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버섯을 귀하게 여겼던 우리 선조들
황광해의 경북의 멋과 맛을 찾아서

상황버섯. 식용보다는 약용으로 사용한다.
상황버섯. 식용보다는 약용으로 사용한다.

“일 능이, 이 표고, 삼 송이”라는 표현이 있다. 능이버섯, 표고버섯, 송이버섯 순서라는 뜻이다. 엉터리다. 근거는 없다. 언제 누가 한 말인지 알 수가 없다. 조선 시대, 일제강점기 기록에도 이런 문구는 없다. 표고버섯, 석이, 목이버섯, 싸리버섯[鳥足茸, 오족이]은 기록에 있지만, 능이버섯은 없다. 능이는 2000년 이후 나타난다.

능이나 표고가 나쁘다는 뜻이 아니다. 이런 순서매김은 없었다. 우리 선조들은 버섯뿐만 아니라 음식물, 식재료의 순서를 정해서 이야기하지 않았다. 한식은 진귀한 식재료를 구하지 않는다. 모든 식재료를 귀하게 여긴다. 이파리부터 뿌리까지 모두 귀하게 여긴다. 한식의 길이다. 생선의 부위를 세밀하게 가르고 그 부위마다, 이른바, 스토리텔링을 하는 것은 일본 음식의 방식이다. 버섯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 선조들은 송이버섯을 귀하게 여기긴 했지만 다른 버섯을 멸시하지는 않았다. 버섯의 순서를 정하는 것은 터무니가 없다.

조선 시대 문신 계곡 장유의 시 ‘적상산의 승려에게 지어준 시’에 버섯이 나타난다.

부처님 귀 모양의 향긋한 버섯/고목나무 등걸에서 커 나왔는데/따다가 솥에 넣고 우려낸 그 맛/연하고 부드럽기 고기보다 훨씬 낫네(계곡 선생집_25권)

‘부처님 귀 모양의 향긋한 버섯’이 정확히 어떤 버섯인지는 알 수가 없다. 송이버섯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고목 등걸에서 컸다고 했다. 송이버섯은 나뭇등걸에서 자라지 않는다. ‘적상산 승려에게 주는 시’라고 했다. 적상산은 전북 무주의 산이다. 예나 지금이나 송이버섯의 대량 산지는 아니다. 계곡은 ‘연하고 부드럽기가 고기보다 낫다’고 추켜세웠다. 송이버섯 향이 좋긴 하지만, 가장 으뜸이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다른 버섯도 좋다. 다만 송이버섯은 점잖은 솔 향기가 나니 좋다는 정도였다.

송이버섯을 귀하게 여긴 이유는 바로 ‘향’ 때문이었다. ‘송이(松茸)’는 ‘소나무 버섯’이다. 소나무의 향기를 지닌다.

한반도에 가장 흔한 나무는 소나무다. 소나무는 한겨울에도 ‘독야청청’한다. ‘남산 위의 저 소나무’는 민족 기개다. ‘송(松)’은 ‘목(木)+공(公)’이다. 나무 중의 귀족이요, 으뜸이다. 한반도에는 흔하다. 우리 민족은 소나무의 향과 친숙하다. 유럽인들은 송이버섯을 피한다. ‘테라핀 냄새’가 난다. 소나무의 독특한 향을 싫어한다. 송이버섯도 피한다. 우리는 다르다. 귀하지만 흔한 나무, 소나무 아래서 자라고, 소나무 향을 고스란히 지녔다. 송이버섯은 귀하다. 송이버섯은 죽은 나무, 썩은 나무에 기생하지 않는다. 대부분 버섯은 죽은 나무에 기생하거나, 부패한 흙에서 자란다. 더러 생나무에서 자라는 버섯도 있지만, 송이버섯처럼 아예 맑은 흙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버섯은 귀하다. 송이버섯은 거름이 강한 땅에서도 자라지 않는다. 송이버섯을 귀하게 여긴 또 다른 이유다.

음식, 식재료는 대부분 맛으로 가른다. ‘맛있다’ ‘맛없다’로 가른다. 송이버섯은 맛이 아니라 향이다. 고려의 문신 이규보(1168~1241년)가 송이버섯에 대해 남긴 시가 있다. 송이버섯을 정확히 설명한다. 제목은 ‘송이버섯을 먹다’이다.

버섯은 썩은 땅에서 나거나/아니면 나무에서 나기도 한다/모두가 썩은 데서 나기에/흔히들 중독이 많았다 하네/이 버섯만은 소나무 아래에서 나/늘 솔잎에 덮였었다네/소나무 훈기에서 나왔기에/맑은 향기 어찌 그리도 많은지/향기 따라 처음 얻으니/두어 개만 해도 한 웅큼일세/내 듣거니, 솔 진액 먹는 사람/가장 빨리 신선 된단다/송이도 솔 기운이리니/어찌 약 종류가 아니랴

이규보는 약 800년 전, 고려 후기 사람이다. 오래전부터 송이버섯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있었다. 송이버섯 식용의 역사는 길다. ‘삼국사기’에, “신라 성덕왕(702~737년) 때 왕에게 송이버섯을 진상했다”는 내용이 있다. 기록상 가장 오래된 송이버섯 이야기다. 무려 1,300년 전의 기록이다. 송이버섯이 성덕왕 때 갑자기 나타났을 리 없으니 식용의 역사는 그보다 앞선다고 추정한다.

