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에 열려있는 식재료 ‘상추’

넓은 의미에서 과메기도 쌈, 그중에서도 상추쌈이다. 마늘, 고추, 들깻잎 등을 얹어도 된다.

상추쌈을 좋아한다. 돼지 불고기 얹은 상추쌈, 마늘, 된장과 더불어 먹는 고등어구이 상추쌈, 맨밥에 강된장만 얹은 상추쌈도 좋다. 세상의 모든 상추쌈을 좋아한다.

상추쌈은 슬프다. 아린다. 쓰라리다. ‘경북매일’ 2015년 6월 8일 기사다. 제목은 ‘6월의 울림, 명예로운 보훈을 기대하며(필자 이칠구 전 포항시의회 의장)’다.

“어머니, 어서 전쟁이 끝나고 어머니 품에 안기고 싶습니다. 어머니, 어쩌면 제가 오늘 죽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꼭 살아서 다시 어머니 곁으로 가겠습니다. 상추쌈이 먹고 싶습니다. 아, 놈들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다시 쓰겠습니다.”

고 이우근 학도병. 서울 동성중학교 3학년 재학 중. 편지를 다시 쓰지 못했다. 1950년 8월 11일 포항여중 전투에서 전사. 전사한 학도병의 상의 윗주머니에 남아 있었던, 부치지 못한 편지. 책으로 소개되었고, 영화 ‘포화 속으로’의 소재가 되었다.

궁금했다. 별 것 아닌 상추쌈. 전쟁터 학도병의 마지막 편지에서 콕 집어 이야기했다. 왜 수많은 음식을 두고 하필이면 상추쌈일까? 의문을 풀 수 없었다.

“그까짓 상추쌈”이라고 가볍게 내칠 것은 아니다. 상추는 ‘싸서’ 먹는다. ‘넣어서’ 먹지 않는다.

‘싸서’는 열린 문화다. 넓게 펼친 상추 위에 무엇이든 얹는다. 돼지고기, 고등어, 마늘, 쪽파, 된장, 강된장, 고추장, 된장찌개…. 쇠고기를 얹어도 되고, 닭볶음을 얹어도 된다. 모양도 양도 정해지지 않았다. ‘열려 있는 상추’에 아무것을 얹더라도 탓하는 이는 없다. 상추쌈은 한식을 제대로 보여준다.

석학 이어령 선생의 ‘보자기 인문학’을 소개하는 서평의 한 부분이다. 긴 내용을 인용한다. 제목은 ‘보자기로 쌀 것인가, 가방에 넣을 것인가!’이다.

“(전략) 일상의 소재들 가운데 ‘보자기’를 통해 동·서양의 문화의 차이점을 읽어냈다. (중략) 전통문화 속의 보자기를 무엇이든 감쌀 수 있는 융통성 있고 포용적인 새로운 아이콘으로 등장시킨 것이다./저자는 어린 시절 책보로 사용하던 보자기와 네모난 책가방을, 또 한복과 양복을 비교한다. 전자는 물체(사람)를 ‘싸는’ 반면, 후자는 미리 모양이 잡혀 있어 물체(사람)를 ‘넣는’ 특성을 갖고 있다. (중략) 한국인은 ‘싸는’ 민족으로 ‘보자기형’ 문화를 갖고 있는 것인데, 저자는 이런 특성이 현대의 양극적 사고 체계와 사회 시스템을 극복할 문화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중략) 아이를 요람과 같은 상자가 아니라 포대기로 감싸 업어주는 한국의 보자기 형 문화를 통해 싸고 통합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도시 역시 획이 나뉜 계획도시가 아닌, 모든 것을 감싸는 도시가 미래 모습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모든 정형성을 넘어서 융통성을 주어 수시로 변화하는 상황에 적응할 때 비로소 미래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후략)”

상추쌈은 보자기 문화다. 베트남, 중국 등의 춘권(춘취안, 春卷)이 우리 상추쌈과 비슷하지 않으냐고 묻는 이도 있다. 그렇지는 않다. 춘권은, 얇은 피에 여러 채소를 넣고 싸서 먹는다. 땅콩가루 등이 들어간 소스도 정형화되어 있다. 내용물을 선택할 수 있는 상추쌈의 유연성을 흉내내지 못한다.

