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 수도암 대적광전 오르는 계단. 수도암은 김천시 증산면 수도길 1438에 있다.
김천 수도암 대적광전 오르는 계단. 수도암은 김천시 증산면 수도길 1438에 있다.

포장된 외길을 오르다보면 은둔하듯 숲속에 터를 잡은 김천 수도암을 만난다. 가파르게 이어지는 길이 울창한 초록숲의 유일한 출구이다. 본사인 청암사가 수도산을 지키는 여신(女神)같다면 해발 1000m 쯤에 자리 잡은 수도암은 남신(男神)이라 할 만하다.

신라 헌안왕 3년(859년) 절을 창건한 도선국사가 터를 발견하고 만대에 수도인이 나올 곳이라 기뻐했다는 천하 명당, 풍수적으로 여인이 베틀에 앉아 베를 짜는 형국이다. 대적광전 앞에는 베틀의 기둥을 상징하는 동탑과 서탑이 늠름하고, 실 감는 도토마리석이 발견되어 전설 같은 이야기에 힘을 더한다.

경내는 세 단으로 나뉘어져 높고 웅장하다. 관음전에 들러 백팔 배를 하고 가파른 계단을 천천히 오르면 오래된 대적광전을 만난다. 대적광전에 봉안된 보물 307호 석조비로자나불은 석굴암 본존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풍만하고 장대하다. 게다가 천년의 세월을 이겨낸 불상답지 않게 보존상태도 양호하다.

운무도 고요한 골짜기를 유빙처럼 떠다니며 기도 중인가. 절은 참선에 든 듯 고요하고 까마귀 한 마리 죽은 나뭇가지에 앉아 간헐적으로 울어댄다. 수행하는 스님들은 굳게 닫힌 선방문 안에서, 나는 까마득한 옛날을 떠올리며 소리 없이 걷는다. 꾹꾹 눌러 밟는 시간 속에 그리움이 피어난다. 오늘처럼 안개 냄새가 나는 천 년 전 어느 구월의 하루를.

왕희지의 재림이라 일컫던 신라의 명필 김생의 글씨로 추정된다는 도선국사비 앞에 마주 선다. 선명하던 눈빛이 꺼져가던 순간 빛나던 말씀은 얼룩으로 남고, 옛사람이 남긴 지문은 바람이 지워 버렸다. 수많은 날들이 통증을 일으키며 손을 내민다. 무심히 지나쳤던 별 특징 없던 비(碑)가 새로운 의미가 되어 내게로 온다.

내 안에 깊게 뿌리내린 이 알 수 없는 뜨거움, 결코 만질 수 없는 아득한 그리움 같은 이것을 누군가는 얼이라 했다. 큼지막하게 음각해 놓은 (개)창주도선국사(開<5231>主道詵國師)라는 글자만 뚜렷이 들어온다. 그 등판에 흐르는 유일한 김생의 친필은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았다. 이제 육안으로는 식별할 수가 없다. 대부분 마모되고 10여 자만 낡은 무늬로 남아 자유를 꿈꾼다. 이름을 남긴다는 건 빛나는 존엄 뒤에 깊고 여윈 빈 의자 하나 만드는 일인지 모른다.

약사전 툇마루에 앉아 잠시 사색에 잠긴다. 절 살림을 맡아하는 실장님이 차 한 잔을 권한다. 종무소에 앉아 보이차를 마시는 동안에도 내 눈은 높다란 계단 위에 앉은 비로전으로 향한다. 자유롭게 자라는 풀숲에는 이른 가을이 일렁이고 공양주 보살은 텃밭에서 막 따온 고수를 다듬는다. 목청을 낮추지 않고 울어대는 까마귀 소리마저 평화롭게 들리는 산사의 오후다.

스스로 빛을 낸다는 수도암의 비로자나불상, 그 위신력(威神力)에 관한 신비성보다 세속의 삶을 뒤로 하고 산중에서 봉사하며 살아가는 두 분의 이야기가 더 감동적이다. 어떤 깨달음이 있어 평생을 열망하며 이루어놓은 화려한 이력들을 버릴 수 있었을까.

향이 강한 고수 같은 분들이다. 피를 맑게 하고 심신을 안정시켜주어 예로부터 스님들이 애용했다는, 호불호가 뚜렷이 갈리는 채소다. 절집에서 맛보는 고수의 맛이 궁금해 한 잎 따서 베어 문다. 내 몸은 낯선 이국의 향기를 거부한다. 천천히 보이차로 입가심을 한다. 발효된 차가 은은하게 온몸을 돌아 나를 안정시킨다.

미생물을 이용해 농사를 짓는 친환경 농법 EM(Effective Micro-organisms)으로 채소를 키운다는 소식은 얼마나 겸손한가. 이랑마다 촘촘한 망들을 씌워 유해한 벌레를 차단하고 주지 스님이 손수 풀을 깎는다. 수행과 울력을 기도처럼 하시는 스님은 뵙지 않아도 이 시대에 보기 드문 선지식 같은 분이리라.

조낭희 수필가
조낭희 수필가

산사를 나서는데 공양주보살이 커다란 통 하나를 건넨다. 주지 스님이 손수 만들고 희석시켜 놓은 발효액이다. 친환경적인 삶에 욕심이 생겨 반가운 마음으로 넙죽 받고 말았다. 발효된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유익함을 준다는 말이며, 앎이 실천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가능하다.

커다란 EM 한 통을 트렁크에 싣는다. 묵직하다. 기도하고 실천하는 삶 그리고 무심으로 베푼 정성이 덤으로 실린 까닭이다. 하지만 기쁨은 짧았다. 밤늦게 집에 도착한 후 트렁크에 있는 발효액을 꺼낸다는 걸 잊고 말았다. 다음 날 시큼한 냄새가 진동하여 살펴보니 엎질러져 깨진 통 틈새로 발효액이 죄다 흘러나와 차 안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참담하다. 바빠서 종종걸음을 치던 내게 일거리 하나가 보태졌다.

텃밭이며 정원에서 향기를 피워야 할 발효액이 쓰임을 다하지 못하고 오물로 변한 건 순식간이었다. 몸의 수고로움 없이 좋은 결과를 원했던 나의 아둔함과 설익은 동경이 불러온 참사였다. 향이 강한 고수처럼 혹은 눅진눅진한 발효액처럼 사는 일은 쉽지 않다. 고수는 어떠한 유혹에도 흔들림 없이 자기 고유의 향을 지키며, 발효가 된다는 것은 내가 없어지고 또 다른 나로 거듭나는 것을 의미한다.

수도암에는 고수 같은 보살과 발효액 닮은 스님이 계신다. 그 곳을 다녀온 후 쓸쓸한 삼귀례(三歸禮)의 고백 하나, 지금까지 내 가슴에서 그렁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