⑧ 낚시 천국 포항 양포에서의 하룻밤 캠핑

포항 남구 호미곶 ‘상생의 손’이 받쳐 드는 해돋이.

새벽부터 부산을 떨며 일어났다. 덩달아 일찍 깬 주인 할머니께 염치도 없이 식혜 한 사발 얻어 마시고 민박집을 나섰다. 아직 보랏빛 이불을 덮었지만, 고기잡이배들이 출항을 준비하며 수런거리는 통에 삼정리 항구는 잠을 뒤척이고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어구를 덮어놓은 천막이 펄럭거리고, 배고픈 고양이들이 이따금 울어댔다. 김춘수의 ‘처용단장’을 빌리자면 “바다가 새앙쥐 같은 눈을 뜨고 있었”다.

여행자와 어부가 부지런한 것은 모두 태양을 사랑해서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태양을 사랑해서 이 새벽엔 푹푹 하품이 나는구나. 나는 해돋이를 보기 위해, 어부는 깊은 바다에서 피어오를 물고기 떼를 만나기 위해 바다로 간다. 캄캄한 수면 위로 붉은 태양이 떠오를 때, 사람의 마음이 어둠에서 깨나듯 물고기들도 활발한 먹이활동을 시작한다.
 

초여름 포항 바다는 낚시꾼에겐 천국
찌낚시로 벵에돔·참돔 노려볼 만하고
루어낚시로는 농어·볼락 만날 수 있어

구룡포 좁은 골목 어귀 ‘신대천국밥’서
희고 뽀얀 돼지국밥으로 허기 채우고
바다 보이는 커피숍서 망중한 즐기고

‘퍽’하는 입질은 희귀한 무늬오징어 것
‘탈탈’ 떨리는 진동엔 볼락 잡혀 올라와
회·통찜 요리하니 천하일미 따로 없어

양포항 작은 방파제 공원에 텐트 펴고
장작불에 구운 소라로 캠핑의 맛 즐겨
파도의 자장가 들으며 그리움 떨친다

구룡포의 해돋이도 아름답지만 보다 가까이서 첫 태양을 보려거든 호미곶에 가야 한다. 겨울바다의 일출이 장엄해 사람을 뭉클하게 한다면 여름바다의 일출은 낭만적이어서 들뜨게 한다. 구룡포에서 호미곶까지는 차로 20분이 걸린다. 새벽 공기로 얼굴을 씻으며 삼정, 석병, 강사, 대보 해변을 지나 호미곶에 도착하니 아직 태양은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얼마나 뜨거운 불덩어리를 품에 안고 오는지 하늘 장막이 벌겋게 너울지는 중이었다. 여름의 해돋이는 겨울보다 짧고, 색조가 옅다. 하지만 마침내 솟아오른 태양이 호미곶 바다 ‘상생의 손’ 위에 얹어질 때, 어느 계절이든 상관없이 가장 아름다운 일출의 장관이 완성된다. 내가 사방을 떠돌며 경험한 세상에서, 호미곶의 해돋이는 서쪽 세계의 끝, 이베리아 반도 포르투갈 호카곶의 석양과 대응한다.

호미곶에 찾아온 태양이 빛을 엎질러버린 아침, 따사롭고 간질간질하며 연필심 냄새가 나는 햇살이 포항의 모든 지붕과 담장, 애기똥풀, 배롱나무, 몽돌, 과메기발, 빨랫줄에 내려앉았다. 쪽빛에서 금빛으로 바다가 표정을 바꾸는 사이 눈곱도 떼지 못한 나는 호미곶 해맞이공원 화장실에 가 찬물로 세수를 했다. 젖은 얼굴로 거울을 보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오늘은 뭘 하겠느냐고. 물어보나 마나 답은 정해져 있다. 낚시보다 더 즐거운 건 없다고, 낚시하러 당장 가자고.

숯불 위에 굽는 고등어와 뿔소라는 바닷가 캠핑의 낭만.
숯불 위에 굽는 고등어와 뿔소라는 바닷가 캠핑의 낭만.