기록이 많이 남아 있지 않은 고려 시대에도 송이버섯에 관한 내용은 꾸준히 나타난다. 고려 말기 문신 근재 안축(1282~1348년)의 시는 제목이 ‘송이버섯[松菌, 송균]’이다.

서늘한 가을 지팡이 짚고 소나무 사이 걷다가/손으로 따서 새로 난 것 먹어 보니 맛이 좋구나/관가의 좋은 반찬[粱肉, 양육]도 향이 이만 못하여/구름 보고 젓가락 던지며 청산에 부끄러워하네(근재집 제1권)

예나 지금이나 송이버섯은 소나무 숲에서 자란다. 맛은 어떠했을까? 근재는 송이버섯의 ‘맛’을 ‘향’으로 설명한다. ‘양육(粱肉)’은 좋은 음식 혹은 ‘쌀밥과 고기’다. ‘양(粱)’은 기장(혹은 수수)이다. 중국에서는 손님이 오면 기장밥을 내놓았다. 기장밥이 일상 최고의 음식이었다. ‘양육’이라고 표기하고, ‘쌀밥과 고기’라고 해석하는 이유다. ‘양육’은 최고의 음식이다. 송이버섯의 향은 ‘관가의 양육’을 넘어선다. 조선 시대의 시는 좀 더 구체적으로 송이버섯을 설명한다. 조선 중기의 문인, 관료 고산 윤선도(1587∼1671년)의 칠언절구다. 시의 끝부분에 “이 시는 송이버섯을 보내준 것을 사례한 것”이라고 적혀 있다.

솔 사이에 자란 식물 맛[嘉味]이 좋아서/쓰지도 시지도 않고 맵지도 않아/이파리, 줄기 없어도 제대로 몸을 갖췄고/싱그런 향기에 정신이 벌써 상쾌해라/오랜 벗이 성중의 객에게 선물을 보냈나니/부엌 아낙 도마 먼지 닦느라 바쁘다/만약 장공에게 한 젓가락 맛보게 한다면/오회 강의 가득한 순채를 어찌 말하리오

송이버섯은 ‘가미(嘉味)’다. 좋은 맛, 진미다. ‘프리미엄 향’이다. “이파리, 줄기 없이 제대로 몸을 갖췄다”는 표현은 절묘하다. 잎도 줄기도 없지만 여느 식물을 앞서는 향이 있다.

향기가 빼어난 송이버섯.
향기가 빼어난 송이버섯.

‘장공’ ‘오회 강의 가득한 순채’는 설명이 필요하다. 장공은 진[西晉, 서진]나라 제왕(齊王) 시절, 동조연(東曹掾)으로 벼슬생활을 하던 장한(張翰)이다. 어느 날, 가을바람이 불어오자 문득, 고향 강동(江東) 오중(吳中)의 순채 국과 농어회를 떠올린다. 장한은 그길로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간다. ‘순갱노회(蓴羹鱸膾)’의 고사다. 순갱노회는 조선 시대 사대부의 로망이었다. 고산은 송이버섯이 ‘순갱노회’를 앞지른다고 말한다.

예나 지금이나 송이버섯의 주산지는 소나무가 흔한 곳이다. 소나무나 그 지역의 토질, 바람, 습도, 온도, 강우량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송이버섯의 생산량과 품질을 정한다. 송이버섯은 자연산이다. 실험실에서 ‘일부’ 양식에 성공한 적도 있지만 ‘실험실의 성공’에 불과하다. 일본과 한국 모두 ‘양식 재배’는 여전히 힘들다.

생산량, 품질로는 경북이 가장 앞선다. 전국 생산량의 40-50%가 경북 영덕 몫이다. 봉화, 청송 역시 송이버섯에서는 빠지지 않는다. 송이버섯은 태백산맥을 중심으로 생산된다. 경북 울진, 영덕, 봉화, 영양, 문경, 영주 그리고 태백산맥의 끝자락인 영천 등에서 송이버섯을 생산한다. 경북 생산량이 전체의 70~80%를 차지한다.

송이버섯은 4단계로 분류한다. 상품 1, 2, 3등급이 있다. 등외품도 있다. 1등품 기준으로 한때 1Kg, 100만 원을 넘긴 적도 있지만 대략 30-40만 원 선이다.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송로버섯(트러플)에 비하면 낮은 가격이라지만 여전히 비싸다. 2등품은 크기가 작고, 갓이 일부 핀 것이다. 3등품은 생장을 멈춘 생장정지품 혹은 갓이 1/3 이상 핀 것이다.

가격은 한결 싸지만, 실제 식탁에서 느끼는 향은 1등품과 큰 차이가 없다. 다행히, 냉장 보관의 경우 향도 큰 차이가 없다. 봉화, 영덕에서는 ‘송이라면’을 내놓는 집들도 있다. 송이라면, 송이버섯 덮밥의 경우, 굳이 1등품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소비자도 마찬가지. 선물용이 아니라면 굳이 가격이 높은 1등품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맛칼럼니스트 황광해

    맛칼럼니스트 황광해

저작권자 © 경북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