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와의 접촉,
낯선 세계에서 온 존재들과의
대화의 도구로 음악, 수학, 문자를
사용한 세 편의 영화는 ‘접촉’이라는
공통된 내용으로
각기 다른 전개를 펼친다.
그 속에
철학적인 질문과 수학적·과학적 질문,
용어들을 등장시킨다.

‘미지와의 조우’
‘미지와의 조우’

밤 하늘의 무수한 별을 올려다 보던 소년. ‘아무런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헬 듯’하던 소년은 ‘청춘이다하였음’에도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중년이 되었어도 다 헤지 못하고 오늘도 고단한 하루 일과를 마무리한다. 그때 밤 하늘의 무수한 별들을 올려다보며 상상의 나래를 폈던 그 기억, 그 꿈들은 우주의 어느 행성 사이를 오고가는지.

어느 날, 출근을 위해 잠이 덜 깬 눈으로 입에 칫솔을 물고 아침 뉴스를 보고 있노라니 긴급속보가 뜬다. 미지의 세계에서 미지의 존재들이 지구에 나타난 것이다. 또 지구촌 어느 곳에서는 ‘베가성(직녀성)’으로부터 정체 모를 메시지를 받았다고 한다. 멀리 계신 부모님에게 전화를 드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저들의 지구 방문 목적은 무엇이며, 공격을 해야 하나, 베가성은 어디고, 저들은 어떻게 생겼는가라는 질문 속에 오늘 출근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냐는 갈등까지 더해진다.

일련의 전문가들은 그들의 모든 지식을 동원해 외계인의 지구방문 목적과 그들이 보낸 메시지의 의미를 추측하고 그 와중에도 서로 난상토론을 벌이며 싸우기 바쁘고, 전세계 지구인의 다양한 양태들을 TV는 열심히 실어 나른다. 혼란스러운 화면에 크게 ‘잠시 후 대통령 긴급 담화 발표 예정’이라는 자막이 하나 뜬다.

이러한 출현이 현실이 되었을 때, 우리(지구인)는 그들과 무엇으로 어떻게 소통하여 그들의 지구 방문 의도를 파악할 것인가.

△ 미지의 존재로부터 온 초대장

미지의 세계에서 온 외계인과의 조우에서 무엇으로 그들에게 질문을 던질 것이며, 그들의 의도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의 문제는 언어가 통하지 않는 다른 인종과의 조우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적어도 우리는 지구에서 같은 진화의 과정을 거치며 형태적인 유사성이라도 있지만 미지의 세계에서 온 존재는 형태부터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유성음과 무성음으로 이루어진 언어라는 것을 가지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 이러한 외계인과의 첫 접촉에서 우리는 어떻게 그들과 커뮤니케이션 할 것인가라는 주제를 두고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미지와의 조우>에서 ‘음악’을 그 도구로 사용한다.

외계인의 출현으로 전세계의 과학자들은 외계인과 통신할 수 있는 음악코드를 개발해서 그들과의 접촉을 시도한다. 음악은 규칙이다. 그 규칙은 수학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수학적 비율을 통해 음악이 만들어진다. 소리는 ‘진동’이다. 진동수가 클수록 진동이 빠르고, 더 높은 소리가 난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수학적 비율과 진동, 그리고 그 진동을 시각화한 전광판으로 ‘미지와의 조우’를 시도한다.

세계적인 천문학자인 칼 세이건의 원작소설을 영화로 만든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콘택트>는 제목처럼 미지와의 ‘접촉’을 다른 차원으로 이끈다.

“우주에 만약 우리만 있다면 엄청난 공간의 낭비이겠지”밤 하늘의 별을 올려다 보던 소녀는 자라서 전파천문학자가 되어 아버지가 들려줬던 말을 따라 ‘외계 지적 생명체 탐사(Search for Extra-Terrestrial Intelligence - SETI)’프로그램에 지원한다. SETI 프로젝트는 전파 망원경을 통해 우주로부터 오는 각종 전파 중에서 인공 전파를 수신해 외계 생명체가 보내는 신호를 감지하는 것이다. 어느 날, 주인공인 앨리 애로워는 베가성(직녀성)으로부터 정체 모를 메시지를 수신한다. 처음 그 신호는 점멸하는 단순한 신호로 해독 결과 수학적으로도 분석이 가능한 유의미한 신호이며 인공적으로 보내진 신호로 밝혀진다. 수학적 분석이라고 하지만 그 분석 기준은 점멸하는 신호가 지속적으로 보내는 신호는 바로 ‘소수(1과 자신의 수로 밖에 나누어 떨어지지 않는 수로 그 개수는 무한하다)’의 나열이었다. 이후 이 소수 배열의 신호 속에 엄청난 양의 정보가 들어 있음을 알게되고 이 정보를 해독하여 미지와의 ‘접촉’을 어떻게 이어가느냐의 내용이다.

