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했던 일이 현실이 됐다. 일본의 무역보복 사태가 몰고 올 파장을 놓고 민심이 뒤숭숭한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에게 미더운 해결묘책이 있다는 증거는 점점 희박해지고 있다. 앞장서서 감정적 발언을 서슴지 않는 모습이 사태 해결에 꼭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다. 일본의 저열한 음모로 시작된 파란이지만, 스스로 파멸을 재촉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대통령과 청와대와 여권 지도부가 앞장서서 죽창 들고 나서면 협상은 누가 하고 수습은 누가 하나.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5당 대표가 18일 오후에 만나기로 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일본의 수출 규제와 한반도 평화 문제 등을 논의하기 위한 대화 제의에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화답한 결과다. 지난해 3월이 마지막 회동이었으니 이 나라 정치가 얼마나 ‘불통’의 고질병에 걸려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일본이 감행한 무역보복 문제를 해결해야 할 대통령과 청와대 인사, 여당 중진들이 잇달아 부적절한 선동 발언들을 쏟아내고 있어서 ‘불난 집에 부채질’이 따로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뜬금없는 이순신 장군의 ‘열두 척 배’ 이야기를 소환했고,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페이스북에다가 동학농민혁명 드라마의 배경음악으로 쓰인 ‘죽창가’를 들고 나왔다.

여당의 ‘일본 보복 대책특위’ 위원장은 “의병을 일으킬 만한 사안”이라고 했다. 21세기 대명천지에 외교 갈등을 ‘거북선’과 ‘죽창’과 ‘의병’으로 풀자고 나선 것은 지극히 비현실적이다. 국민이 군중심리에 휩쓸려 흥분하게 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앞장서서 이렇게 충동하는 것은 온당한 대처법이 아니다.

일본의 이번 조치를 놓고 수많은 분석이 등장한다. 아베 정권이 끈질기게 추진해온 개헌 드라이브의 일환이라는 해석에다가, 동북아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려는 헤게모니 음모론까지 다양하다. 학자나 평론가의 시각에서 다양한 분석과 평가를 펼치는 것은 나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절체절명의 비상시국에 국가의 리더들이 그런 담론이나 펼쳐내는 것은 한가롭기 짝이 없는 짓이다.

이번 상황이 충분히 예고되거나 경우의 수로 등장했던 하나의 현상이라면 대통령과 청와대와 여당 지도부는 준비된 대응책을 밝히고 차분하게 실행에 나서는 게 옳다. 그들마저 불난 집을 향해 오히려 부채를 들고 나서면 도대체 어쩌겠다는 심산인가.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는 “지금은 미국 정부는 한·일 관계를 중재하거나 개입할 의사가 없다”고 했다. 어떤 방책을 사용하든지 간에 이 매듭을 풀어내는 것이 나라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정치다. 정계 리더들이 이 상황에 대한 허물을 오로지 일본에 전가하면서 ‘죽창’ 들고 나서자고 외치는 것은 결코 현실적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