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에 읽을만한 책

책을 읽는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일을 하기 위해 수업 자료로, 때로는 누군가를 기다리며 대화를 나누는 친구를 대신 하기도 한다. 연휴가 긴 추석에 고향을 오가는 긴 시간에 동행할 친구가 있다면 좋을 것 같아 책 몇 권을 소개해 볼까 한다. 운전하는 남편을 위해 시집을, 뒷자리에 앉은 자녀를 위해 소설을, 미래를 보는 안목을 높이기 위해 그림설명서를, 편지글과 수필 한 편도 함께 넣었다. 골라보는 재미를 느껴보길 바란다.

△진달래꽃-김소월

경성부 연건동 121번지에서 택배가 왔다. 누런 봉투에 경성우체국 우표와 직인이 찍혔고, 속달편으로 보낸다고 써 있다. 과거에서 현재의 내게 김소월 시집 <진달래꽃>을 보내온 것이다. 소와다리 출판사의 초판본 디자인 시리즈의 이벤트였다. 시집 속에 경성시내 풍경이 찍힌 사진엽서도 한 장 들어 있다. 엽서에는 김소월의 손글씨체로 ‘제 시는 사랑을 받고 있나요 그때쯤은 독립을 했을런지요’라고 묻고 있다. 읽는 순간 목울대가 울렁 한다. 과연 우리는 소월이 원했던, 기다렸던 그 완전한 독립을 이루었는가.

1925년에 첫 출간된 <진달래꽃>은 김소월 사후에도 수많은 출판사들에 의해 꾸준히 출간되어 왔으나 국어 표기법이 정해지고 편집자들의 손을 거치며 최초 모습과는 조금씩 달라지게 되었다. 이 책은 여러 판본 중 정본으로 여겨지는 중앙서림 초판본을 내용과 표기는 물론 활자까지 그대로 복원한 책이다. 세로쓰기 및 우측 넘김으로 구성되어 있다.

‘오늘도 어제도 안이잊고 먼훗날 그때에 잊었노라’싯구 ‘잊었노라’를 [니젓노라]라고 강조해서 적었다. 아직 잊지 않음이 분명하다. 우리 모두 소월을 잊지 않고 노래하고 있듯이.

△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 -로버트 뉴턴 펙

누군가 읽을 만한 소설을 추천해 달라고 한다면 다섯 권안에 들어가는 책이다. 2007년 아들의 중학교 필독서로 구입했지만 내가 더 사랑한 책이기 때문이다. 글의 배경은 1940년대쯤 미국이다. 편리한 문명을 거부하고 검소하게 살아가는 세이커교도 가족이야기이다. 세이커교는 공동생활을 강조하는 미국 기독교의 일파이다. 헤리슨 포드 주연의 영화 ‘위트니스’ 에는 아미쉬교도들이 나오는데 공동생활을 하고 있어 함께 보면 책 읽기에 도움이 된다.

글의 주인공은 12살이다. 아버지에게서 삶의 중요한 모든 것을 배운다. 이웃집과 사이에 울타리를 치면서 아버지에게 사람들만 전쟁 같은 울타리를 치는 것 같다고 하자, 학교 교육을 한 번도 안 받은 아버지는 세상의 모든 것들의 울타리 치는 법을 알려준다. 여우는 자기 영역에 오줌을 눠서, 울새는 지저귐으로, 나무는 자기 둘레만큼 뿌리를 뻗어서 알려준다는 것이다. 울타리는 이웃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만드는 것이지 싸우려고 쌓는 담장이 아니라고 찬찬히 일러준다. 남들이 하기 싫고 힘든 도축 일을 하는 아버지는 성자에 가깝다.

이 책의 문체를 헤밍웨이 문체라고 한다. 읽기 쉽게 쓰였기 때문이다. 헤밍웨이는 쉽게 쓰는 것이 가장 어려운 것이라고 했다.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쉽게 차분히 알려주는 주인공의 아버지는 헤밍웨이의 생각을 이미 알고 있었다. 내가 늘 추구하는 삶의 방향이다.

