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선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

“재산을 잘 쓸 줄 알아야 진정한 부자다. 부자가 되는 것은 단지 돈을 버는 것만이 아니라 돈을 어떻게 쓰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안다는 의미였다.”

시어도어 젤딘은 ‘우리 삶을 가치 있고 위대하게 만드는 28가지 질문’이라는 부제가 달린 ‘인생의 발견’에서 “돈이 인간을 선한 삶으로 이끌어주지 않으면 무가치하다”는 크세노폰의 말을 인용한다. 돈이 모든 가치를 압도하고 있는 현 시대에 어떻게 돈을 의미 있게 쓰는지를 보여준 두 분이 있다. 세계 1위 참치기업을 만든 김재철 동원그룹 전회장과 파주출판도시를 만든 이기웅 열화당 대표가 그들이다.

전남 강진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첫 원양어선을 이끈 김재철 전회장은 독서가 생활화된 분으로 유명하다. 1961년 1월 25일 그의 일기는 이렇게 쓰여졌다. “선원들은 갑판 위에 차양막을 쳐놓고 바둑, 장기에 열중이다. 나는 출항 이래 독서에 취미를 붙여 일본에서 구입한 책들을 읽는데 시간을 보냈다.” 늘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습관으로 그는 “사업을 체계화하거나 체계적으로 사고하고 좀 더 멀리 내다볼 수 있었다”고 말한다. 창업 10주년이 되던 1979년 ‘동원육영재단’을 설립하여 인재육성을 실천해 온 그는 ‘라이프 아카데미’ 프로그램을 만들어 대학생들의 전인교육을 위해 아낌없는 지원을 하고 있다.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난 이기웅 열화당 대표는 할아버지께서 지은 선교장 사랑채 ‘열화당’의 이름을 따서 1971년 출판사를 설립했다. 책은 ‘영혼의 지도’라고 생각하며 출판인으로서의 소명을 묵묵히 실천해 왔다. 미술, 사진, 전통문화 등 문화예술 관련 출판을 하며 대중의 입맛에 맞는 시장성에 코드를 맞추기보다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책다운 책’을 만드는 일에 주력하였다. 출판사옆에 책박물관을 만들고 세계 곳곳에서 수집한 고서와 양서를 공유하는 열린 공간을 만들어, “열화당은 전인적 인간상에 주목하는 인문주의적 예술출판”의 외길을 걸어왔다는 평판을 얻고 있다. 또한 ‘선량한 책, 값어치 있는 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출판인들의 환경 개선이 필요는 생각을 갖고 파주출판도시 계획을 추진하였다. ‘세계 유일의 책문화도시’를 표방할 만큼 매년 파주북페스티벌이 열리고, 독특하고 멋진 출판사 건물들 사이로 자연 풍경을 느끼며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풍성해지는 아름다운 공간이 되었다.

“우리 시대의 위대한 모험은 지상에 사는 사람을 발견하는 일이다.” 시어도어 젤딘은 ‘인생의 발견’에서 어떤 개인을 ‘평균적인 인간’과 구별해주는 것은 고유한 경험과 미세한 태도의 차이라고 말한다. 한 사람의 삶의 본질이자 그 자신으로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여기에 있다. 김재철, 이기웅 두 분은 책이라는 공통분모로 만난다. 스스로 책을 찾아 읽으며 성장했고 남들이 가지 않은 길에서 자신의 세계를 만들고 공동체에 선한 영향력을 미쳤다. 파주출판단지로 떠났던 ‘숙명라이프아카데미’ 여름캠프 덕분에 두 분을 통해 가치 있는 삶이란 어떤 것인지 새삼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

지난 주는 ‘서울국제도서전 2019’이 열렸다. 매년 대한출판문화협회 주최로 개최되고 있는 큰 행사로 어느새 25회가 되었다. ‘다가올 책의 미래, 그리고 우리가 마주하게 될 책 너머의 세계’를 주제로 올해는 41개국, 431개 출판사가 참여하였다. 대규모 도서축제가 된 이유가 국내외 출판사들이 만든 다양한 책을 접할 수 있는 자리인 점도 있겠지만 책에서만 느낄 수 있는 향기와 책을 읽고 쓰고 만드는 사람들이 주는 감동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 사람이 책을 만들지만 결국 우리는 책을 읽으며 제대로 된 사람이 된다. 다가오는 여름, 책과 함께 당신이 한 일이 무엇인지 기억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