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15∼29세)을 의미하는 취준생이 2006년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많았다. 그 숫자가 무려 71만4천 명에 달했다.

놀라운 것은 그 중 30%인 21만9천 명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공시생이라 한다. 일반 기업체 입시 준비생(16만9천 명)보다 무려 5만 명이 더 많다는 통계다. 경기 침체로 인한 왜곡된 고용시장의 한 단면으로 보아기에는 문제의 심각성이 꽤 있어 보인다.

공무원을 하겠다는 젊은이를 나무랄 수 없다. 그러나 왜 공시생의 길을 집요하게 선택해야 했는지에 대해서는 국가의 장래를 걱정하는 지도자라면 그 까닭을 한번쯤 따져 보는 것이 옳다.

특히 젊은이가 세상을 향해 품어야 할 원대한 뜻이 고작 공무원 정도라면 우리 사회가 그들에게 미래의 길을 잘못 가르쳐 준 거나 다름없다. 시대정신이나 가치관에 대한 고뇌보다는 직장인으로서 자녀의 안정성만 내다본 부모들의 생각에도 분명 문제가 있다.

전통 유교문화권에서 가장 후진적 병폐라 하면 대개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관존민비(官尊民卑)와 남존여비(男尊女卑)의 사상이다. 관리를 높게 보고 백성을 낮게 보는 사회적 풍토와 남녀 불평등의 오랜 고정 관념이 이 것이다. 두 가지 사상은 사실상 조선시대를 지배해 왔으면서 한편으로는 조선의 멸망을 재촉한 낡은 시대적 유물이라는 비판을 떨칠 수가 없다. 지금 우리 시대의 공시생 양산현상이 혹시나 관존민비의 잔재적 사고에 기초한 것은 아닌지 괜스레 걱정이 된다. 물론 국민의 공복(公僕)으로서 국가를 위해 봉사의 길을 걷겠다는 생각을 가진 건전한 젊은이도 많이 있으리라 본다. 그러나 도전보다 안주를 선택하는 젊은이가 늘어난다면 국가의 장래를 봐선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태산처럼 많은 지금이다. “한국에서 공무원이 되는 것은 하버드 대학에 입학하는 것보다 어렵다”는 외국인의 비아냥을 따갑게 들어야 한다. 우리의 미래를 짊어질 젊은이의 도전 정신은 이 시대를 살릴 유일한 기백(氣魄)이다. 우리 사회의 패러다임을 바꾸는데 정부가 심각히 고민하고 앞장서야 할 것이다.

/우정구(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