한국인의 상추쌈은 삼겹살 구이에서도 빛을 발한다. 상추를 홑겹으로 먹는 이도 있고, 반드시 두 장을 겹치는 이도 있다. 들깻잎, 쪽파, 마늘, 쑥갓 등은 필수 식재료지만 선택사항이다. 3명이 앉으면 3종류의 상추쌈이, 4명이 모이면 4종류의 상추쌈이 있다. 정형화된 춘권은 상추쌈의 다양함을 따르지 못한다.

남자든 여자든 상추쌈을 만나면 자연스레 입을 가능한 한 크게, 한껏 벌린다. 우리는 어머니 뱃속에서 상추쌈 먹는 법을 따로 배웠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우리 시대에만 그렇게 먹는다고? 그렇지도 않다.

옥담 이응희(1579∼1651년)는 왕족 출신으로 경기도 안산 수리산 기슭에서 서민으로 살았다. 옥담은, 서민들의 삶에 대한 시도 많이 남겼다. ‘옥담사집_만물편_어물류’ 중 밴댕이[蘇魚, 소어]에 대한 내용 중 상추쌈, 보리밥이 등장한다.

“(전략) 밴댕이가 어시장에 가득 나와/은빛 모습이 촌락에 깔렸네/상추쌈으로 먹으면 맛이 으뜸이고/보리밥에 먹어도 맛이 좋아라 (후략)”

밴댕이, 상추쌈, 보리밥의 세 박자가 잘 맞는다. 오늘날 상추쌈에 고등어구이 얹는 걸 이상하게 여길 일이 아니다. 옥담이 살았던 17세기 초반에 이미 보리밥, 밴댕이를 얹는 상추쌈이 흔했다.

갈암 이현일(1627∼1704년)은 조선 후기 거유(巨儒)다. 퇴계 학통을 이었다. 외조부는 경당 장흥효, 아버지는 석계 이시명이다. ‘음식디미방’을 쓴 장계향이 어머니다. 상추에 대해서 시를 남겼다. 제목부터 ‘상추쌈 먹는 걸 희롱하는 글’이다. 근엄한 유학자가 한낱 상추쌈을 소재로 시를 남겼다.

“(전략) 푸른 광주리를 통째로 삼켜 뱃속에 넣고 싶지만, 목구멍은 밴댕이 구운 걸 좋아한다네. 더불어 먹을 좋은 장이 없음은 한스럽지만(후략)”

다산 정약용(1762∼1836년)은 평생 세 번의 유배 생활을 겪는다. 첫 번째가 짧았던 서산 해미의 유배, 세 번째가 전남 강진으로 떠났던 17년간의 유배다. 두 번째는, 1801년 신유사옥으로 시작된 포항 구룡포(영일현 장기)의 220일간 유배다. 이때 다산은 여러 편의 시를 남겼고, 그중 하나가 ‘다산시문집 제4권_시(詩)_장기농가(長鬐農歌) 10장(章)’이다.

“(전략) 일찍 자는 첨지를 발로 차 일으키며/풍로에 불 지피고 물레도 고치라네/상추[萵葉]쌈에 보리밥을 둘둘 싸서 삼키고는/고추장[椒醬]에 파 뿌리를 곁들여서 먹는다/금년에는 넙치[比目]마저 구하기가 어려운데/잡는 족족 말려서 관가에다 바친다네 (후략)”

‘첨지’는 벼슬을 하든 않든, 남편을 부르는 ‘애칭’이라고 적었다. 당시에도 상추쌈과 보리밥, 고추장, 파 뿌리 등을 더불어 먹었다.

