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은 공무원

지식과 정보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얻을 수 있지만 책은 지식을 얻는 가장 보편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매체라고 할 수 있다.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는 가을 문턱에서 왜 책을 읽어야 하는지 생각해 본다. 공부를 위한 기본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유식하게 보이기 위해, 더 넓은 세상에 대해 알고 싶어서 등 책을 읽는 이유는 다양하다. 어떤 이유로든 우리는 자신의 필요 때문에 책을 읽을 것이다.

과거에는 높은 신분을 가진 사람만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특권이었다. 고급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고, 깊은 사고력을 바탕으로 세상에 대한 안목을 넓힐 기회를 가질 수 있음을 의미했다. 과거의 사치품은 현대의 필수품이 된다고 하던가? 책 읽기도 마찬가지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무료로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이 활짝 열려 있다.

25년 차 공무원인 내게 있어 책 읽기는 생존을 위한 무기였다. 겉보기에 무난한 삶이지만 고비 고비마다 순탄한 적이 없었다.

공정하게 느껴지지 않는 상황들, 모두가 자기 손해는 손톱만큼도 안 보는데 나만 순진해서 당하는 느낌, 바보 같이 살고 있다는 생각들이 짓누를 때 속으로는 화나고 슬펐지만, 겉으로 속상하지 않은 척 씩씩한 척해야 할 때가 많았다.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고 싶었다. 누군가 내게 힘내라고 말해주었으면 싶었다.

이런 힘든 상황을 가족이나 친구에게 사사건건 말할 수도 없다. 하소연하면 결국 나만 속 좁은 사람이 되고 말았다. 타인이해 주는 위로가 아니라 스스로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그때 나는 책을 통해서 자신을 위로하고 내면의 안정을 추구하는 것이 가능함을 발견했다.

책에 나오는 한 구절 한 구절은 내가 공정하지 못한 것 같은 세상에 분노할 때, 세상은 원래 그런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래도 과거보다는 지금 세상이 훨씬 공정하게 바뀌고 있음을 알려주었고 이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의 노고가 있었는지 알게 해 주었다. 자기 생명을 위협받는 순간에도 자신을 믿고 행동한다면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해주었다. 조금만 다르게 생각하면 지금의 시련이 너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격려도 해주었다. 네가 언제 한 번이라도 마음과 목숨을 다 바쳐 무엇인가 해 본 적이 있냐고 질책하기도 했다.

세상에는 헐벗고 굶주린 상태로 폭탄이 집에 떨어지지 않기 만을 바라는 제3 세계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을 알려주었고, 위만 바라보고 불평하던 내게 지금 얼마나 풍족하게 살고 있는지를 일깨워 주었다. 그래서 나는 사회에 나와 더 많은 책을 읽었던 것 같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칼의 노래’, ‘한비자의 관계술’, ‘한강’, ‘태백산맥’, ‘연을 좇는 아이’, ‘히말라야 환상방황’, ‘죄와 벌’ 이런 책들을 통해 역경을 이겨낸 사람들을 만났고,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지혜도 배웠다.

책을 읽으면서 힘을 주는 문장, 내 마음을 귀신같이 알고 위로해 주는 그 문장들 때문에 용기를 내어 외국인들이 역동적이라고 표현하는 한국에서 아직 잘살고 있다.

책은 새로운 세계를 향해 성큼 발 내디딜 수 있는 길잡이다.

몰랐던 사실에 대해 놀라워하기도 하고,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저자의 날카로운 통찰력을 만나 지혜를 얻을 수도 있고 때로는 책을 읽다가 만난 문장을 통해 삶이 뒤집기도 한다. 그 한 문장은 누군가의 인생 방향을 바꿀 수도 있다.

사람들은 왜 책을 쓸까? 유전학에 의하면 달고 기름진 음식에 식탐을 느끼는 이유가 열량을 최대한 저장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태곳적 생존 정보가 우리 DNA에 각인된 결과라고 한다. 책을 통한 삶의 지혜 또한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 축적한 지식을 다음 세대에 전해줌으로써 인류 생존을 지속시키고자 하는 본능일 것이다.

가장 좋은 대화의 방법은 다른 사람 말을 잘 들어주는 경청이다. 책을 읽는 것을 저자와의 대화라고 말한다. 가을의 문턱에서 저마다 책에서 얻고자 하는 것은 다를지라도 저자와 대화를 해 보자. 나보다 인생의 경험이 많은 작가들 이야기를 경청해 보자. 그러면 거기에서 삶의 해답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