초여름의 포항 바다에선 다양한 낚시를 즐길 수 있다. 찌낚시로는 벵에돔, 참돔, 자리돔 등을 노려볼 만하고, 루어낚시로는 농어, 볼락, 성대, 광어, 쥐노래미, 우럭, 무늬오징어 등을 만날 수 있다. 오늘의 대상어는 볼락이다. 겨울 낚시 어종이지만 초여름까지도 심심찮게 나오는 편이며, 겨울 못지않게 봄과 초여름에도 맛이 좋다. 나는 민물에서는 쏘가리, 바다에서는 볼락을 가장 좋아한다. 손맛, 입맛, 눈맛 등 낚시의 세 가지 맛을 모두 충족시켜주기 때문이다. 쏘가리의 황금빛 호피무늬만큼 볼락의 맑고 큰 눈과 왕관 같은 등지느러미는 근사한 것이다. 볼락 낚시는 휨새가 부드럽고 낭창낭창한 6~7피트짜리 낚싯대에 1000~2000번 소형릴을 사용한다. 낚싯줄도 0.4~1호 정도의 가느다란 합사라인을 쓰는데, 가볍고 섬세한 채비를 쓰는 만큼 손에 전달되는 손맛도 짜릿하다. 볼락은 인조미끼(루어)로 잡는다. 밤낚시에 조과가 좋지만 해 뜰 무렵과 해 질 무렵에만 집중해서 낚시해도 하루 먹을 만큼은 넉넉히 잡을 수 있다. 조과가 보장된 배낚시 대신 오늘은 방파제에서 낚시할 생각이다. 방파제 위에 텐트를 치고 캠핑을 즐겨야 하기 때문이다.

낚시하러 가기 전 구룡포에 먼저 들렀다. 아직 오전, 서두를 필요가 없다. 해 지기 전 두어 시간만 낚시를 하면 혼자 회 뜨고 구워 먹을 만큼은 잡을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해돋이를 본다고 일찍부터 일어난 탓에 허기가 졌다. 구룡포 수협과 우체국 사이, 과메기 문화거리 맞은 편 좁은 골목 어귀에 있는 ‘신대천국밥’으로 들어가 앉았다. 돼지국밥과 수육, 두루치기, 찌개류를 전문으로 하는 집인데, 숨은 ‘모리국수 맛집’으로 아는 사람만 안다. 빈속을 든든하게 채워 줄 돼지국밥 한 그릇을 시켰다. 희고 뽀얀 사골 육수에 돼지 머릿고기와 부추가 듬뿍 들어간 뚝배기에서 더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토렴하는 방식은 아니고 공깃밥을 따로 내 준다. 국물을 한 숟갈 떠먹으니 마치 황토방의 열기 같은 구수한 뜨거움이 몸속에 퍼지며 여기저기 땀이 맺힌다. 머릿고기 두어 점을 새우젓에 찍어 먹는 것으로 나름의 우아한 음미를 마치고, 깍두기 국물과 함께 밥을 말아 게걸스레 먹기 시작했다. 돼지국밥은 그렇게 먹어야 제 맛이다.

허영만은 만화 ‘식객’에서 돼지국밥을 두고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소 사골로 끓인 설렁탕이 잘 닦여진 길을 가는 모범생 같다면, 돼지국밥은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반항아 같은 맛”이라고. 한 숟갈 삼킬 때마다 국밥은 목구멍을 뜨겁게 미끄러져 내려가며 나로 하여금 ‘오늘을 살고 있다’는 자각을 하게 했다. 입천장이 데인 채 사골 육수가 펄펄 끓고 있는 솥단지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먹고 사는 일의 숭고함에 대해 저절로 성찰하게 된다. ‘살아 있구나, 먹고 있구나, 먹고 힘내서 또 살아보자.’

무늬오징어 회. 달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무늬오징어 회. 달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돼지국밥은 1950년대 부산에서 유래된 피난민 음식이다. 부산에서 시작돼 경상도 전역으로 널리 퍼져 누구나 즐기는 대중음식이 됐다. 맑은 국물의 부산식, 설렁탕처럼 뽀얀 국물의 밀양식으로 나뉘는데, 이곳 구룡포의 ‘신대천국밥’은 밀양식에 가깝다. 여기서 장사를 한 지는 5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아마 다른 곳에서 오랜 경력을 쌓은 듯하다. 국물에서 깊고도 진한 내공이 느껴졌다. 한쪽 벽에는 이 집 딸이 부모님의 칠순을 축하하며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편지를 쓴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돼지국밥은 마음까지 따듯하게 데우는 음식이다.

구룡포 시장에 들렀다. 한 마리도 못 잡고 꽝을 칠 경우를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낚시꾼이 가장 비참해지는 순간은 빈손으로 집에 돌아와 냄비에 라면 물을 올리는 때이다. 쫄쫄 굶는 캠핑은 캠핑이 아니라 유격훈련이므로, 뿔소라와 고등어, 돼지 앞다리살을 샀다. 구룡포 바다가 한 눈에 보이는 ‘셀렉토커피’ 2층 테라스에 앉아 아이스커피를 마시며 망중한을 즐기니 시간은 어느덧 오후 세시, 하정리 방파제로 향했다. 구룡포에 와 볼락 낚시를 할 때 가장 먼저 들러 볼락의 활성도와 바다 상황을 체크하는 곳이다. 2그람짜리 가벼운 지그헤드(봉돌에 바늘이 달린 루어낚시 채비)에 멸치 새끼 모양의 웜(고무 인조미끼)을 달고 방파제 테트라포드 가까이 던졌다. 입질은 간간히 들어오는데 덥석 물지는 않는다. 잔챙이들만 덤비고 쓸 만한 씨알의 볼락은 반응하지 않는 상황, 이럴 땐 포인트를 옮겨야 한다.

