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

한국 안보가 사면초가(四面楚歌)다. 정치·경제·외교·국방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복합적 안보위기’가 일어나고 있다. 북한은 연일 미사일을 발사하면서 우리 정부의 신형전투기 구입과 한미훈련을 위협하고 있고, 중국과 러시아는 합동군사훈련을 빌미로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을 헤집고 다녔으며, 특히 러시아는 우리의 영토인 독도 영공까지 침범하였다.

이들의 위협행위가 한미동맹이 균열되고, 한일갈등으로 일본의 경제보복이 이루어지는 시점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타이밍이 절묘하다. 위협한 결과는 그들이 의도한대로 한국과 동맹관계에 있는 미국마저도 자신에게는 위협이 아니라고 뒷짐만지고 보고 있고, 일본은 독도에서 우리 공군의 대응을 자국 영토인 다케시마(竹島)에 대한 불법행위라며 비난하였다. 나아가 일본 각의(閣議)는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함으로써 역사갈등이 마침내 경제전쟁으로 비화되고 있다. 우리 편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모두가 자신의 정치적·국가적 이익을 챙기기에 바쁘다.

우리의 안보상황이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는가? 그것은 국제정치의 냉혹한 속성을 경시하면서 오직 북한에만 올인 하다시피 한 문재인 정부의 ‘이상주의적 안보관’이 자초한 결과이다. 따라서 정부는 현재의 외교안보전략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여 수정·보완하지 않으면 안 된다. 특히 다음과 같은 점에 확고한 인식이 전제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국제정치와 평화에 대한 현실주의적 인식’이다. 지난 6월 문재인 대통령은 스웨덴 의회 연설에서 “평화는 평화로운 방법으로만 실현될 수 있다”고 하였다. 반면에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5월 미사일 발사를 지도하면서 “강력한 힘에 의해서만 진정한 평화와 안전이 보장된다는 철리를 명심하라”고 하였다. 과연 누구의 안보관이 현실의 국제정치에서 평화를 지켜낼 수 있을까?

4세기 로마의 전략가 베게티우스(F. Vegetius)는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하라”고 하였고, 2차 세계대전 때 히틀러의 침공을 앞둔 영국의 처칠(W. Churchill) 수상은 “평화를 구걸한다고 평화가 보장되지는 않는다. 전쟁을 막기 위해서는 평화를 지켜낼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이들이 유비무환(有備無患)을 강조한 이유는 힘이 뒷받침되지 않은 평화는 쉽게 깨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 정부는 ‘힘과 국가이익을 최우선하는 현실주의적 안보전략’을 추진해야 한다. 그 핵심은 대내적으로 국민통합을 바탕으로 자체 방위력을 제고하고, 대외적으로는 한미동맹을 강화하는 한편, 한일갈등의 적절한 관리와 외교적 해결을 모색하는 것이다. 핵 없는 한국이 북한의 핵위협과 북·중·러 협력체제로부터 야기되는 중첩적 안보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한미동맹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또한 한일 경제전쟁의 확대와 장기화는 양국의 경제손실은 물론, 한·미·일 공조체제의 와해를 초래할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안보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물론 정부는 일본의 부당한 경제보복에 단호하게 대처해야 할 것이지만, 감정적 대결보다는 냉정하게 상황을 관리하고 확전(擴戰)을 자제하면서 갈등해결을 위한 외교적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정의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의 통합적 리더십’이 절실하다. 통합적 리더십이란 여당과 야당, 진보와 보수를 내편 네편 가르는 ‘분열의 정치’가 아니라 애국적 비판자의 고언(苦言)도 경청하고 겸허하게 수용하는 ‘통합의 정치’를 말한다. 지금은 대통령 참모들이 ‘한일갈등이 내년 총선에 미칠 이해득실을 계산’하거나 ‘죽창가를 부르면서 감정적인 선동정치’를 할 때가 아니라,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말고 널리 인재를 찾아서 위기 극복의 지혜를 구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