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국화(國花)인 무궁화를 근화(槿花)라고도 부른다. 신라시대 효공왕 때 외국에 보내는 국서에 우리나라를 근화향(槿花鄕)으로 표현한 글이 나오는데, 이는 ‘무궁화가 많이 피는 땅’이라는 뜻이다. 그밖에도 우리의 옛 문헌에는 근원(槿原) 혹은 근역(槿域)으로 표현한 글이 나오나 이는 ‘무궁화 땅’이라는 의미다. 우리 민족 스스로가 무궁화 땅에 살고 있음을 알린 표현들이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지리서인 산해경(山海經)에도 한반도에는 무궁화가 많이 자라고 있는 곳이라 소개하고 있다. 무궁화가 우리나라의 국화가 된 배경에는 이 같은 오랜 역사적 연결고리가 있음을 미뤄 짐작해 볼 수 있다. 무궁화가 나라꽃이란 말은 법령 어느 곳에도 없다. 애국가나 태극기와 같이 나라의 상징인 표상물이면서 법령에 명기되지 않고 있는 것도 특이하다. 그냥 자연발생적으로 국민 다수가 국화로 여겨왔던 것으로 보는 것이 대체적 견해다. 이홍직의 국어대사전에도 “무궁화는 구한국시대부터 우리나라 국화가 되었다. 국가나 일개인이 정한 것이 아니고 국민 대다수에 의해 자연발생적으로 그렇게 된 것”이라 설명했다.

무궁화가 국화로 본격 인정된 시기는 일제 강점기다. 일제의 침탈에 저항하는 상징으로 국화가 자주 사용되면서다. 애국가의 후렴에 무궁화가 등장하고, 독립투사들이 무궁화를 우리나라와 일체화하는 글을 많이 남기면서 무궁화는 나라꽃으로 확실히 자리를 잡았던 것이다. 무궁화 꽃은 우리 겨레의 민족성을 나타내는 꽃이라 한다. 단결성과 협동심을 상징하기도 하고 인내와 끈기로도 표현한다. 꽃 말도 ‘일편단심’이다. 변하지 않는 민족의 마음과 통한다고 한다.

한 때 국가의 경제적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던 시절, 우리나라는 무궁화 꽃으로 애국심을 가르쳤다. “무궁화 무궁화 우리나라 꽃”이라는 노래도 부르고 학교와 직장 곳곳에는 무궁화 꽃을 심어 나라사랑 정신을 고취시켰다. 나라 꽃 하나로 애국심을 똘똘 뭉치게 할 수 있었던 그 시절이 그립다. 지금쯤 곳곳에 활짝 피어 있어야 할 무궁화 꽃이 구경하기조차 어려워졌다고 한다. 애국정신이 그만큼 희미해진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우정구(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