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 프린터를 이용하여 다리를 짓고 있는 모습.
3D 프린터를 이용하여 다리를 짓고 있는 모습.

△제4차 산업혁명과 3D 프린터

제3차 산업혁명은 아날로그 정보 중심의 사회를 디지털 중심으로 바꾸어 놓았다. 이를 통해 정보를 담을 수 있는 특정한 매체나 디바이스를 여러 개 가질 필요 없이 한 곳에 담을 수 있었다. 그것이 컴퓨터다. 이런 정보를 네트워크를 통해 빠르게 전달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보자면 제3차 산업혁명의 중심에는 디지털, 컴퓨터, 인터넷이 있다. 그리고 이런 시대를 이끄는 물질적 기반은 반도체다. 반도체는 정보의 저장용량을 증대시키고 정보 처리속도를 향상시킴으로써 디지털이 일상화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제4차 산업혁명은 제3차 산업혁명과 다른 어떤 변별점을 가지고 있는가? 클라우스 슈밥은 제4차 산업혁명의 특징으로 “유비쿼터스 모바일 인터넷, 더 저렴하면서 작고 강력해진 센서, 인공지능과 기계학습”(25면)을 들고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성장하고 있는 대표적인 기술로 “인공지능, 로봇공학, 사물인터넷, 자율주행자동차, 3D 프린팅, 나노기술, 생명공학, 재료공학, 에너지 저장기술, 퀀텀 컴퓨팅”(11면) 등을 거론하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기술들 중에서 3D 프린터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올해 2월 중국 상하이에 3D 프린터로 만든 것들 중 가장 긴 다리가 완공되었다. 그 다리는 중국 상하이에 있으며 길이는 무려 26m에 달한다. 3D 프린터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찍다’라는 의미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

△책을 찍다

우리나라 헌법 제21조 1항은 “모든 국민은 언론의 자유를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언론의 자유가 있으므로 자유롭게 생각이나 사상을 말할 수 있다. 이런 자유는 기술의 발전을 통해서 더욱 광범위하게 확장되었다. 컴퓨터가 발전하기 이전에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글을 읽히게 하려면 인쇄를 해야 했다. 책을 출간한다는 말보다는 ‘책을 찍는다’라는 말을 썼다. 그런데 이 ‘찍는다’는 말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인쇄를 하려면 나무나 쇠에 글자를 새겨야 한다. 다음에 그렇게 만들어진 글자에 잉크를 칠한 뒤 천이나 종이에 그 글자를 꾹 눌러 찍는다. 인쇄는 도장을 수없이 만들어 찍는 것과 같아서 ‘책을 찍는다’라고 했다.

컴퓨터가 발전하면서 프린터를 사용하게 되었다.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레이저 프린터는 정전기의 원리를 이용하고 있다. 금속 원통에 레이저를 비추면 정전기로 글자 모양이 생긴다. 이 자리에 토너라고 불리는 다른 극성의 정전기를 띤 가루잉크를 뿌린다. 정전기의 원리를 이용하여 종이에 글자가 달라붙게 만든 후 열로 고정시킨다. 기본적으로 글자를 찍어낸다는 점에서 인쇄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과거의 인쇄가 글자를 새기는 일에 대부분의 시간과 노동력을 할애했다면, 레이저 프린터는 드럼에 글자를 새기는 것이 아니라 레이저로 비추기 때문에 인쇄시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절감할 수 있었다. 이런 프린터가 없었다면 1인 출판사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런데 ‘찍는다’라는 말은 인쇄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지금도 ‘물건을 찍는다’라고 말한다. 이 말은 영어로는 mold goods인데, mold란 ‘본을 뜨다, 거푸집을 만들다’이며 goods는 ‘상품’을 뜻한다. 예를 들어 종을 찍어내려면 종 모양의 거푸집이 필요하다. 여기에 쇳물을 붓고 그것이 굳으면 거푸집을 떼어내는데 이 때 거푸집 모양이 찍혀 종이 완성된다. 인쇄에 사용되는 새겨진 글자는 거푸집에 해당한다.

레이저 프린터가 글자를 일일이 새기지 않으면서 비용과 시간과 노동력을 대폭 줄일 수 있었듯이, 신제품을 개발할 때 제조 과정에서 3D 프린터를 이용하여 거푸집을 만드는 일을 하지 않는다면 제조업에서 신제품 개발이 획기적으로 변화하게 될 것이다.

