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

문재인 대통령은 2년 전 취임사에서 “저는 감히 약속드립니다. 2017년 5월 10일 이날은 진정한 국민통합이 시작된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 분열과 갈등의 정치를 바꾸겠습니다. 보수와 진보의 갈등은 끝나야 합니다. 대통령이 나서서 직접 대화하겠습니다.…. 군림하고 통치하는 대통령이 아니라 대화하고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라고 했다. 또한 취임 당일 각 당의 대표들을 만난 자리에서 “야당과도 빈번하게 대화하고 협력, 타협하는 정치를 할 것”이라고 하면서 협치(協治) 의지를 거듭 밝혔다.

이처럼 통합과 협치를 국민 앞에서 엄숙히 약속했던 우리의 대통령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여당과 야당, 보수와 진보의 갈등은 날로 격화되고 있고 민생을 챙겨야 할 국회도 파업상태인데, 문제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제왕적 대통령은 대화와 협치에 매우 인색하다. 최근 문 대통령이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말한 것처럼 “적폐청산이 이뤄진 다음 새로운 나라를 만드는데 공감이 있다면 협치하고 타협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면 도대체 그 때가 언제이며, 앞으로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가? 정치적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큰 적폐청산을 이유로 국민통합과 협치를 미룬다면 이제 1년도 채 남지 않은 총선을 앞두고 점점 더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국민적 갈등과 적대감은 치유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대통령은 왜 통합과 협치를 약속한 초심을 지키지 못하고 독선과 아집에 빠지고 있는가? 파스칼(B. Pascal)은 “독선과 아집은 대상(사물이나 사안)을 바라보는 관점의 편향성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이것은 바로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 즉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믿고 싶은 것만 믿은 결과’이다.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용비어천가를 불러대는 예스맨(yes man)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면 확증편향은 더욱 심해진다. 대통령이 이러한 편향성을 가지고 있는 한 국민통합이나 야당과의 협치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통합과 협치를 위해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인식과 태도는 무엇인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통령의 ‘민주적 정치정향(political orientation)’이다.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여당과 야당, 보수와 진보라는 서로 견해를 달리하는 정치세력들 간의 대화와 타협이다. 이것은 대통령도 인간 능력의 유한성 때문에 정치적 오류를 범할 수 있음을 인정하고 상대방의 견해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천사, 당신은 악마’라는 이분법적 흑백논리는 인간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비롯된 매우 비민주적인 정치정향이다.

문대통령은 정치적 동지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도 “독선과 아집, 배제와 타도는 민주주의의 적”이라고 항상 경계하였음을 잊지 않아야 한다.

민주주의체제에서 대통령은 갈등과 분열의 논리를 배격하고 협력과 통합의 가치를 적극 수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의 헌정사를 되돌아보면 제왕적 권력을 가졌던 대통령들은 하나같이 독선과 아집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대부분 불행한 종말을 맞이하였다. 이처럼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하는 법’이기 때문에 대통령의 선의와 약속만 믿고 그가 독선을 버리고 협치를 할 것으로 기대할 수는 없다. 따라서 국민은 대통령의 독선과 아집으로 인한 정치적 오류를 끊임없이 감시·감독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이 때 특히 여론형성자(opinion maker)로서 ‘언론과 지식인’의 역할이 중요하다. 사회정의와 국민통합의 구현에 앞장서야 할 언론과 지식인들은 권력과 야합하는 ‘외눈박이 언론’이나 권력에 아부하는 ‘어용 지식인’이 되어서는 안되며, 대통령의 ‘독선과 아집에 대한 비판자’이자 ‘통합과 협치를 위한 촉진자’로서 올바른 역할과 책임을 다해야 한다.