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종경북대 교수·노문학
김규종 경북대 교수·노문학

세상 살아가는 일은 간단치 않다. 나와 너, 우리와 너희, 우리와 그들이 끓이는 섞어찌개가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흥미진진하고 포복절도할 일도 적잖다. 언어도단의 세계가 펼치고, 일망무제(一望無際)의 도저한 경지가 현현하는 경우도 있다. 세상에는 고수도 많고, 깊이를 측량하기 어려운 인물도 적잖다. 세상은 불가사의한 곳이다.

로빈슨 크루소가 다시 인간이 될 수 있었던 소이는 ‘프라이데이’와 관계를 맺었기 때문이다. 혼자 걸머지는 인생은 단출하다. ‘격양가’의 주인공처럼 “해 뜨면 나가서 일하고, 해 지면 들어와서 쉬고, 우물 파서 물 마시고, 밭 갈아서 밥 먹으면” 그만이다. 일하기 싫으면 안하면 되고, 먹기 싫으면 굶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둘이 함께 있으면 다른 세계가 열린다. 그래서 나온 말이 ‘처세’다. 세상에 어떻게 거처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개개인은 각자의 처소와 시간에서 어떻게 행동하고 판단할 것인지, 고민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위정자는 거기서 더 나아가야 한다. 백성을 평안하고 넉넉하게 인도할 책무가 있는 까닭이다. 거기서 나온 말이 ‘보민’이다.

예로부터 처세보민은 동양사상의 중요한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550년 전란이 지속된 춘추전국시대의 종요로운 개념 하나가 처세보민이었다. 처세보민은 당대 지식인들이 깊이 사유하고 실천해야 할 사회적 의무였다.

요즘 정치판의 블랙홀은 조국 현상이다. 마치 대한민국에는 그와 그의 가족만 있고, 문제를 야기하는 것처럼 사방에 조국 이야기만 울려 퍼진다. 못내 우려스럽다. 장관 자질을 검증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의 인적사항을 현미경으로 살펴서 온갖 트집거리를 찾아낸다. 그런 과정에서 인격모독과 사생활침해와 연좌제와 인격살인마저 가능한 염량세태가 두렵다. 우리가 이뤄낸 인권과 민주주의의 쇠퇴가 염려스럽다.

다른 편에서 보면 조국 현상은 이른바 86세대의 양면성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한국사에서 선배를 가르친 유일무이한 세대가 그들이다. 7말8초 시대를 살았던 사람으로 그들과 함께할 수 있었음은 축복이다. 진정 몰랐기 때문에 자연스레 ‘불치하문(不恥下問)’이 가능했던 아름다운 시절. 하지만 그들은 물질적 욕망에 포획된 첨단 자본주의 세대다. 돈이 돈을 벌고, 학벌마저 세습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한 세대이기도 하다. 80년대 대학평준화로 입학한 그들은 자유와 민주를 기반으로 하는 변혁과 혁명과 저항을 기치로 내건다. 그들의 이념과 경험이 바탕이 됐던 87년 평화대행진은 한국 민주주의의 정점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그 이면에서 우리는 강남 8학군과 대치동의 발아를 목도한다. 오늘날 처참하게 무너져버린 공교육의 진원지는 “나 이래봬도 이대 나온 여자예요!” 일갈한 타짜세대 아닌가 한다. 조국 현상에서 우리가 성찰할 대목은 ‘도덕경’ 44장에 있다. “만족할 줄 알면 욕됨이 없고,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아서, 오래 갈 수 있다.” 나의 욕망을 어디까지 몰고 갈 것인가, 하는 최종지점을 확실하게 설정해야 한다는 얘기다. 우리 마음속에 ‘계영배 (戒盈杯)’ 하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