△오주석의 한국의 미(美) 특강-오주석

한국의 옛 그림에 대한 책이다. 이 책은 ‘옛 그림 감상의 두 원칙’, ‘옛 그림에 담긴 선인들의 마음’, ‘옛 그림으로 살펴본 조선의 역사와 문화’라는 세 가지 주제로 이야기를 펼친다. 실제 강의를 기본으로 한 책인지라, 잘 읽히고, 내용도 충실하다. 옛 사람들의 풍류가 담긴 여러 그림을 마음으로 느끼도록 작가는 상세히 설명한다. 간송미술관 큐레이터로 일하다 2005년 지병으로 돌아가셔서 우리에겐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미술관에 자주 가면서도 그림과 조형물의 감상법을 잘 몰랐는데 이 책에 아주 자상하게 설명해 놨다. 그 대각선의 1내지 1.5배 정도를 유지해서 거리를 두고 왠지 마음이 끌리는 작품을 느긋하게, 천천히 마음을 집중해서 감상하면 좋다고 한다. 또 이 책은 옛 그림에 대한 이야기인데 현대그림과 가장 큰 다른 점이 세로쓰기이며 세로가 길다는 것.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쓰다듬듯이 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그림읽기는 찬찬히 보라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무언가에 쫓기듯 제목과 화가이름만 확인한 후 다음 그림으로 넘어가며 후루룩 미술관을 나오기 일쑤다. 그림 한 점 앞에 자리를 깔고 멍을 때리기도 하고 따라 그려보기도 하며 그림 속으로 걸어 들어가 보자. 오늘은 추사와 다음엔 김홍도와 노닐며 담소를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

△체링크로스84번지-헬렌 한프

서간체 문학이다. 글쓴이 헬렌 한프는 평생 뉴욕에서 글을 썼지만 그리 많은 명성을 떨치지는 못했다. 그의 이름은 영국의 한 헌책방과 주고받은 이 한 다발의 편지 덕분에 널리 알려졌다. 이 책방이 문을 닫을 때까지 20년이란 긴 세월 동안 그들이 편지를 통해 우정을 나눌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책을 사랑하는 마음’이 같았기 때문이다.

책을 살 때 주로 온라인 서점을 많이 이용한다. 먼저 책이름을 검색어로 치고, 중고 책이 있는지 확인한다. 가격이 새 책과 천 원 이상 차이가 나면 거의 헌 책을 산다. 나무 한 그루를 살리기 위해서 이고, 또 책의 전 주인이 책에 써 놓은 메모를 찾아보는 재미도 있다. 책을 언제 샀는지 누구에게 선물 받은 것인지, 그날의 날씨와 기분이 써 있을 때도 있어서 그 사람의 추억도 덤으로 읽게 해 준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키다리 아저씨, 성경의 로마서·유다서 또한 편지글이다. 정약용도 유배지에서 보낸 글이 책으로 엮였고 고흐와 이중섭의 편지도 출판됐다. 요즘은 카톡과 문자로 간단히 마음을 표현하니 얼마 후에는 이렇게 짧은 메시지를 담은 책이 나올지 모를 일이다. 우리도 이왕 태어나 살고 있으니 마음을 담은 편지를 부모님께 또 군에 간 아들에게 띄워 보내는 가을이길 바란다.

△돼지고기 반근-정성화

여행길에 가장 읽기 좋은 글이 수필이다. 끊어 읽어도 감흥이 사라지지 않고, 누구나 부담 없고 마음만 먹으면 직접 쓸 수도 있는 가장 친근한 문학이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수필의 전성시대이다. 작가 정성화의 글은 중학교 교과서에 두 편이나 실렸다. ‘동생을 업고’가 대교출판사에 ‘크레파스가 있었다’가 좋은책신사고에 수록되었다.

책의 제목으로 쓰인 ‘돼지고기 반 근’은 작가의 대학입학시험에 떨어진 날이 배경이다. 짧은 수필 한 편을 읽으며 좋은 문장을 찾으려 하는데 이 글은 일부러 찾을 필요가 없다. 첫 문단부터 줄을 긋기 시작해 거의 모든 문장이 가슴을 울리기 때문이다. 자식에게 돈이 없어서 소고기도 못 사 먹이고 돼지고기를 그것도 한 근이 아닌 반 근만 끊어서 가슴에 품고 귀가하는 아버지의 슬픔이 무겁게 느껴진다.

작가는 슬픔의 무게는 얼마일까 묻는다. 또 대답한다. 고작 반 근의 무게밖에 되지 않는다고. 신문에 엉겨 붙은 돼지고기 반 근과 슬픔을 맞바꾸었다고 되뇌인다. 하지만 아버지의 사랑은 한 손으로 들 수 없는 무게, 참으로 온전한 한 근 이었다며 아버지를 위한 별 하나를 하늘을 향해 쏘아 올린다. 이번 추석연휴에 그 별 하나를 발견하길 바란다.

/김순희(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