‘넙치[比目, 비목)’는 광어인지 가자미인지 불분명하다. 눈이 한쪽에 붙어 있는 생선들은 모두 ‘비목’이라고 했다. 광어, 가자미를, 옥담 이응희처럼, ‘밴댕이+상추쌈’의 형태로 먹었는지도 불분명하다.

조선 말기 양명학자 경재 이건승(1858∼1924)도 상추쌈을 이야기한다.

“상춧잎은 손바닥 같고, 된 고추장은 엿과 비슷하네. 여기에 현미밥 쌈을 싸 급하게 열 몇 쌈을 삼키니, 이미 그릇이 다 비었네. 이것은 입을 속이는 법. 부른 배를 만지고 누웠으니, 맑은 바람이 불어온다”라고 했다.

‘입을 속인다’는 표현은 ‘고기를 먹고 싶으나 채소로 입을 속여 맛있다고 여긴다’라는 뜻이다. 점잖은 유학자가 현미밥 상추쌈을 ‘열 몇 쌈’이나 허겁지겁 먹는 모습이 정겹다.

옥담과 갈암, 다산, 경재 사이에는 약 300년쯤의 시차가 있다. 긴 세월 동안 상추쌈은 늘 우리 곁에 있었다. 상추쌈이 우리 고유의 것은 아니다. 상추도 우리 고유의 품종은 아니다. 외래종이다.

조선 말기, 운양 김윤식(1835∼1922)은 ‘운양집’에서 “중국에서는 4월에 상추로 밥을 싸 먹는 것을 타채포(打菜包)라고 한다. 우리나라 풍속에도 상추쌈을 싸 먹는 일이 있다”고 했다.

우리 고유의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현재 중국인들은 우리처럼 다양하게 상추쌈을 먹지 않는다. 먹는 이가 재료를 선택하고, 모든 재료를 섞어서 싸 먹는 상추쌈은 이제 우리만의 음식, 한식이 되었다.

상추는 지중해, 북아프리카, 중동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 다수설이다. 한반도에 전해진 상추는 고구려 시대 빛을 발한다.

싱싱한 회와 마늘을 올린 상추쌈.
싱싱한 회와 마늘을 올린 상추쌈.

한치윤(1765∼1814)의 ‘해동역사’에 상추의 역사가 등장한다.

“고려국의 사신이 오면 수(隋)나라 사람들이 채소의 종자를 구하면서 대가를 몹시 후하게 주었다. 그래서 이름을 천금채(千金菜)라고 하였는데, 지금의 상추다. 살펴보건대, 와거(萵苣)는 지금 속명이 ‘부로’이다.”

한치윤은 청나라 문신 고사기(高士奇, 1645∼1704년)가 쓴 ‘천록지여(天祿識餘)’를 인용하여 상추를 설명한다. 수나라와 거래를 한 나라는 고려가 아니라 고구려다. ‘와거’는 상추의 옛 이름이다. 민간에서는 ‘부로’ 혹은 ‘부루’라 불렀다. ‘부루’라는 이름은 지금도 사용한다.

송나라 팽승(彭乘, 985∼1049년)은 ‘묵객휘서(墨客揮犀)’에서 “와채(萵菜)는 와국(萵國)에서 왔으므로 그렇게 이름한 것”이라고 했다. ‘상추 와(萵)’는 ‘높을 고(高)’와 비슷하다. ‘와국’은 없다. 북송 때 사람인 도곡(?∼970)이 쓴 ‘청이록(淸異錄)’에는 상추를 두고, “고국(高國)으로부터 왔다”고 분명히 적었다. ‘와국’은 ‘고국’이고 바로 고구려다.

‘이우근 학도병의 상추쌈’은 우연이 아니다. 상추, 상추쌈은 늘 우리 곁에 있었다. 상추, 상추쌈의 뿌리는 깊고 넓다. /맛칼럼니스트 황광해

    맛칼럼니스트 황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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