⑬ 동해안 풀빌라, 어디까지 가봤니?

포항 ‘이스케이프 풀빌라’의 빼어난 오션뷰.
포항 ‘이스케이프 풀빌라’의 빼어난 오션뷰.

할리우드 영화에는 수영장 딸린 비버리힐즈의 대저택이 종종 등장한다. 어릴 적에 그런 영화들을 보면 몹시도 부러웠다. ‘수영장 딸린 집’은 부의 상징인 동시에 여유롭고 낭만적인 삶을 의미했다. 그래서 이사 가자고 떼를 썼다. 그때마다 남루한 현실과 마주해야 했다. 아버지 손에 붙들려 간 동네 ‘귀빈탕’ 냉탕에서 물장구치다가 등짝을 얻어맞거나 엄마와 함께 과천 ‘복돌이동산’ 수영장에 가는 게 고작이었다. 또래 아이들과 함께 물 반, 사람 반의 풀장에 들어가 있으면 어떤 아이들은 물속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 몸을 부르르 떨곤 했다.
 

경북 해파랑길 위에 지어진 풀빌라
새로움 찾는 여행객들에게 인기
포항 구룡포 ‘산토리니’ 못지않고
영덕 펜트하우스 파티 즐길 수 있어

울진 ‘프렌치페이퍼’ 풀빌라 객실 내부 풀장.
울진 ‘프렌치페이퍼’ 풀빌라 객실 내부 풀장.

청소년기를 지나 어른이 되어서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나마 몸매에 자신 있던 20대 때는 한강 수영장이나 이름난 오션파크에도 좀 다녔는데, “돈 빼고 살 모으는” 무역 적자의 삶을 살다보니 근육은 빠지고, 배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수영장에 발길을 끊었다. 수영장에서 놀던 여름이 철 지난 영화처럼 색 바랜 추억이 될 무렵, 정말 철 지난 영화 속 비버리힐즈 저택이 떠올랐다. 타인과 살 부대끼지 않고, 타인의 시선으로부터도 자유로운 ‘나만의 수영장’에서 음악을 들으며 칵테일을 마시고, 그러다 물로 뛰어들어 노는 그 ‘사치스런’ 휴양이 간절해진 것이다.

펜션 여행이 한창 인기를 끌던 2000년대 중반 이후 사람들은 산 좋고 물 좋은 곳에서 숯불에 삼겹살 구워 먹고 하룻밤 자고 오는 ‘상투적’ 여행에 슬슬 싫증이 났다. 여행 숙박업에도 다양성과 함께 개인주의 영향의 ‘프라이빗(private)’이 요구되었다. 사람들은 펜션이나 리조트 여행에서 보다 특별한 휴식을 기대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경기도 가평, 포천 등 펜션 밀집지역에 우후죽순처럼 ‘스파 펜션’이 생겨났다. 제트스파 기계욕조를 설치해두고 ‘웰빙’과 ‘힐링’을 내세워 돈을 몇 배로 더 받았다. 스파 욕조에 입욕제를 풀어 거품을 몽글몽글 피워놓고, 오색으로 불빛을 바꾸는 욕조 속에 몸을 누인 채 음악과 와인을 즐기는 일은 꽤 낭만적이었다. 하지만 좁은 욕조에서 수영은 즐길 수 없다. 대부분 펜션이 스파 욕조를 실내에 설치해둬 바깥 자연의 공기와 바람, 빛을 만끽할 수도 없었다.

 

영덕 ‘프라이빗어스’의 외관과 야외 풀장.
영덕 ‘프라이빗어스’의 외관과 야외 풀장.

그리고 2010년대, 바야흐로 ‘풀빌라’의 시대가 왔다. 풀빌라에서는 널찍한 수영장을 남과 공유하지 않고 혼자 쓸 수 있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 할 때 더 좋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처음에는 가평이나 포천 등 숲과 계곡 여행지에 주로 들어섰지만 이제는 ‘오션뷰’ 풀빌라가 대세다. 필리핀 세부나 인도네시아 발리,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의 풀빌라 못지않은 ‘럭셔리 풀빌라’까지 생겨났다. 굳이 해외 휴양지를 가지 않더라도 국내에서 얼마든지 특별한 휴식을 즐길 수 있다. 그런 풀빌라들은 대개 비버리힐즈 저택처럼 근사한 외관과 내관을 지녔다.

경북 바닷길에도 풀빌라들이 여럿 생겼다. 동해안 여행의 트렌드가 새로워진 것이다. 침식작용이 활발해 절벽이 많고 수심이 깊은 동해의 특성이 풀빌라가 들어설 천혜의 입지조건이 되었다. 이제 경북 동해안을 찾는 사람들은 해파랑길 절벽 위에 지어진 풀빌라에서 물놀이와 함께 휴식을 즐기며 깊은 바다만이 낼 수 있는 신비한 푸른빛에 몸과 마음을 적신다. 그 환상적인 체험을 할 수 있는 경북 바닷길의 풀빌라 몇 곳을 소개하고자 한다.

울진 후포에는 ‘프렌치페이퍼’라는 풀빌라가 있다. 기하학적 설치미술작품을 연상시키는 건물 외관이 먼저 눈을 사로잡는다. 펜션 마당에 넓은 야외 공용 수영장이 있어 동남아 휴양지 리조트의 분위기가 난다. 총 24개의 객실 중 풀빌라 타입은 10개인데, 객실마다 바다를 향해 막힘없이 개방된 야외 테라스와 내밀한 수영장이 있다. 테라스에선 바비큐를 즐길 수도 있다. 숙박료도 합리적인 편, 풀빌라 객실 기준 1박 17만원에서 33만원 선이다.