수신된 신호를 두고 ‘우호와 적대’의 갈등양상은 신과 종교, 과학과 종교, 과학과 철학, 존재의 의미 등 다채로운 충돌을 보인다. ‘오컴의 면도날(같은 현상을 설명하는 두 개의 주장이 있다면, 간단한 쪽을 선택하라는 뜻으로 14세기 영국의 논리학자이며 수사였던 오컴의 윌리엄에서 따왔다)’을 들어 베가성에서 미지의 존재가 보냈던 신호 속에 내재된 정보는 외계인이 지구인에게 보내는 ‘초대장’으로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그 ‘초대장’을 통해 ‘로젠의 다리(서로 다른 두 시공간을 잇는 구멍으로 웜홀이라고도 한다. 그 이전에 고안자의 이름을 따와서 아인슈타인 -로젠의 다리라고 불렸다)’를 건너 미지와의 조우를 한다. 그리고 그 미지의 존재는 우리들 기억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콘텍트’
‘콘텍트’

△ 더 이상 시작과 끝이 무의미한 당신 인생의 이야기

표기법만 약간 다르며 같은 뜻의 영화제목을 가진 드니 빌뇌브 감독의 <컨택트> 역시 외계인과의 첫 ‘접촉’을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를 다룬다.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원작으로 하고 있는 <컨택트>는 어떤 이유였는지 국내 개봉에서 <어라이벌(Arrival, 도착)>이라는 제목을 버리고 ‘컨택트’를 취한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미지와의 조우>에서 음악을,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이 <콘택트>에서 수학을 대화의 수단으로 삼았는데 반해 <컨택트>는 음성이 배제된 시각적 언어(문자)를 통해 어떻게 커뮤니케이션할 것인가를 영화에 담는다.

12개의 거대한 비행 물체(쉘)가 세계 각지 상공에 등장한다. 역시 “왜”라는 의문을 가지고 세계 각국은 협업을 통해 이들과의 대화를 시도한다. 이에 각개 각층의 전문가들이 동원되고 미국에서는 언어학 전문가 루이스 뱅크스 박사와 천체물리학자 이안 도넬리를 소환하여 접촉을 시도한다. 인문학과 과학의 협업이 처음부터 수월하지 않다. 이안이 쓴 저서의 서문 ‘언어가 모든 문명의 초석이다’를 두고 “과학이 모든 문명의 초석이다”라고 웅수하며 서로의 커뮤니케이션 도구를 두고 긴장감을 유발한다. 하지만 18시간마다 아래쪽에서 문이 열리는 쉘 내부로 진입한 순간 놀라움과 함께 ‘어떻게’를 두고 협업의 단계로 곧장 진입한다.

쉘의 내부에서 투명막을 두고 마주한 지구인과 외계인은 각자의 문자로 서로의 존재와 이름을 지칭하는 것으로 대화를 시작한다. 하지만 쉽지 않다. 외계인이 허공에 그들의 이상한 다리를 펼쳐 표현하는 문자는 비선형 철자로 지구상에 존재했던 어떠한 언어 문자와도 다른 독특한 형태를 띠고 있다. ‘접촉’의 팽팽한 긴장감 속으로 주인공 이안과 그녀의 딸 ‘한나’와의 이유를 알 수 없는 회상(?) 장면이 연결되어 있다. 그 장면은 불규칙적으로 한나의 성장 과정을 담고 있다. 어떤 장면은 성장이라는 순차적인 과정이 아닌 순서가 뒤바뀌어 삽입되어 있기도 하다.

외계인과의 접촉과 한나의 등장은 우리에게 익숙한 시간(영화적 시간)의 흐름을 방해한다. 이는 외계인과의 접촉을 반복하며 조금씩 그들의 문자를 이해하는 과정에 그들의 문자가 가지는 ‘시간’이라는 특성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햅타포드라고 지칭되는 외계인의 문자에는 그들만의 독특한 시간관념이 내포되어 있다. 지구인에게 시간은 과거에서 현재, 그리고 미래로 흘러가는 직선을 그리며, 이러한 시제가 한 순간 한 장소에 동시에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지구인의 다양한 언어에는 반드시 시제가 등장한다. 물론 그 시제가 흐릿한 언어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거의 모든 언어는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제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햅타포트의 문자에는 이러한 과거, 현재, 미래의 시제가 혼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비선형 문자인 햅타포드 문자는 그래서 시작과 끝이 없는 원형의 형태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지구의 거의 모든 언어가 가로든 세로든, 오른쪽이든 왼쪽이든 시작과 끝이 분명함에 반해 햅타포드의 문자는 시작과 끝이 없다. 바로 시제가 혼재된 문자이기 때문이다.

영화 <컨택트>는 ‘한 사람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과 행동이 그 사람이 쓰는 언어의 문법적 체계와 관련이 있다’는 언어학적 가설인 ‘사피어-워프 가설’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다른 환경에서 성장한 존재는 시간을 포함해 다른 언어적 체계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다.

겨우 몇 단어의 햅타포트 언어를 이해하게 되면서 한 단어의 중의적인 해석을 두고 협력관계였던 세계 각국은 의견이 갈린다. 갈린 의견에 따라 한 국가가 외계인에 대해 ‘공격’이라는 선제적인 조치를 취하자 세계는 공격의 카드를 꺼내든다. 그리고 공격할 것인가, 대화할 것인가의 결정을 두고 이야기는 절정에 오른다.

미지와의 접촉, 낯선 세계에서 온 존재들과의 대화의 도구로 음악, 수학, 문자를 사용한 세 편의 영화는 ‘접촉’이라는 공통된 내용으로 각기 다른 전개를 펼친다. 그 속에 철학적인 질문과 수학적·과학적 질문과 용어들을 등장시킨다. 어려울 수 있지만 내용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운 영화들이다. 등장과 함께 공격하거나 ‘접촉’의 복잡다단한 과정을 생략한 수많은 외계인 등장 영화들과는 다른결의 영화들이다.

이 영화들을 통해 오늘, 모처럼 밤 하늘을 올려다 본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들을 향해 안테나를 높이 올린다. “아~! 아~! 들리는가? 들리는가? 응답바람!” /김규형 문화기획사 엔진42대표

* 위에 소개된 세 편의 영화는 네이버영화와 구글플레이, 넷플릭스에서 감상하실 수 있으며, 일부 문장은 윤동주 시인의 시 ‘별 헤는 밤’에서 차용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