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이병철의 경북 바닷길 537km, 그 맛과 멋
⑩ 경주 황리단길과 서라벌 야경, 신라의 어제와 오늘을 걷다

동궁과 월지의 아름다운 야경.
동궁과 월지의 아름다운 야경.

새는 보이지 않는데 새 지저귀는 소리가 났다. 졸음에 겨운 눈을 부비고 하늘을 보니 투명한 햇살만 기왓장에 부딪치고 있었다. 짹짹거리는 저 소리는 새소리일까 햇살이 부서지는 소리일까. 경주의 아침은 경쾌한 노래로 왔다. 고택에서는 놋그릇 부딪치는 소리, 밥 짓는 냄새, 빗자루로 마당 쓰는 소리, 장독대 항아리가 튕겨내는 치자꽃과 댓잎의 향기마저 모두 음악이었다.

 

‘감성 사진’ 찍기 좋은 황리단길에는
젊은 남녀들의 발길로 생기 넘쳐나
한옥서 커피 마시며 이색 여유 즐긴다

천년의 낭만 녹슬지 않은 동궁과 월지
황홀한 빛의 누각 보면 감탄 절로 나와
천년 전 밤의 향기도 오늘과 같았을까

1 경주 황오동 팔우정 해장국거리 ‘포항해장국’의 소고기국밥.
1 경주 황오동 팔우정 해장국거리 ‘포항해장국’의 소고기국밥.

아침식사를 무엇으로 할지 길게 고민하지 않았다. 경주 황남동 ‘황리단길’에는 아침식사가 가능한 식당이 많지 않으나 조금만 걸어가면 24시간 문을 여는 황오동 팔우정 해장국거리가 있다. 30년 넘은 노포들이 서로 어깨를 맞대고 기대어 있는 골목, 한 티브이 프로그램에 소개되어 널리 알려지긴 했지만 젠트리피케이션의 파도를 막아내기엔 낡은 외벽과 간판이 많이 힘겨워 보인다. 조선시대에 시인 묵객들이 시를 지어 읊던 팔우정은 오래 전 무너지고 비석만 남았다. 그마저도 지금은 원래 있던 자리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1960년대에 비석을 가운데 두고 로터리가 들어서자 팔우정은 경주의 중심지가 되어 사람이 몰려들었다. 해장국거리도 그때 생겨났다.

닭뼈 육수에 김치와 콩나물, 묵채, 모자반을 넣어 끓인 경주식 해장국은 꽤나 생소한 것이다. 묵의 식감을 썩 좋아하지 않는 나는 원조격인 팔우정 해장국 대신 옆집 ‘포항 해장국’에 들어가 앉아 소고기국밥과 계란프라이 3개를 주문했다. 엄마가 끓여주던 소고기무국이 그리웠던 모양이다. 오래 지나지 않아 소박한 밑반찬과 소고기국밥이 상에 올랐다. 반숙으로 해달라고 말한다는 걸 깜박했더니 계란프라이는 노른자가 다 익어 나왔는데, 학창 시절 도시락 반찬 먹는 기분이 드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담백하고 고소한 소고기 국물이 무의 아삭한 단맛과 더해져 한 숟갈 뜰 때마다 속이 든든해지면서도 또 시원하게 풀렸다. 김치와 콩나물, 고춧가루가 얼큰함을 더해 떠먹을수록 이마에 땀이 맺혔다.

2 붉은 장미가 피어 있는 황리단길.
2 붉은 장미가 피어 있는 황리단길.

해장국 한 그릇을 비우고 가게를 나오자 그새 햇빛이 너르게 퍼져 있었다. 대릉원의 커다란 고분들 사이사이로 색감이 짙은 푸른 하늘이 빽빽하게 몸을 끼워 넣는 중이었다. 대릉원은 오전 아홉시부터 개방된다. 3만8천평의 평지에 스물 세 개의 능이 솟아 있는 이곳 고분군에는 천마총과 미추왕릉, 황남대총 등이 있다. 나는 한 손에는 아이스커피를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스마트폰을 든 채 옛 신라인들의 무덤 사이를 걸었다. 1973년 천마총에서 출토된 금관과 황금 장신구들은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옮겨졌지만, 초여름의 태양이 대릉원을 걷는 사람들의 머리마다 금관 하나씩을 씌워주었다. 무덤 앞에서 반짝이는 금빛 미소들, 죽음을 겁내지 않을 때 인간은 존엄을 획득한다. 무덤은 인간의 삶이 멈추는 비극적 장소가 아니라 영원이라는 유구한 시간에 편입되는 축제의 마당이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죽음이라는 바윗돌을 너무 무겁게 짊어진 탓에 피로도가 높다. 무의미한 연명치료에 들어가는 의료비와 인력은 물론이고 과도한 장례 비용과 절차, 묘역이나 납골당 등 시설에 소비되는 제반까지 다 죽음을 지나치게 두려워하고 또 무겁게 여기는 풍조 때문이다. 죽음의 공포와 엄숙함에서 조금 벗어날 필요가 있다. 자꾸 외면하고 격리시킬 것이 아니라 삶 안으로 불러들여 친해져야 한다. 몇 해 전 오스트리아 비엔나 도심 중앙묘지의 가로수길을 걸으며 느꼈던 청량감과 편안한 휴식의 기쁨을 대릉원에서 다시 만끽했다. 신라 때도 묘지와 납골당은 사회 혐오시설이었을까? 지금을 사는 우리도 나중엔 다 옛사람이 된다. 죽음의 슬픔과 두려움에 함몰되지 않을 때, 현재의 삶을 긍정적으로 영위하는 건강한 생명력도 생겨난다.

