지도 짚어봐야 한다. 풍류적인 것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 내재된 가치는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박남수(동국역사문화연구소 연구원)

풍류도와 한국음악의 연관성을 역사적인 측면에서도 접근해 볼 수 있다.

화랑도는 신라 사회를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문화현상으로, 상열가악(相悅歌樂)에서 향가를 노래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이를 근거로 한국음악의 기원을 풍류도에서 찾는 것은 어느 정도 유효하다고 본다. 하지만 풍류도를 삼교가 유입되기 이전의 고유사상이라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의가 필요하다.

아울러 향가에는 주술적인 성격이 보이는데 이를 무교적 요소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화랑도에 무교적인 성격이 더해진 것은 조선 전기 유학자들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이 부분에 대한 조심스러운 접근과 해석이 요구된다.

마지막으로 옥보고가 지은 30곡 가운데 국가 이데올로기로 여길 만한 곡명은 보이지 않는다. 옥보고가 금도(琴道)를 전승한 측면은 인정되지만, 오히려 진성왕 2년에 경문왕대 국선들이 왕의 미덕을 칭송한 노래를 짓고 대구화상(大矩和尙)이 곡조를 붙여 향가로 지은 ‘현금포곡’, ‘대도곡’, ‘문군곡’이 오히려 당대 국가적 이데올로기에 적합하다고 본다.

/홍성식·김민정기자 mjkim@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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