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관 10주년 포항시립미술관 기획
3일∼내년 1월27일까지

제로 전시회, 갤러리 다오게네스, 독일, 1963년. 사진 : 힐데가르드 웽커 /콜라쥬 : 필립 엥겔. 저작권 : Berlinische Galerie
제로 전시회, 갤러리 다오게네스, 독일, 1963년. 사진 : 힐데가르드 웽커 /콜라쥬 : 필립 엥겔. 저작권 : Berlinische Galerie

개관 10주년을 맞은 포항시립미술관(관장 김갑수)이 1950년대 후반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태동한 ‘국제미술운동’인 제로의 미술사적 의의를 조명하는 ‘제로 ZERO’전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현대 미술을 태동하게 한 제로의 역사와 맥락을 재조명하고 시립미술관의 10년간 활동을 재점검하기 위해 마련됐다.

김갑수 관장은 기념전 개막을 앞두고 최근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이 전시는 포항 시승격 70년, 시립미술관 개관 10년을 기념하기 위해 기획됐다. 지난 반세기 포항은 철강 산업을 통해 한국의 고도 경제성장을 이끌어 왔다. 새로운 천 년이 시작된 이래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은 4차 산업혁명을 일으켰고, 이는 경제구조는 물론 세계를 인식하는 틀과 생활양식의 급진적인 변화로 이어졌다. 산업화를 이끌었던 포항은 지금, ‘탈산업화 시대’의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이 같은 뜻을 담아 미래 포항의 비전을 미술사적으로 가장 잘 반추해 주고 있는 국제적인 미술운동 ‘제로’(ZERO)를 아시아 미술관으로는 처음으로 포항시립미술관에서 소개한다”고 전시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1950년대 독일서 태동한
‘국제미술운동’
예술·기술의 융합
빛·움직임 등 비물질적 재료 사용
설치·조각·평면·영상 50여 점 전시
김갑수 관장
“포항미래비전 미술사적 반추”

‘제로 ZERO’전은 제로운동에 참여한 주요작가들의 설치, 조각, 평면, 영상 등 50여 점의 작품들이 소개된다. 특히 주목할 점은 예술과 기술이 융합되고 빛이나 움직임 등과 같은 비물질적인 재료가 작품에 사용됐다는 것이다.

하인츠 마크는 알루미늄의 재료적 특징을 이용해 빛과 움직임이 서로 유기적으로 작용하는 조각 작품들을 선보인다. 오토 피네의 공간연출은 무한한 우주적 세계를 펼쳐 보이고, ‘못’작업으로 유명한 귄터 위커의 키네틱 작품은 무한 반복으로 돌아가는 기계적 움직임이 생성하고 소멸시키는 찰나의 미적 경험을 가능하게 해 준다. 또한, 이브 클라인, 피에로 만초니 등 제로와 영향을 주고받았던 주요 미술가들의 실험적 작품들이 함께 소개되면서 현대미술에 끼친 제로의 영향을 이해할 수 있다.

전시 연계 프로그램으로 국내외 전문가들이 제로 그룹의 작품세계를 조명하는 POMA 아카데미(27일~11월 1일 매주 금요일 오후 2시~4시), 전시연계 강연 (11월 중), 국제학술포럼 (12월 중) 등이 개최된다. 참가를 원하는 사람은 홈페이지를 통해 참여 신청할 수 있다.

‘영’(零)을 뜻하는 ‘제로’(ZERO)는 1950년대 후반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태동한 ‘국제미술운동’이다. 주축이 됐던 것은 독일 출신의 미술가 하인츠 마크, 오토 피네, 귄터 위커다. 이들은 예술에 기술을 접목시킨 새로운 형식의 작품을 선보이면서 현대미술 발전에 중요한 이정표를 세웠다.

‘코로나 보레알리스’ 작품 앞에서 오토 피네. 1966년. 사진 : 빌 워서먼.  /미국 현대미술연구소
‘코로나 보레알리스’ 작품 앞에서 오토 피네. 1966년. 사진 : 빌 워서먼. /미국 현대미술연구소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 이후 미술의 중심은 유럽에서 뉴욕으로 넘어갔다. 유럽에서 망명한 미술가들의 영향 아래 잭슨 폴록, 바넷 뉴먼, 마크 로스코 등 이른바 ‘추상표현주의’ 미술가들이 등장해 미국미술을 이끌어 갔다. 1960년대 초, 미국의 소비문화와 상업주의적인 미술경향을 반영하는 앤디 워홀로 대표되는 ‘팝아트’가 유행했다. 문화와 역사를 상징하면서 특별한 지위를 누렸던 미술작품은 이제 대량으로 생산되고 소비되는 상품이 됐다.

이 무렵 유럽 전역에서는 전통미술과 결별을 선언한 전위적인 미술가 그룹이나 미술운동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스페인에서는 ‘에키포 57’(Equipo 57)가, 파리에서는 ‘누보 레알리슴’(Nouveau Realisme)이, 이탈리아에서는 ‘그루포 엔’(Gruppo N) 그리고 독일 뒤셀도르프에서는 ‘제로’(ZERO)가 태동했다.
 

‘제로 ZERO’전 포스터.
‘제로 ZERO’전 포스터.

당시 유럽의 미술가들에게는 극복해야만 했던 두 가지 시대적 과제가 있었다. ‘전쟁으로 단절되고 왜곡된 전통미술과의 새로운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하는 것과 ‘상업적으로 퇴색되어버린 미술의 본질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하는 문제가 그것이다. 진취적인 미술가들의 다양한 시도들 중 연속성을 가지며 국제적으로 가장 큰 반향을 일으켰던 것이 제로다.

‘제로 ZERO’전은 포항시립미술관 전관에서 3일부터 내년 1월27일까지 열린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저작권자 © 경북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