 

포항 환호동 ‘에스피에스타’ 펜션.
포항 환호동 ‘에스피에스타’ 펜션.

영덕에는 지난 글에서 자세히 소개한 병곡면의 ‘하벳리조트’가 ‘럭셔리 풀빌라’로 인기를 끌고 있다. 남정면에는 하벳리조트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내실이 탄탄한 ‘프라이빗어스’가 있다. 구계리 해변에 있는 이 풀빌라 펜션은 언뜻 보기에는 카페처럼 생겼다. 3층 구조에 총 다섯 개의 객실을 보유했으니 꽤 아담한 편이다. 하지만 다른 곳과 구별되는 특징을 지녔다. 바로 ‘파티 풀빌라’라는 점이다. 대부분의 풀빌라들이 연인, 또는 아이를 동반한 부부를 고객층으로 삼아 2인 내지는 4인이 이용하도록 만들어진 데 비해 이곳 프라이빗어스의 ‘펜트하우스’는 최대 10명까지 수용이 가능하다. 객실에는 10명이 동시에 들어가 놀 수 있는 수영장과 편백나무 사우나가 있으며, 다 같이 둘러앉아 영화를 볼 수 있는 소파와 대형 티브이, 바비큐 시설도 갖추고 있다. 친구들끼리 또는 가족 친척들끼리 함께 와 놀기에 안성맞춤이다. 펜트하우스 기준 1박 60만원에서 72만원 선이다.

포항 구룡포에는 ‘이스케이프 풀빌라’가 있다. 동해안의 여러 풀빌라 중에서 가장 유명한 곳이며, 숙박요금이 제일 비싼 곳이기도 하다. 그만큼 최고의 시설을 자랑한다. 인적 드문 하정리 바닷가에 자리한 이곳은 바다와 매우 근접한 거리에서 외부 세계와 완전히 차단된 채 은밀한 휴식을 즐길 수 있다. 외관부터 호화스러운데, 내부는 더 고급스럽다. ‘올 화이트’톤으로 인테리어된 객실에 들어서면 마치 그리스 산토리니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고급화 전략이 주요했는지 높은 가격대에도 아랑곳 않고 이곳을 찾는 고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하정리 바다에서 매년 겨울마다 볼락 낚시를 하는 나는 그곳 바다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잘 알고 있다. 가히 포항의 숨은 비경이라 할 만하다. 그 바다와 뺨이 닿을 듯 마주보면서 스파와 수영, 미니바, 바비큐, 빔프로젝트 영화 관람을 모두 즐기는 이스케이프 풀빌라의 1박 요금은 최저 25만원에서 90만원까지다.

 

경주 ‘루트94’의 아담한 객실 내부 풀장.
경주 ‘루트94’의 아담한 객실 내부 풀장.

하지만 하룻밤에 수십만원을 호가하는 숙박비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기념일이나 여름휴가 때 큰맘 먹지 않는 이상 엄두를 내기 어렵다. 비싼 풀빌라는 ‘그림의 떡’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에게 합리적인 가격으로 일상의 단조로움을 벗어나 특별한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곳을 귀띔해드리려 한다. 분위기 좋은 카페들이 밀집해 있는 포항 환호동에 ‘에스피에스타’라는 펜션이 있다. 비록 사방이 트인 ‘오션뷰’는 아니지만, 멀리 영일대 해수욕장과 포항 도심의 화려한 야경을 보며 목욕을 즐길 수 있다. 야외에 작은 공용 수영장이 있고, 각 객실마다 별도 공간에 대리석 자쿠지 욕조가 마련되어 있다. 카페와 레스토랑, 루프탑 바도 이용 가능하다. 1박 요금은 8만원에서 26만원, 부담이 덜하다. 평일에 이용한다면 ‘가성비’를 한껏 누릴 수 있다.

한옥 펜션이 즐비한 경주에 무슨 풀빌라가 있느냐고 묻는 사람이 적지 않다. 하지만 경주의 대형 한옥 펜션 중에는 마당에 수영장을 갖춘 곳도 있다. 그런데 한옥 펜션 대다수가 ‘황리단길’이나 보문관광단지 주변에 모여 있기 때문에 ‘바닷길’에서는 조금 멀다. 바다로 가자. 경주 남단의 양남면 수렴리 해변엔 ‘루트94’라는 신축 풀빌라 펜션이 있다. 객실에 딸린 개별 수영장에서 짙푸른 경주 바다를 바라보며 수영하고, 테라스 벤치에 앉아 생과일주스를 마시는 망중한을 1박 20만원대의 비교적 낮은 금액으로 누릴 수 있다.

현실은 남루해도 상상은 풍요롭다. 근사한 테라스 풀장에서 나는 ‘태양은 가득히’의 알랭 드롱이다. 어차피 보는 사람 아무도 없으니 알랭 드롱도 되고 뱅상 카셀도 되고 정우성도 될 수 있다. 눈앞의 바다를 바라보며 물놀이를 즐기고, 썬베드에 누워 책을 읽고 또 음악을 듣는다. 석양을 감상하면서 바비큐 그릴에 고기와 함께 키조개, 뿔소라, 문어를 굽는다. 시드니 베쳇의 ‘Summer time’을 틀어놓으니 소프라노 색소폰 선율이 풀장 수면에 너울진다. 황홀감에 젖어서 나는 물에 몸을 담그고 와인을 마신다. 캄캄한 수평선 위로 달이 뜨고, 오징어잡이 배들이 불빛을 흘리는 밤바다 풍경이 별천지다. 새벽엔 하늘에서 글썽거리던 별들이 빗방울처럼 풀장에 떨어져 내린다. 누가 곁에 있으면 좋겠는데, 혼자 누리기엔 너무 사치스런 낭만이다.      /시인 이병철

    시인 이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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