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욱시인
김현욱 시인

“조선인들에게 아리랑은 쌀과 같은 존재로 언제 어딜 가도 들을 수 있습니다. 조선인들은 즉흥곡의 명수입니다. 완성된 곡이나 음계 없이도 노래를 아주 잘 합니다.”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푸른 눈의 미국인 선교사, 호머 헐버트(1863∼1949)의 말이다. 헐버트는 1896년 2월, 영문 월간지 ‘한국소식’에 문경아리랑을 서양음계로 처음 채보해 공개했다.

아리랑은 출처도 기원도 어원도 불분명하지만, 남과 북을 통틀어 모두 60여 종 3천600수가 전한다. 그중에 정선아리랑과 밀양아리랑, 진도아리랑을 3대 아리랑으로 친다. 정선아리랑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주오.”, 밀양아리랑은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소.”, 진도아리랑은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 응 응 아라리가 났네.” 후렴구가 반복된다.

정선아리랑은 강원도 대표 민요로 ‘아라리’라고도 불리며, 메나리조 가락의 애잔한 후렴구가 특징이다. 밀양아리랑은 경상남도 지방에서 전승되며 빠르고 경쾌한 세마치 장단이 특징이다. 진도아리랑은 전라남도 일원에서 불리며 육자배기 토리로 기교성이 뛰어나다. 이처럼 아리랑은 각 지역마다 장단과 구성음이 다르지만, 후렴구는 기억하기 쉽다. 아리랑은 두 줄 시에 두 줄 후렴만 붙이면 어떤 가사든 아리랑이 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아리랑과 관련된 해프닝 하나. 대학 시절 국악 수업 중에 장구 치면서 정선아리랑을 부르는 실기평가가 있었다. 학점 F를 서슴없이 날리는 괴짜 국악 교수라 다들 긴장했는데 나 역시도 마른 침을 삼키며 장구채를 집어 들고 정선아리랑을 부르려 했다. 그런데 내 입에서 흘러나온 것은 어이없게도 밀양아리랑이었다. 교수가 황당한 표정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던 게 아직도 기억난다.

‘매천야록’에 따르면 고종 때 궁궐에서 아리랑을 불렀다는 기록이 나온다. 각 지역의 아리랑은 경복궁 중수 작업 동안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전국 각지에서 부역하러 온 민초들이 가족과 고향을 그리워하며 아리랑을 불렀던 것이다. 일제 강점기 조선의 영화감독이자 배우였던 나운규(1902∼1937)는 영화 ‘아리랑’을 제작했다. 1926년 단성사에서 첫 상영을 했는데, ‘아리랑’은 일제강점기 항일정신과 민족의 애환을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아리랑’의 주제가로 쓰였던 아리랑은 본조아리랑이었다. 강원도 지역의 ‘자진아라리’의 곡조를 경기도식 ‘경토리’로 바꿔 표현한 것이다. 서양 음악을 공부했던 김영환이 서양식 오음계로 아리랑의 곡조를 편곡했다. 오늘날 가장 대중적으로 불리는 아리랑이다. 아리랑의 ‘아리’는 과연 무슨 뜻일까? 성기완 시인이 한겨레 신문(2016년 5월 21일)에 발표한 아리랑의 ‘아리’ 해석 시도가 이채롭다. 성기완 시인은 러시아 바이칼 호수의 알혼 섬, 몽골 초원, 백두대간 등지에 발견된 여러 문헌에서 ‘아리’의 기원을 찾았다. 광개토대왕릉비에 한강은 ‘아리수(阿利水)’라고 적혀 있다. ‘아리’는 ‘크다’는 뜻의 옛 우리말이라고 한다. 몽골어로 ‘아리’는 ‘깨끗하고 성스러운’이라는 뜻이란다. 성기완 시인은 ‘아리땁다’, ‘아리다’, ‘아름다움’도 ‘아리’의 파생적 쓰임이라고 봤다. 아리랑의 ‘아리’는 ‘깨끗하고, 성스럽고, 존재하고, 아름답고, 아프고(스리고), 알고, 깨닫고, 느낀다’라는 뜻을 지닌 실로 어마어마한 말이다. 오늘날 아리랑은 응원가부터 합창, 관현악 등으로 다양하게 연주되고 있다. 아리랑은 ‘아리’가 가진 넓고 깊은 뜻처럼 변화무쌍한 변주와 편곡이 가능한 열린 노래이다.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현재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 수는 약 250만 명, 2028년에는 50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추산한다. 단일이 아닌 다문화 대한민국에서 ‘아리랑’은 또 어떤 모습으로 우리를 아우르고 달래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