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

“잠재력은 1도 없으니 ‘잠’과 ‘재력’을 따로 달라.” 학생들 사이에 떠도는 우스개 소리다. 잠재력 개발을 강조하지만 불가능하게 만드는 현실에 죽비와 같은 말이다. 학생들은 밤늦게까지 학원을 전전하느라 언제나 잠이 부족하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인 한국에서 학생들은 건물주가 되는 게 소원이라고 말한다. 개인의 잠재력을 최대한 이끌어내는 과정이 교육의 목적일터인데 실상은 거리가 멀다. 남보다 앞서야 한다며 선행학습으로 몰아치고, ‘할아버지의 재력과 엄마의 정보력’이 지배하는 문화에서 학생들은 점점 피폐해지고 있다. 학생들이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과연 우리는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열고 있는가?

한국의 ‘교육열’은 학생들의 과도한 학습노동으로 드러난다. 학생들은 옆을 돌아볼 여지도 없이 주어진 트랙 안에서 전방 질주해야 한다. 집에서 가장 먼저 나가고 가장 늦게 들어오는 이도 학생들이다. 학원을 다니며 내신 성적을 관리하고, 생기부용 수행평가와 봉사활동으로 주말조차 쉴 시간이 없다. 돈과 권력과 네트워크가 있는 부모가 대신해주거나 그도 아닌 경우 학생이 그 많은 것을 감당해야 한다. 최근 서울시 교육청에서 제안한 ‘학원일요휴무제’도 지쳐가는 학생들에게 쉴 기회를 주자는 문제의식의 발로지만, 실제 학생들의 휴식권이 보장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경쟁을 조장하는 교육환경에서 학생들은 시들어간다. 제시카 조엘 알렉산더가 쓴 ‘행복을 배우는 덴마크 학교 이야기’는 신뢰, 공감, 진솔함, 용기, 휘게(hygge)의 가치를 강조하는 덴마크 학교 현장을 보고한다. ‘트리브젤 테스트(trivsel test)’는 ‘좋은 삶’을 체크하고 평가하는 시험으로 학교에도 적용된다. ‘식물’과 관련된 북유럽 고어인 ‘트리브젤’이 상징하듯, 인간을 기계가 아닌 식물과 같은 존재로 바라본다. 그들은 교육환경에서 “학생들이 충분한 관심을 받고 있는지, 학생들의 이야기가 경청되고 있는지, 학생들의 사회, 정서적 발달이 순조롭게 이루어지는지”를 성적보다 우선적으로 고려한다. ‘이거 해라, 저거 해라’고 강요하는 교육이 아니라 아이들이 스스로 배우는 이유를 깨달으며 질문과 대화로 문제를 풀어가는 방법을 배우도록 한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고 경쟁하며 보여주기식 교육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 우리에게 경종을 울려준다.

아프리카 물소떼는 물가에 도착하려고 단체로 질주하다가 아비규환이 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남보다 먼저 물을 먹으려는 욕심과 속도 경쟁이 결국 벼랑 끝으로 몰고 가는 결과를 낳는다. 학생들이 쏟아지는 잠을 이기지 못해 수업시간에 졸거나 엎드려 자는 교실 풍경이 낯설지 않다. 휴일에 놀 시간은 고사하고 휴식 시간조차 없이 대학입시를 향해 계속해서 달려가는 형국이다. 남보다 빨리 도착하는 것보다 올바른 방향을 잡아 자신의 보폭대로 나아가도록 하는 교육은 불가능한가? 학생들의 질문으로 생기가 넘치는 교실, 학생들이 각자의 잠재력이 꽃 피울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교육이 그리 어려운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