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 대한 청와대의 잇따른 어깃장이 장난이 아니다. 강기정 정무수석비서관이 자유한국당과 더불어민주당 해산 청구 청원에 대해 11일 “4월 총선까지 기다리기 답답하다는 것”이라고 답해 야당을 한껏 자극했다. 이어서 12일엔 강 수석 바로 아래에 있는 복기왕 정무비서관이 국회의원 국민소환제 도입 청원 답변에서 정치권을 공개 압박했다. 정부·여당의 작금 행태는 ‘협치’라는 개념을 아예 망각한 듯한 양상이다. 집권세력이 꿈꾸는 정치가 ‘파멸’과 ‘혼돈’이 아니라면 도무지 이럴 수는 없는 노릇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복 비서관은 국민청원 답변 형식으로 “국회가 일을 하지 않아도, 어떤 중대한 상황이 벌어져도 국민은 국회의원을 견제할 방법이 없다”며 “대통령도, 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도 소환할 수 있는데 유독 국회의원에 대해서만 소환할 제도적 장치가 없다는 것은 누가 봐도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국회 공전 상황을 지적하며 ‘일하지 않는 국회’는 파면 대상이라고 청원에 동조한 셈이다.

전날 강기정 정무수석이 청원 답변에 나서 한국당 등 정당 해산 청구 청원에 대해 “국민의 준엄한 평가가 내려졌다”고 비판한 데 이은 복 비서관의 공격은 청와대의 정무 기능이 완전히 마비됐음을 보여주는 씁쓸한 장면이다. 오죽하면 현 정권에 우호적인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까지 “국회정상화를 위해 여야간 다리 노릇을 해야 할 정무수석이 타는 불에 휘발유를 뿌렸다”고 혀를 찼을까.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13일 “정치 전면에 대통령부터 시작해서 청와대가 전면에 서서 국회를 농락하고 야당을 조롱하는 하지하책(下之下策·낮은 것 중에 낮은 계책)을 쓰면서 실질적인 물밑 대화나 우리를 설득하려는 노력은 전혀 하고 있지 않다”고 개탄했다.

의견이 맞지 않는 세력들이 서로 양보와 타협을 통해서 새로운 미래를 구축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 가치는 대단히 높다. 굳이 양보와 타협을 하지 않고 갈등을 증폭시키는 행위는 워낙 자신만만하여 전쟁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판단할 때 감행하는 일탈이다. 정부와 여당의 행태를 보면 지금 이렇게 전쟁 모드로 가는 것이 국민의 지지를 확보하는 데 유리하다고 계산하고 있음이 확실하다. 그게 아니라면, 일부 비평가들의 견해처럼 경제실책이 워낙 심각하다보니 국민관심을 돌리기 위해 장난을 치고 있을 개연성도 없지 않다.

문제는 혼란 속에 천덕꾸러기가 된 민생은 엉망이 돼가고 있다는 현실이다. ‘대통령과 여당은 국정운영에 무한책임을 지고 있다’는 말이 어느새 골동품 신세가 됐던가. 반대자들도 끌어안으며 ‘협치’하겠다던 그 화려한 다짐들 모두 어디 갔나. 지도자들의 언행이 참으로 무책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