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용 미

서원(書院)의 자미목(紫薇木)은 그믐처럼 붉었다

햇살이 하얗게

하얗게 달구고 있는

그믐의 한낮

자미목 붉은 꽃들 위로

상현에서 하현까지의 달이

까맣게 떠올랐다

혓바닥으로

이지러지고 차오르는 여러 개의 달을

핥아대는

자미목의 뜨거운 꽃들

붉은 꽃들의 자궁에서 피어나

달은

세상을 온통 뜨겁게 물들이고 있었다

‘서원의 자미목’과‘그믐의 한낮’이라는 표현에서 정적 속의 화려한 꽃 색깔이며 역동적인 삶 속에 잠재된 죽음의 그림자를 표현하고 있음을 본다. 삶 속에 있는 죽음 혹은 죽음 속에 깃든 삶이라는 모순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렇듯 붉은색과 흰색, 검은색을 대비하면서 생멸(生滅)의 긴장감을 환기시키는 시인 의식을 느낄 수 있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