△물건을 찍다

3D 프린터는 입체적으로 그려진 설계도를 미분의 방법을 이용하여 아주 얇은 막레이어(layer)로 잘게 잘라 분석한다. 레이어가 얇으면 얇을수록 물건이 더 정교해지는데 이 겹을 가루와 액체, 녹인 쇳물 등을 사용하여 무수히 쌓아 올려 물건을 만든다. 3차원 설계도면을 미분하여 분석하고, 이를 적분하면 물건이 된다.

이러한 3D 프린터는 자동차를 비롯하여 제조업과 관련된 영역 전체로 확대되어 신제품 개발에서 모형을 만드는데 효율적으로 사용될 것이다. 오토데스크(Autodesk)가 설립한 로봇 회사 MX3D는 3D 프린터 기술과 로봇 기술을 접목해 2017년까지 암스테르담에 3D 프린터로 다리를 건설하기로 했다. 운하의 한쪽에서부터 철을 녹여 3D 프린팅할 수 있는 6축 로봇을 이용해 다리를 허공에서 바로 ‘출력’해 낸다. 이 다리의 길이는 7m 정도다. 3D 프린터를 이용하면 다양한 형태의 디자인이 가미된 다리를 만들 수 있으며, 인건비는 물론 제작기간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게 된다.

3D프린터는 정교함을 필요로 하는 의료분야에서 폭넓게 응용되고 있다. 사람의 치아를 교정하거나 임플란트를 하려면 본을 떠야 한다. 예전에는 석고를 사용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인체에 무해한 알지 네이트, 폴리비닐실록산, 폴리설파이드와 같은 것을 사용한다. 이것은 액체에 가까운 물렁물렁한 고체인 졸(sol)로 되어 있다. 이것을 입에 넣고 꽉 물면 시간이 지나면서 고체로 변하게 된다. 이러한 본을 바탕으로 보정치아를 만든다. 그런데 인체는 매우 미세해서 조금만 맞지 않아도 불편함을 느낀다. 3D 프린터를 사용하면 훨씬 정확하고 정교한 보정치아를 만들어 심을 수 있다. 또한 개인의 신체 규격에 딱 맞는 보청기도 만들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더 세밀하고 정교한 것, 이를 테면 손상된 연골이나 뼈, 심지어 손상된 장기까지 개인 맞춤형으로 정확하게 만들 수 있다.

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
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

3D 프린터를 이용하면 어떤 형태로든 디자이너의 콘셉트대로 옷을 만들 수도 있다. 이런 장점 덕분에 그동안의 기술로 불가능했던 디자인의 옷을 구현할 수 있다. 호랑이가 온몸을 감싸고 있는 듯한 옷이라든지, 천사의 날개 같은 디자인 말이다. 이 정도라면 앞에서 언급한 스프레이온 패브릭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3D 프린터의 또 다른 장점은 착용감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옷을 만들기 전에 몸의 치수를 재는 이유는 옷과 몸이 잘 맞아 맵시 있으면서 편안한 옷을 만들기 위해서다. 그래서라면 인체를 3D로 스캔하면 훨씬 정교하고 몸에 딱 맞는 맞춤형 옷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3D 프린터를 활용하면 창의적이고, 개성 넘치는 디자인을 적용한 자신만의 액세서리도 만들 수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단 하나밖에 없는, 고유한 명품 액세서리를 만들어 볼 수도 있다. 자기만의 취향이 강조된 디자인의 옷도 마음대로, 개성껏 만들어 입을 수 있다. 자동차의 새로운 모델을 개발하는데 필요한 시제품 제작에 응용함으로써 시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고, 건설 분야에서도 독특한 디자인의 건물을 짓는데 3D 프린터로 찍어내 건설 비용과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다.

이렇게 보면 3D 프린터는 청년들의 글로벌 감각, 도전적 모험의 식과 끼를 꽃피우는 도구가 되어 1인 창업도 활발해질 것이다. 이것은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짧게는 수년 길게는 10년 안에 이루어질 것이다. 그런 점에서 기술이 나가는 방향을 안다는 것은 변화할 미래를 예측하고 이를 준비하는 일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