포항의 가장 남쪽인 장기면 양포항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여섯시, 방파제 곳곳에 검은 먹물 자국이 있는 걸 보니 최근에 무늬오징어가 꽤 잡힌 모양이다. 볼락 낚싯대를 내려놓고 무늬오징어 낚싯대를 꺼내 들었다. 무늬오징어 낚시는 8~9피트의 허리힘이 강한 낚싯대에 2000~3000번 릴, 합사 0.6~1.2호 낚싯줄을 쓴다. ‘에기’라고 불리는 새우 모양 인조미끼를 사용하기 때문에 무늬오징어 낚시를 ‘에깅 낚시’라고 칭한다. 방파제 내항이나 외항, 갯바위에서 연안을 공략하면 멸치, 새우, 꼴뚜기 등을 먹기 위해 연안의 암반 지대나 수초로 접근해 온 무늬오징어를 잡아낼 수 있다.

양포방파제는 ‘무늬오징어 에깅 낚시 대회’가 열릴 만큼 무늬오징어 낚시의 명소로 알려져 있다. 방파제에 자리를 잡고 서서 연안으로 채비를 던졌다. 채비가 바닥에 가라앉는 느낌이 들자 살짝 채비를 들어 올린 후 살아 있는 새우처럼 보이도록 낚싯대를 흔들어 액션을 줬다. 그렇게 반복한 지 30여분쯤 됐을까, 채비를 퍽 하고 때리는 강력한 입질이 들어왔다. 지긋이 낚싯대를 당겨보니 묵직한 힘이 느껴졌다. 무늬오징어가 틀림없다. 힘을 당차게 쓰던 녀석을 발 앞까지 끌어온 후 뜰채로 건져 올렸다. 1kg이 넘는 준수한 크기의 무늬오징어, 본래 이름은 흰오징어이지만 무늬가 수시로 바뀐다고 해서 무늬오징어로 통칭된다. 오징어류 중에서 가장 맛이 좋으며 오직 낚시로만 잡을 수 있어 희소성이 높다.

구룡포 ‘신대천국밥’ 돼지국밥.
구룡포 ‘신대천국밥’ 돼지국밥.

무늬오징어는 잡았으니 이제는 볼락이다. 테트라포드와 수초 사이사이에 은신하던 볼락이 루어를 공격하는 순간, 탈탈거리는 떨림이 마치 애인에게 걸려온 전화의 진동처럼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그 짜릿한 손맛에는 중독성이 있다. 오후 일곱 시부터 한 시간 반 동안 낚시에 먹을 만한 사이즈의 볼락 여러 마리를 잡았다.

먹을 만큼 잡았으므로 낚시는 접고 텐트를 펴기로 한다. 양포항에는 큰 방파제와 작은 방파제가 있는데, 작은 방파제 진입로에는 캠핑을 즐길 수 있는 공원이 있고, 방파제 끝에는 수상무대가 있다. 가끔 공연이 열리기도 하는 이 수상무대에서 포항 사람들은 낚시와 캠핑, 산책 등을 두루 즐긴다. 이날은 월요일이라선지 낚시하는 사람도, 텐트도 눈에 띄지 않았다. 호젓한 여유를 만끽하며 텐트를 치고 화로에 장작불을 붙였다. 장작이 타는 동안 무늬오징어와 볼락을 손질했다. 무늬오징어는 회와 통찜으로 요리하고, 볼락은 뼈회를 쳤다. 장작불에는 석쇠를 얹고 소라와 고등어를 구웠다. 여름밤의 총총한 별빛 아래 맛있는 냄새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밤바다 위에서 파도 소리와 향기에 귀와 코를 적시며 먹는 캠핑 음식은 맛이 없을 수가 없다. 심지어 그 음식이 무늬오징어 회와 통찜, 볼락 뼈회, 참소라구이라면 황제의 만찬도 부럽지 않다. 무늬오징어 회는 달고 쫄깃하며, 통찜은 바다의 맛 그 자체, 볼락 뼈회는 고소하기 그지없다. 낚시 천국 포항에서의 하루는 낚시꾼에게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을 안겨주었다. 파도 위에서 마시는 술은 숙취도 없고, 밤새 바람 불고 파도가 쳐도 꿈결만큼은 잔잔하겠지. 램프를 켜둔 텐트는 캄캄한 밤바다 위에서 마치 깡통 우주선처럼 보였다. 하룻밤 자는 사이 나는 몇 개의 별을 또 건너가게 될까? 잠은 안 오고 별빛만 오는 양포 방파제, 까닭 없는 그리움이 깊어지기 전에 파도의 자장가에 귀를 기울였다.    /시인 이병철

    시인 이병철

저작권자 © 경북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