드넓은 대릉원을 걸었더니 소고기국밥이 벌써 다 소화가 됐다. 목이 마르고 입이 심심해져 황리단길의 핫플레이스로 꼽히는 카페 ‘스컹크웍스’를 찾았다. 달걀 토스트와 말차라떼가 유명한 집이다. 음료와 곁들여 먹는 디저트 음식이 맛있기로 입소문 났지만, 이 카페의 유난한 매력은 고풍스런 한옥 마루에 앉아 교자상을 두고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길 수 있다는 점, 그리고 SNS에 올릴 만한 ‘감성사진’을 찍기 좋다는 점이다. 황리단길의 대부분 가게들은 전통 한옥 형태의 공간에서 피자, 스테이크, 파스타, 수제 맥주, 아이스크림, 마카롱 등등 서구 먹거리를 판다. 전통차라든가 팥죽, 떡, 한과 같은 전통 먹거리를 파는 집들도 물론 있다. 혹자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우려하지만, 나는 우리 전통과 최신 유행의 아름다운 조화라고 생각한다. 황리단길이 조성되고 나서 경주 시내 어디서든 한복을 입고 사진 찍기에 여념 없는 젊은 남녀들을 볼 수 있게 됐다. 그들이 소위 ‘힙스터’ 유행만을 좇는 것은 아니다. 별 생각 없이 경주에 놀러왔다가도 여기저기 널린 신라의 찬란한 유산과 마주하는 순간, 황리단길을 거니는 즐거움만큼이나 우리 전통문화와 역사에 대한 관심 또한 깊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3 황리단길 핫플레이스 카페 ‘스컹크웍스’ 달걀토스트와 커피.
3 황리단길 핫플레이스 카페 ‘스컹크웍스’ 달걀토스트와 커피.

스컹크웍스 툇마루에 앉아 나무 바닥의 서늘함을 몸속으로 들이면서 달걀토스트와 얼음을 띄운 아메리카노를 맛있게 먹고 마시는 사이 오후가 됐다. 한옥에서 먹은 토스트와 커피는 뉴욕식 점심식사가 된 셈이다. 황리단길 이곳저곳을 걸었다. 장미 덤불을 늘어뜨린 붉은 담장의 커브를 지나, 추억의 옛 교복을 입고 자전거를 타는 어린 연인들의 풍경을 지나, 안전모를 쓰고 유적 발굴 작업 중인 인부들을 지나, 볕 좋은 구멍가게 앞에 앉아 꾸벅꾸벅 조는 노인들 몇을 지나는 동안 신라의 오늘을 보았다. 이제 신라의 어제를 향해 걸음을 옮길 시간, 국립경주박물관으로 가는 길에 나는 옛 화랑처럼 뺨이 붉고 눈이 맑은 소년이 되었다.

