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곤영 대구취재본부장
이곤영
대구취재본부장

‘조정에 청백리의 자손을 등용하라는 명은 있으나, 오직 뇌물을 쓰는 자들이 벼슬을 하고 청백리 자손들은 모두 초야에서 굶주려 죽고 만다.’

조선시대 이익이 ‘성호사설’에 쓴 글이다. 조선시대에 청렴하고 강직한 신하 의정부 및 사헌부, 사간원 등의 추천을 받아 임금의 결재를 받아 내리는 ‘청백리’는 후손들에게 벼슬을 할 수 있는 특전을 줄 만큼 명예롭고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조선 왕조 500년 동안 청백리로 인정받은 사람은 단 218명에 불과했다고 하니 부패가 만연했을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부패의 근원은 지방 관청에서 행정 실무를 담당하던 하급관리 ‘아전’을 뒀기 때문이라고 한다. 세금 징수나 잡무, 수령의 둔전을 관리하는 업무 등 대를 이어 지방 행정 실무를 맡았던 지방 아전은 국가에서 월급을 지급하지 않았다. 이렇다보니 아전들은 부정부패와 비리를 통해 모자란 급여를 대신했다. 아전의 비리가 제일 심한 것이 ‘세금 착복’이었다. 이들은 성인이 안된 어린애에게 군역을 물리는 ‘황구첨정’, 죽은 사람에게 군포를 물리는 ‘백골징포’, 군역을 피해 도망간 사람의 이웃이나 친척과 이웃에게 군포를 물리는 ‘족징’과 ‘인징’을 등을 통해 세금을 착복했다. 또 세금으로 내는 지방특산물을 상인들에게 비싸게 사게 하고 상인들에게 뒷돈을 챙기는 등 각종 비리를 일삼았다. 이 때문에 백성들의 삶은 갈수록 어려워졌고, 조정의 재정은 약해지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이처럼 공직자들의 비리는 오랜 세월 동안 전통처럼(?) 내려왔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도 공직자에게는 쥐꼬리만한 월급만 주어지는 등 비리는 선배 때부터 후배에게로 답습되어 온 것이 사실이었다. 이에 정부는 공직자 비리를 끊기 위해 2002년 부패방지법을 시행하고 국민권익위원회를 설치했으나 공직자의 부패·비리 사건이 끊임없이 발생했다. 특히, 2010년 ‘스폰서 검사’와 2011년 ‘벤츠 여검사’ 사건이 발생했다. 향응과 금품 수수를 했음에도 ‘대가성과 직무관련성이 없다’는 등의 이유로 무죄를 선고받자 기존의 법으로 처벌하지 못하는 공직자들의 부정부패·비리를 규제하는 법이 제정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다. 2011년 6월 당시 김영란 국민권익위원장이 국무회의에서 ‘공정사회 구현, 국민과 함께 하는 청렴 확산 방안’을 보고하며, 가칭 ‘공직자의 청탁 수수 및 사익추구 금지법’ 제정의 단초를 마련했다. 이 법을 제안한 대법관의 이름을 딴 ‘김영란법’은 부처간 이견으로 진통을 겪다 2013년 7월 국무회의를 통과했으나 국회 제출 이후에도 ‘법의 적용 대상이 광범위하고 위헌소지가 있다’는 등의 이유로 표류를 거듭했다. 그러다 2015년 3월 3일 국회를 통과했고 3월 27일 제정·공포되었으며, 2016년 9월 28일부터 시행됐다.

김영란법이 시행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공직자들의 비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대구의 경우, 지난 2017년 7월 모 구청 건축과장으로 취임한 공직자가 업무 편의 제공 등의 대가로 그해 8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건축사가 회사 명의로 리스한 제네시스 승용차를 건네받아 공짜로 탔다. 그는 건축사와 현장소장 등으로부터 각종 인허가, 준공 편의를 제공하는 대가로 64차례에 걸쳐 골프장 이용료·숙박료 등 1천297만원 상당을 받은 혐의도 받고 있다. 또 최근에는 시청 공무원 등 3명이 골프 접대 등 비리가 불거져 경찰이 해당 공무원 사무실 등을 압수 수색하는 등 수사를 하고 있다. 이처럼 대구 공직자들의 비리가 이어지자 권영진 대구시장은 특단의 대책을 꺼내 들었다. 비리공무원 발생시 연대책임까지 묻겠다고 밝힌 권 시장은 최근에는 공직자 비리와 관련된 업체도 아예 대구시가 발주하는 공사에 손도 대지 못하게 하는 ‘원 스트라이크 아웃’ 제도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업체와 비리 공무원의 먹이 사슬관계를 원천적으로 끊겠다는 것이다. 공직자 비리는 국민이 공직자에게 주어진 권한을 이용해 이득을 보는 행위인 만큼 반드시 근절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