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승 욱

기쁨과 슬픔은 붙었다 녹슨 쇠붙이의 몸에는

녹슬지 않은 하얀 얼룩 같은 것이 떨어질 듯, 붙었다

대문을 삐끔 열고 나온 늙은이가 하아얀 치아의

웃음을 문간 위에 걸어놓고 돌아간다 그 집에는 곧

느닷없는 기쁨의 손님들이 들어찬다 굽은 삭정이,

그 집의 감나무 가지 위에도 오늘은 하얀 웃음 달이 걸렸다

삭정이 감나무는 여름에 불 같은 푸른 잎을 달았다

몇 해 전 칠순을 넘겨 공중목욕탕에 들어간 그 노인은

까닭 없이 미끄러져 머리통의 피를 타일 바닥에다 쏟았다

지구는 돈다! 다 아는 진리가 그에게는 믿기지 않았으나

빙빙 도는 둥근 지구를 따라 회전 춤을 추기가 쉽지 않았을 때

그는 벌렁 타일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웬일로 노인을 걱정하던

노인의 할멈이 되레 그 가을, 간암으로 횡사했다 ‘할망구

무덤에 잔디가 곱게 자라서…’ 노인이 씁쓸한 얼굴로

말을 얼버무릴 때 그의 입속에서 이승과 저승은 아귀처럼 붙어 있었다

기쁨인 이승의 혀끝에 슬픔인 저승의 몸통이 따라붙었다

내 눈알과 시신경과 힘줄이 붙어서 수술한 자리 시신경이 땡기니,

온몸에 퍼진 피붙이 크고 작은 그의 이웃들이 따라 아프다

노인의 집을 버리고 어수룩한 샛골목을 더듬는데,

무심코 발길에 채인 빈 양은냄비 하나가

그동안 모았던 소리를 다 풀어놓고, 또 왕- 운다

울지 마라! 네 울음의 빈 껍질에도 언젠가

그것만큼의 족한 기쁨의 물이 넘쳤었다

시인은 동네 노인의 집을 방문해서 마주친 어느 노인을 그리고 있다. ‘녹슨 쇠붙이’로 표현된 노인에게서 ‘녹슬지 않은 하얀 얼룩’을 발견하는데 그것은 노인의 하얀 치아를 일컫고 있다. 시인은 생을 마감해 가는, 소멸되어 가는 존재에게서 눈부시게 아름다운 하나를 발견한 것이다. 살아있는 존재의 절실한 모습이 감각적으로 표현된 잔잔한 감동을 거느린 작품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