눈을 감으면 박물관은 보이지 않고 거대한 종 하나만 거기 우뚝 서 있는 것이었다. ‘에밀레, 에밀레….’ 내 귀에는 그렇게 들리지 않고, 마치 내 이름을 부르는 듯한 환청을 오래 경험했다. 경주를 떠올릴 때면 에밀레종으로 불리는 성덕대왕신종이 신비한 소리로 내 영혼을 휘감는다. 보존을 위해 이제는 타종하지 않지만, 종 앞에 서면 녹음된 종소리를 들을 수 있다. 국보 제29호인 이 거대한 동종은 국립경주박물관 입구 오른편에서 신라를 찾아온 오늘의 사람들을 가장 먼저 맞아준다. 바람과 새소리, 여름의 녹음, 땅의 지금과 하늘의 영원을 모두 품어 안으며 맑고 은은하게, 또 짙고 웅장하게 울려 퍼지는 종소리는 천이백년 전부터 땅과 하늘에 두루 닿는 것이었다. 성덕대왕신종의 소리가 뒤에서 등을 떠밀어, 한결 가벼워진 내 걸음은 천마총과 금령총, 다보탑과 석가탑, 가릉빈가와 원숭이를 차례로 거쳐 왕과 여왕의 시대, 마립간과 이사금의 옛날, 혁거세의 처음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권삼윤이 쓴 책 ‘나는 박물관에서 인류의 꿈을 보았다’를 인용하자면, 나는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신라 사람들의 꿈과 낭만을 보았다. 그 천년의 낭만은 지금까지 전혀 녹슬지 않은 채 생생한 빛을 뿜는다. 동궁과 월지의 야경이 특히 그러하다.

4 서부동 ‘반도불갈비식당’ 연탄불 한우구이.
4 서부동 ‘반도불갈비식당’ 연탄불 한우구이.

동궁과 월지의 야경을 보기 전엔, 그 황홀한 빛의 누각을 보며 ‘아! 신라의 밤이여!’ 저절로 탄성을 뱉기 전엔 경주에는 와도 신라에 온 것은 아니다. 천마총 내부처럼 사방이 캄캄해질 무렵, 경주는 마침내 서라벌의 금빛 주단으로 옷을 갈아입는다. 그 아름다움을 보기 위해 사람들은 벌써 매표소 앞에 긴 줄을 만들고 있었다. 상인들은 야광봉과 팔찌, 불빛이 번쩍거리는 부메랑, 솜사탕 따위를 팔고, 거기 눈이 팔린 어린아이들부터 젊은 연인들, 학생들, 노인들, 또 유럽과 아프리카, 중국, 일본, 아메리카 사람들까지 모두 얼굴이 환했다. 나도 어제의 슬픔과 내일의 불행을 잠시 잊고 바로 지금 행복하기로 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어둔 밤하늘 아래 금관처럼 빛나는 동궁과 그 화려한 불빛을 고요히 머금은 채 작은 파장에도 투명한 종소리를 수면 위로 띄워 보내는 월지를 보노라면 누구나 꿈속 신라에 닿게 된다. 현장 학습을 온 한 무리의 고등학생들이 조를 나눠 경주의 문화재에 대해 발표를 준비한 모양인데, 친구들에게 동궁과 월지에 대해 또박또박 설명하는 앳된 목소리를 들으며 뜬금없이 눈물이 나 혼났다. 어른들이 걸음을 멈추고 학생의 설명에 귀 기울이며 미소 짓고 있었다. 행복해 하는 사람들을 보면 뭉클하다. 나이 들수록 마음이 여려져 큰일이다.

“이것을 넣는 이와 꺼내 쓰는 사람 사이의 수백 수천 년은 이 침향 내음새 꼬옥 그대로 바짝 가까이 그리운 것일 뿐, 따분할 것도, 아득할 것도, 너절할 것도, 허전할 것도 없습니다”(서정주, ‘침향’)라고 시인은 노래했다. 내가 비누 같은 달빛 아래 동궁과 월지를 걸을 때, 신라의 어제와 오늘, 천년 전 달빛과 천년 후 미소가 만나던 밤의 향기야말로 침향이 아니었을까?

장사를 시작한 지 40년도 넘은 서부동 ‘반도불갈비식당’에서 연탄불에 구운 한우갈비를 먹었다.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한우 갈비살의 풍미 또한 침향 못지않은 것이었다. 저녁을 푸짐하게 먹고도 어딘지 헛헛한 신라의 밤, 혼자라서 그런 지도 모르겠다. 다시 황리단길 ‘경주피자’ 안뜰에 앉아 치즈피자와 함께 김유신페일에일, 선덕여왕에일, 첨성대다크에일까지 세 가지 종류의 맥주를 마시자 그제야 외로움이 가신다. 나는 어느새 신라 사람들과 마주앉아 지치지 않는 대화를 나누고 있었기 때문이다. 석탈해와 이사부, 선덕여왕과 미실, 비형랑과 도화녀, 불귀신이 된 지귀, 김대성과 원효, 관창과 사다함이 내 곁에 둘러앉아 나와 함께 맥주잔을 부딪쳐주었다. 천년 전에도 이런 밤은 있었고, 천년 후에는 내가 다정한 유령이 되어 어느 외로운 사람 곁에 아까시 향기로 가만 앉아줄 것이다.       /시인 이병철

    시인 이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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