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23명 지위확인 소송서
법원, 사측 직고용하라 승소 판결
2015년 해고 150명 움직임 ‘촉각’
최근 판례 사내하청 불법시 경향
지역 대학병원 등 옮겨갈 가능성

일본기업 아사히글라스의 경북 구미 공장 사내하청 비정규직 해고자들이 ‘근로자지위확인소송’에서 승소하면서, 유사한 부류의 소송이 줄을 이을 전망이어서 비정규직을 둘러싼 파장도 예상된다.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원 제1민사부(부장판사 박치봉)은 지난 23일 아사히글라스 한국 자회사인 AGC화인테크노한국 사내 하청업체 지티에스(GTS) 소속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 차헌호 씨를 비롯한 23명이 사측을 상대로 낸 근로자지위확인소송 1심 선고심에서 “(사측이)고용의 의사를 표시하라”고 판결했다.

이번 판결이 주목받는 이유는 사법부가 해고자에 대한 근로자성을 인정하면서 ‘직고용’을 판결했기 때문이다. 이번 소송에 참여한 23명은 물론 지난 2015년 해고된 150여 명의 하청 비정규직들도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커졌다. 비슷한 상황에 처한 비정규직 해고 근로자들도 소송에 나설 개연성이 높다.

아사히글라스 근로자들을 대리한 장석우 변호사는 “설령 비정규직으로만 운영되는 공정이든, 직접제조 공정과 떨어져 있든 제조업 사내하청 사용을 불법파견으로 인정한 판례가 나오고 있는데 이번 아사히글라스 재판에서도 이런 경향을 확인했다”며 “파견법 위반 형사 사건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구미지부, 금속노조 구미지부, 아사히 비정규직지회도 법원 선고 후 “노동자성을 법적으로 인정받은만큼 사내하청이라는 불법파견을 뿌리뽑길 바란다”고 요구했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비공공부문은 물론 노조에 가입되지 않은 곳까지 추산하면 지역 근로자의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일 것”이라고 말했다.

당장 두 달 가까이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영남대의료원 해고 노동자들도 소송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 영남대의료원 사태는 지난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노조는 인력 충원 등을 요구하며 파업에 나섰으나, 노조 간부 10명이 해고됐다. 다만, 해고 인원 중 7명이 해고무효 소송을 냈다. 이들은 대법원 소송에서 승소해 복직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법원은 현재 농성 중인 간호사 2명 등의 해고는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해고 간호사와 영남대의료원은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해고 간호사 측은 요구 사항이 관철되기 전까지 옥상에서 내려올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영남대의료원을 상대로 재소송이 가능한지 검토 중이다. 한 노무법인의 노조와해 공작 정황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영남대병원 관계자는 “지난 2007년 해고된 간호사 2명이 대법원에 해고무효 소송을 냈지만 패소했다”며 “대법원 판결이 바뀌지 않는 한 원직 복직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경북대학교병원의 파견·용역 비정규직 근로자들도 지난 22일부터 파업에 들어갔다. 경북대병원 삼덕동 본원·칠곡경북대병원 소속 파견·용역 비정규직 370여 명 중 노조 조합원 200여 명이 참여했다. 직군은 청소, 주차, 콜센터, 시설, 전산, 원무 등이다. 길게는 수 십년간 병원에서 일했지만 용역·하청업체가 파견한 간접고용 비정규직으로 계약상 병원 직원이 아니다. 이들은 지난 2017년 문재인 정부가 공공기관 내 비정규직에 대한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이후에도 정규직 전환을 이루지 못했다. 

따라서 이번 아사히글라스 근로자들에 대한 ‘직고용’ 판결이 이들에게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다분하다. 경북대에서 근무하는 비정규직 노조는 “정부는 더 이상 방관하지 말고 약속에 책임을 져야 한다”면서 “병원은 자회사도 정규직이라는 말장난을 멈추고 직접고용 정규직 전환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대구에서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1단계 전환대상인 경북대병원을 비롯해 8개 구·군 CCTV관제센터, 한국가스공사 간접고용근로자들이 비정규직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박순원기자 god02@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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